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G메일에 들어가보니 네덜란드 양아빠(?)ㅋㅋ들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암스테르담 인근에 있던 집을 팔고 북부에 집을 사기로 했다고 신, 니가 놀러오면 공짜야. 프리 에어비앤비인셈이지. 아니, 이럴수가, (비록 한번의 권유였을 뿐이지만, 그들은 이미 잊어을지 모르겠지만,) 양딸인 나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이사를 가다니!! 나는 답장을 쓸 것이다. 북부로 가게 되면 나에게 정자 중매를 서기로 한 이웃집에 사는 인텔리하고 뷰티풀한 도서관 사서 청년은 어떻게 만나면 좋겠느냐고. 진심을 다해서 매섭게 다그치며 어글리한 나의 영어로 가열차게 답장을 쓸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즈음해선 안부 메세지가 더욱 많았다. 대부분 몰타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그 중엔 올여름 나를 설레게 헀던 한 친구도 있었지. 26일 아침 휴대폰을 열자마자 우다다다 온 메세지에 빵하고 터졌다. 메세지들을 하나하나 읽고 답하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다. 나는  몰타와 프랑스 리옹, 남아프리카 그리고 아일랜드를 방랑하던 그 풍성한 시간으로부터 1년 멀어진 것이다.

 

삶과 인생에 있어. 다채로운 경험들이 많았던 해였다.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려울만큼 말이다. 그래도 갈무리를 하자면 그저 매 순간 풍성한 경험이 나의 온 몸과 마음을 가득 채웠다. 아-!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던 광경들. 명멸되는 기억이 아니라 영혼 깊숙이 붙잡아 두고 싶은 순간들....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아름다운 경계 케이프타운의 해변과 그 너머 존재하던 힌색과 검정 피부색의 경계.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땅 아프리카의 오렌지 리버 강이 불러주던 노래. 

빅피시 협곡에 지는 석양과 거대한 달과 독대한 순간.

그래 그 때 나는 MP3에 저장한 드뷔시의 달빛과 Fly to the moon을 듣고 또 들으며 어떤 생의 한 순간을 보냈나.

물결처럼 쓸어내렸다 다시 차오르는 플랑멩고로 가득찬 스와코프 문트의 바다를 보며 나는 어떤 감탄사를 남겼던가.

천둥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던 캠프장에서 텐트 속에 내 한몸을 뉘인 것도 대단한 경험이었다.

작은 흰 꽃이 흐드러진 들판을 코끼리 떼가 가로지르는 것을 봤으며

뛰어가는 기린과 새끼를 돌보는 사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미세먼지에 고통받고 절규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를 편한 곳으로 보내주는 법도 배웠다.  4-5월 일하다 말고 스스로를 의심하며 잠시 쩌리가 되었고 7월 동네파들과 즐거운 대만 여행을 떠났다. 뼈와 살이 타들어가도록 무더운 길었던 여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고 새삼 이런 경험들로 가득찬 삶이라면 일흔 여든까지 사는것도 지겹지 않겠다 싶었다.  너무나 좋은 동료들을 만나서 내 일에 뜨겁게 집중할 수 있었고. 타블렛PC 보도 이후엔 하루하루가 경악과 놀라움으로 가득찼었다.

 

전인권의 노래를 들으며 촛불의 바다를 봤던 것도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지금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노래를 차마 부르지 못하는 부끄러운 어른이지만 하나하나의 물결이 거대한 바다가 되는 진보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했다.

 

영혼을 압도하는 풍경들과 다채로운 감격과 깨달음으로 기억되는 한해였다.  

다시금, 흥미 진진한 서른 여섯을 기다리며

멀어지는 기억이여, 오래오래 내 곁에 남아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