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학의 땅

카테고리 없음 2013. 5. 16. 10:56




 


발효시킨지 1,2년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 포도주.
퍽퍽하고 기름기 없는 건조한 빵.
너무 짠 감자스프로 대충 배를 채우고
먹을 물을 아껴서 양치를 해야 했다. 

해가 질 무렵 나는 숙소를 나와 무작정 걸어보고 싶었는데,
바람이 너무 거칠어서 몇걸음 걷고 숨을 몰아쉬고
또 몇걸음 걷기를 계속 반복해야했다.

입을 다물면 이빨사이로 모래가 씹히고
눈을 떠서 풍경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던 시간.

간신히 도착한 곳엔 친구 마사가 먼저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장관'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광경에
그저 작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아 이곳은 수천 수만년간 이어져 온
홍학의 강, 홍학의 산, 홍학의 땅 이구나.

그리고 나는 기도를 시작했는데,

백년 남짓 고작 살 뿐이고, 딱 한 번뿐인 내 삶에서,
이런 풍경을 경험하는 기회가 앞으로도 좀 더 주어지길.
'아주 오래된' 이 풍경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길...

그런 기도를 올렸던 것 같다.
 



바람이 불 때 하품을 하면 모래가 씹히고
밤하늘의 별은 끝내주지만, 먹는 물을 아껴서 양치를 해야한다.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담요와
보풀이 잔뜩 일어 살에 닿으면 쓰랄리 것만 같은 이불.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스무살 농활 때도 도망가고만 싶었다. 
그럼에도 트럭 위에서 맞받은 시골 바람은 얼마나 기분 좋았던지.
뙤약볕의 더위, 땀과 풀내에 찌들은 내들을 모두 날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 뒤로 비포장 도로만 달리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루타40을 달릴때도,
검은빙하투어 내내 이리저리 흔들리는데도
나는 계속 웃고만 있었다.
그 옛날 농활때의 기분이 되살아나서. 
 
먼훗날 언젠가 어디선가
낡은 담요. 냄새나는 이불을 덮게 될 때.
나는 우유니 사막의 밤하늘을 떠올릴지 모른다.

토마토 소스의 스파게티. 너무 짠 감자 스프.
뽑기띠도라고 외쳤음에도 한잔 가득 따라진 와인.
이 모든 것을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


그래서 결론은 오늘밤 베드벅에 물리더라도 잘 참아내자는 것?!?!?!?!?!
푸하하.







칠레 아따까마 쪽에서 출발하는 우유니 투어. 
첫번째 날 : 라구나 블랑까 (흰호수) ->  라구나 베르데 (녹색호수) -> 노천온천 -> 라구나 꼬로나다 (주황색 호수) 

칠레 아따까마에서 우유니로 출발할 때의 준비물 : 유우니 국립공원으로 들어갈 때 필요한 볼리비아 볼(볼리비아 화폐)가 어느정도 필요하다. 물도 많이 싸가는 것이 좋다. 대부분 5리터짜리를 사서 트렁크에 넣고 다닌다. (나처럼 고산병의 위험이 있는 사람에겐 특히나 많이 필요한데 4리터 넘게 싸용한 기염을 토했다.) 여행책자마다 나와있긴 하지만, 휴지나 물티슈, 썬크림, 자외선 차단하는 물품들은 당근 필수사항이다. 햇볕은 미친듯이 따갑고 바람은 미친듯이 춥다. 물이 차 있는 소금사막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쓰레빠를 준비하는게 좋다. 가지고간 모든 준비물이 소금에 절여질 것을 대비해야한다. 


난 투어가 좋다. 정확하게는 투어가 만들어주는 인연이 좋다. 
너 영어하는거 맞니? 라는 소리를 들어보질 않나, 서양애들 얼굴을 구분못해서 어 이아저씨 아까 물은거 왜 또 묻지? 란 생각을 하는 나같은 애들에게도 친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못알아 듣는 얼굴로 멍하니 있으면 (불쌍하게 여기고) 알아서 챙겨주는 투어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푸하하하. 
아까 우유니쪽에서 아따까마로 넘어가는 우리투어 브라질 애들이랑 아침 먹을 때도 느꼈다. 아 투어란 참 좋은거구나! 아침먹고 헤어지는 길. 딱봐도 190가까이 되는 그들이 나란히 줄서서 스페인식 인사를 해줬을 때도, 또 한번 느꼈다.
아! 투어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좋은거구나. 푸하하.


아침한끼 같이한 브라질 친구들. 자기네랑 같이 바이크 타고 아따까마로 넘어가지 않겠냐고 권했을 때, 나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음. 운전면허만 있었다면 지금도 진심으로 그러고 싶음. 
(하지만 어차피 그들은 역방향. 우유니에서 아따까마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여튼 우유니 투어 때 투어 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르헨티나 민박에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스라엘 단체 관광객에 한국인 꼴랑 하나 끼어서 2박3일동안 입다물고 지냈단 이야기, 한국인 단체관광객 4명에 꼴랑 일본애 하나 끼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애매한 웃음만 짓고 외톨이가 되었단 이야기. 일본남자애 일곱명 사이에 낀 우울한 아르헨티나 여자애 이야기. 투어 사람 모두가 스페인어를 할줄 아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영어를 써서 영어 못하는 이스라엘 여자애와 한국인을 묘하게 갈라 놓은 미국남자애 이야기.
같이 투어할 한국 사람이 없다면, 되도록 다양한 인종을 만나는게 중요하다고 들었다. 영어도 스페인어도 못하는 나로선 이곳에서 2박3일 쟈크채우기 십상이니까. 

다행히 어제 마사랑 이곳저곳 투어정보 알아보러 다니는데, 마사가 어떤 투어를 가고 싶냐고 물었다. 그래서 난 인종이 좀 다양했으면 좋겠다. 한무더기 단체 관광객은 피하자고 말했다. 다행히 마사는 그럼 그런 투어를 찾아보자고 했다. 

그래서 만나게 된 환상의 우리 투어팀!! 꺄악 꺄악! 


1. 마사 (미쯔이 마사하시. 그의 한국 이름은 정기라고 한다) 
일단 난 마사가 없었으면, 우유니에서 죽을 뻔 했다.
아따까마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마사랑 헤어지고 하루 정도 더 묵을까 했었는데 마사 없이 우유니 투어 참가했다간 정말 송장돼서 나올 뻔 했음. 투어회사를 알아보면서 나는 칠레억양이 섞인 영어를 거의 못알아 들었다. 대게는 5리터의 물을 준비해 온다는 것도, 볼리비아 페소로 환전이 필요하단 것도 못알아들었다. 그냥 투어 회사 테이블에 멍하니 앉아만 있었는데 마사가 죄다 챙겨줬음. 나 침낭 없는걸 알더니 침낭 없는 사람도 잘수 있는지 꼬박꼬박 물어주고, 나에게 너 돈 환전해야한다고까지 귀띰. 환전하러 가서는 여기 환율 정말 그지같으니까 쫌만 환전하고 나머지는 볼리비아 넘어가서 하란 충고까지. 다시금 생각해 보지만 정말 마사는 내 생명의 은인임.
 
2. 마리셀
여기나이로 스물아홉이니까 나보다 한살 위인것 같다. 통통한 몸매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시원시원함이 참 좋았다. 예전에 부산에서 근무한적이 있었다면서 몇개 말해주는데 양곱창을 알아서 빵터졌다. 내가 진짜 끝내준다고 하니까, 그게 맛있냐며 진심 되물었음. 이사람이 아직 음식의 진정한 컬쳐쇼크 양곱창 맛을 못봤구나. 한국 데려와서 먹여볼수도 없고 슬프다.  
여튼 마리셀은 내가 못알아 듣고 멍하게 있을 때면 주저 없이 영어로 번역해준다. 너무너무 고맙다.

3. 빠올라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왠지 모르게 해리포터 론을 떠올리게 하는 얼굴의 소녀. 마리셀과 친구다. 우유니 투어만 세번째래. 오늘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기념으로 맨 앞자리 앉았는데 알아서 선곡하는데, 선곡 존잘이심. DJ이가 따로 없다. 게다가 댄스 뮤직나오면 중간 중간 댄스도 춰준다. 얼마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일했었고 지금은 잠시 쉬는 중. 칠레보단 다시 아르헨티나에서 일하고 싶단다. 비냐델마르 산다기에 나 다녀왔다고 끝내준다고 아는 척 했다. 침낭 없는걸 아니까 자기는 침낭 가져왔다면서 자기 이불을 얹어 줬는데 추운것도 추운거지만 저걸 다 덥고 잤다간 아침에 일어날 수 없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4. 스위스 커플
여자는 컬러테라피 치료사. 채식주의자. 야채는 여자친구가 고기는 남자친구가 알아서 먹어주는 궁합좋은 커플. 남자친구가 무지 개구진데, 완전 익스트림 퍼니맨. 오늘도 굉장히 위험한 곳 다 기어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근데 아주 익살스럽고 사람 기분 안상하게 하는 선까지 농담을 던져서 빵빵 터진다. 

5. 소피아와 소피아의 어머니
산띠아고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프랑스인. 스페인어를 할 때 불어처럼 둥글게 둥글게 발음하는데 정말 발음이 끝내줌. 언제나 상냥하게 웃어준다. 근데 어머니 사진사로 오신거 같다. ㅋㅋㅋ 어머니는 통 사진을 찍지 않으시고 소피만 연신 찍어대네. 

6. 오로라 
오로라는 프랑스 친구. 내가 오로라란 이름을 처음 안건 <별나라 손오공>이라는 만화영화에서였는데, 그 손오공에 나오는 오로라 공주보다 더 이쁘다. 사람들이랑 잘 섞이는거 같지는 않고, 언제나 말없이 니콘카메라를 집어들고 나간다. 


여튼 우리 투어 조는 아주 마음에 든다. 왠지 끝내주는 2박3일 투어가 될 것 같은 느낌. 우유니의 물이 아직 차있어야 할텐데. 오늘밤 빌고 또 빌어봐야겠다. 일단 여기가 친환경화장실이라 물이 안나오기 때문에 세수는 불가능 하겠지만 식수로 어떡해든 이라도 닦아봐야겠다. 아까 물티슈로 얼굴 닦았는데 정말 가관이었음.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