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불란서 미니 2층집’이라는,

프랑스에는 있지도 않은 전대미문의 2층 양옥집이

인적드문 길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풍경말이다.

 

열세살.

봄에는 장미가 피고 가을이 되면 향이 가득한 모과를 딸 수 있던 우리집이 허물리고

용도변경되어 하숙집이 되던 날부터

나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금 불란서 미니집에 정원을 갖고 살게 될 날을.

 

하숙촌 원룸촌으로 바뀐 연희3동의 풍경대신

인적드물고 차량 드문 연희2동과 연대북문을 산책가는 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이따금 환기가 필요할 때마다 나는 불란서2층집 거리를 걷곤 했다.

 

탁트인 주택가를 산책하면서 특히나 마음에 들어하던 집이 있었는데,

2층집 두채가 좌우대칭으로 똑같이 생겼고 대문은 따로낸 집이었다.

 

동네 소문으론 사이좋은 친구 두 가족이 집을 계획해 지었고,

집안쪽으로 대문을 통하지 않아도 서로 오갈 수 있는 문이 나있다고 들었다,

 

함흥냉면 연희칼국수와 몇몇 중국집을 시작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는 사러가 쇼핑센터 안쪽으로 안쪽으로 파고들었고

홍대 상권의 이동은 연남동을 거쳐 우리동네까지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전 두 집 중 한 집의 벽이 허물려 디저트 가게로 변한걸 눈으로 보고 말았다.

 

 

대체 이토록 정다운 삶을 놔두고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걸까.

 

마음통하는 친구와 한집같은 쌍둥이 두 집을 나눠쓰며 삶보다

마카롱 900원 개이득 아메리카노 1000원.

인적드문 주택가에 당치도 않은 간판과 플랜카드를 커다랗게 걸고서 

매달 받게 될 임대료가 더 소중했던 걸까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라는 게 존재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나는 아직도 돈에 팔아치우지 못하는 가치를 확인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