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이 아침 7시에 일어나고 있다.
출근 전

연대 서문을 넘어 세브란스 병동을 향하는 하루하루.

 

아빠는 한달 전 뇌출혈로 수술을 받으시고
중환자실, 일반병동을 거쳐 지금은 재활병동에 계신다.

 

누군가에 대한 정의를 일찍하긴 어렵지만
사춘기 시절부터 엄마와 아빠의 갈등을 보고 자라기를 십여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십년 가까운 시간을

나의 삶의 한 부분으로 간직하고 살면서
내가 내린 아빠에 대한 정의는 짧고 간결했다.

 

나는 아빠를 사랑하지만, 좋아할 수는 없었다.
사랑이란 것이

태어날때부터의 익숙함과 독하게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끈적한 감정이라면
좋아하는 것은, 이해를 수반된 감정이다.


그렇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빠를 사랑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나에겐 아빠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무수히 많은 맹세를 하고 또 하고.. 
이 이해할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상처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커감에 따라 조금씩 아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단면을 발견했지만
어린시절의 상처를 다 치료하기엔
흉이지고 모난자리가 너무나 많았다.

 

아빠와 나의 대화는 지극히 드물었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겹쳐지는 간극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갑작스레 말씀을 못하시고,

그 전날 넘어져서 뇌에 큰 출혈이 있었다는 게 밝혀지고

구급차를 타고 큰 병동으로 옮겨져 수술을 하고 난

난리를 치른 후.
나는 출근 전 병원에 들리고 있다.

하루에 한 시간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첫주.
아빠는 거의 말씀을 하지 못하셨다.
그래도 늘 내가 물었던 한마디가 있는데,  

 

-아빠 내가 누구야?

 

나를 기억하냐는 질문.
별것 아닌 질문이 나에겐 정말 중요했다.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나는 할머니에게 이 질문을 했었지.

 

-할머니 내가 누구야?
-승희.

 

그것이 우리 할머니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짧지만 또렷하고 확실한 각인.
내가 다른 사람에 인생에 존재한다는 확인.


치료 초기 아빠는 뇌손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서

말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되도록 그 질문만큼엔 꼭 대답해주려고 했다.
나와 내 동생들의 순서를 헛갈릴 지언정
내가 아빠의 기억 안에 있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꼭 답해주려고 한다.


아빠 손 붙잡는 것 조차 어색했던 나인데,
이제는 함께 손을 붙잡고 편의점에가서 쇼핑을 할 수 있게 됐다.
아빠의 얼굴을 만저본적이 없는데
여기저기 건조한 자국에 엄마 소장 설화수 화장품을 발라드릴 수 있게 됐다.
얼굴을 만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아빠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까지 가까워졌으리라.

아빠와 나는 큰 위기를 겪었지만,
시간을 벌었다.


큰 위기를 겪고서야,
우리는 비로서 서로를 좋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