통이에게
통아!
우리 통이는 누나랑 산책을 제일 많이 다녔잖아.
한살 하고 육개월 더 된 통이의 인생에서 누나랑 산책한 시간이 참 많잖아.
연희동 골목골목 연대산 구석구석 누나랑 같이 안가본 곳이 없잖아.
그런데 누나는 우리 통이랑 마지막 산책 가는 곳이 그렇게 멀고 먼 화장터 일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우리 통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차도 한 번 못타봤는데 처음 탄 차에 박스에 쌓여 트렁크에 실려가는 거여서 누난 그게 너무 속상하고 그래서 앞에 앉아 엉엉 큰소리로 울고 그랬어.
우리 통이는 힘도 세고 너무 튼실해서 항상 사람 손가락보다 더 굵은 줄을 잡고 다녀야 했잖아. 그래서 산책할 때마다 통이 목줄을 잡고 있으면 꼭 통이랑 손을 잡고 걷는 느낌이었어. 연대산길 인적드문 동네 주택가 통이랑 손을 꼭 붙들고 있으니까 정말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
개들은 사람보다 시력이 나쁘다던데... 누나랑 같이 옥상에 있으면서 오리온자리 북두칠성 봤던거 기억나? 요새 내내 하늘이 맑아서 누나 눈에는 너무 잘보였었는데 통이 눈엔 잘 보였는지 모르겠다. 누나는 통이 덕분에 우리집 옥상에서 본 밤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운 지 알게 됐는데... 그리고 그렇게 밤하늘이 예뻤던건 우리 통이가 옆에 있기 때문이었는데..
누나는 아마도 이제 옥상에 올라가지 못할 것 같다.
통아!
누난 아이템 안잡힐 때도 꼭 통이한테 털어놨잖아.
구성이 안풀릴 때도 시시콜콜 일렀었잖아.
하고 싶은일, 이뤄졌음 하는 바람, 속상하고 화나는 일, 짜증났던 거 모두모두 통이한테만 말해왔잖아. 근데 이제 이런 거 누구한테 말하라고 누날 두고 가.
너무 간단한 수술이라 정말 생각치 못했는데 미안해.
앞으로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통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 내린 결정인데
그게 통이를 아프고 겁먹게 했을 까봐 너무 미안해.
어제밤 내내 차가운 철장 안에서 내내 무서운 꿈만 꾼건 아닌지 너무 걱정돼.
누나랑 형아가 통이를 버리고 간게 아니라 건강하게 다시 데리러 가려고 했던거였는데
통이가 오해하고 슬퍼했을까봐 그게 너무 마음아파.
과거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지금의 나를 내버려 두고 가버린다고 하잖아.
있잖아 통아, 누나가 가장 슬픈건 우리 통이랑 함께 했던 시간이 '지나가 버린 옛날'이 돼버렸다는 거야.
그 시간이 너무 너무 짧았는데 일년하고 몇개월 밖에 안됐는데
진짜 아무런 예고 하나 없이 누나를 두고 가버려서 지금도 믿기질 않아.
통이가 미운게 아니라 이 말도 안되는 '갑작스러움'이 너무너무 야속해.
도대체 뭘 어떡해야 좋을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막막해.
통이랑 산책한 동네 길이 너무 많아서,
통이 너랑 했던 얘기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앞으로 통이랑 같이 하고 싶은 일들도 너무 많이 있었어서
누난 대체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통아!
통이는 옥상에서 누나보고 안아달라고 해서 바깥에 내려다 보고 그랬잖아.
지금 통이가 있는 곳은 4층 옥상보단 시야가 탁 트인 넓은 운동장이었음 좋겠어.
심심할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신나게 뛰어놀며 누날 기다리고 있었음 좋겠어.
다시 만나면 누나가 통이 아프게 했으니까,
삐진채로 누나 손 깨물어도 혼내지 않을게.
통아!
그리고 누난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만 알아줬음 좋겠어.
세상에는 너무너무 예쁜 개들, 멋있고 늠름한 개들, 착하고 순한 개들이 많지만
누나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개는
전 우주를 통틀어 누나에게 가장 소중한 개는
예민하고 까칠하고 고집쟁이인 우리 통이 너야.
너 하나 뿐이야.
진짜야.
-큰누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