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서른여섯 정리

 

오늘은 일요일.
어김없이 아침 자유수영에 갔다.

일요일 아침 자유수영을 발견한 일은 올해 해낸 괜찮은 발견 중 하나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입장.

재빨리 샤워를 하고 8시 50분쯤 조명이 들어오길 기다려 수영장에 들어간다.

그 뒤로 레인에 사람이 생기기 십분에서 이십분 쯤에 시간이 있는데

그때부터는 정말 혼자서 수영장을 누비며 수영을 할 수 있다.

유영 하듯 혼자 있는 그 시간이 너무나 좋아서,

서울에 사는 한, 매주 일요일 아침 자유 수영만큼은 꼭 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한 수영은 부담 없는 운동이다.

팔을 뻗고 휘 젓고 발차기를 하고 그 사이 호흡을 내뱉고 들이마신다.

동작에 신경쓰지 않은 채 무의식으로 쭈욱 진행할 수 있는 운동이므로,

레인 내에 방해가 없다면 나에 대해서 골몰할 수 있다.

이 시간 온전히 나를 떠올리고, 나에 대해 정리하며 나를 정의한다. 

때로는 풀리지 않는 구성을 고민할 때가 있고

이런 아이템을 하면 좋겠다를 상상할 때도 있으며

내 인생과 나의 삶에 대해 되짚어 보기도 한다.

이 시간이 언제부턴가 삶에 많은 것들을 결정짓곤 했다.

 

 

금요일 밤엔 츄희와 오랜만에 춤을추러 나갔다. 

귓속에 음악외에 다른 것이 찰 수 없는 공간에서

리듬에 떠다니며 춤을 추는 건 수영과 꽤나 비슷했다. 

그래. 그때도 나는 올 한해를 떠올렸지. 

 

 

이른 초여름.

탈린과 핀란드를 여행한건 정말 멋진 일이었다.

시야 가득 들어찬 호숫가의 풍경.

핀란드 동네 주민들과 사우나와 호수수영을 번갈아가면서 했던 일.

산속 깊숙한 비앤비에서 하루를 보내며 숲 속을 헤매이던 산책.

탈린의 붉은 지붕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며 만취하기도 했다.

또 한 번 멋진 풍경 속에 나를 놔둘수 있어 행복했다.

 

 

생활적인 측면에서 아쉬운점이 많다.

일단 저축이 엉망이다

아직도 나는 K본부로 부터 받지 못한 돈이 어마어마하고 ㅜㅜ

추석 뒤에 복귀라는 말을 믿고 정말 손가락 빨고 있다가

통장에 2000원이 남아 있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 뒤 생활은 정ㅁ라 빚빚빚... 이 빚이 언제 다 청산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일면에서는 최고였다. 엄지척!! 

짜릿짜릿 쾌감 느껴가며 원고를 쓴 적이있었지.

내가 쓰고도 ㅋㅋㅋ 잘썼다고 느낀적이 있었음 파하핳하하.... 

여튼 작가로 살면서 잊지 못할 귀한 경험이었다.

 

아르바이트로 뛰게 된 팀에서도 좋은 사람들과 뜨겁게 일했다. 

일정이 너무 빡세서 툴툴대기 일쑤였는데,

마지막에 '이 분을 더 이상 K본부에 놔둬서는 안된다'는 겉치레 인사말이었겠으나,

그 말을 들을 수 있어서 기뻤다.

반응도 좋았다. 여튼 죽기살기로 일한 프로그램이 열광적인 호응을 얻는 바람에 주변인들 반응을 보는것도 꽤나 즐거운 과정이었다.

 

 

올해 도전한 벼랑영어.. 그래 이 이야기도 해야지. 

아... 마지막 숙제한 날 정말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쒀...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해냈다. 해내고 말았다. 

이제 두번다시 나는 영어학원을 끊지는 않을 것 같다. 

귀를 트여준 것이 어디인가. 

그리고 최소 영어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게 어디인가.

나 새끼 잘했다 잘했어. 대견해.

여튼 학원을 마치고 나는 10번의 녹음 숙제를 더 했으며, 

두권 반의 책을 읽었다. 

나새끼 잘했어 장하다 궁디퐝퐝 

 

넷플릭스와 함께한 첫해이기도 하다.

오뉴블, 스트레인지띵스, 베터콜사울, 브레이킹 배드...

대단한 드라마를 만났고, 그 드라마들을 사랑하는 동네파와 함께해서

더욱 재밌었다. 

 

올해 최고의 영화는 로건.

극장에서 세번 볼 정도로 사랑했던 영화는

로건, 토르3, 라스트 제다이 가 끝이었던 듯....

라스트 제다이를 보고 너무나 당연하게 아담 드라이버에게 빠졌는데,

묘하게 올해 작년 짧게 데이트한 친구들과 부분부분 닮아서 선덕선덕 설렌다.

192cm과 데이트를 할 때면  내가 어느 정도 각도로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봐야 하며  콤파스 길이차 덕분에 어떤 속도로 시내를 덜어야 할지가 자꾸 '기억'나기 때문에 ... ㅋㅋㅋㅋㅋㅋ종종 상상하면 마음이 선덕선덕... ㅋㅋㅋ  

 긴 얼굴에 5분의 2정도로 긴 코. 얼굴에 곳곳에 여러 점이 나 있는 얼굴에 짙은갈색 검정고수머리에를 대충 묶어 올리면 앙드레의 현신 같아 집니다 ㅋㅋㅋㅋㅋ 그 옆얼굴이 얼마나 예쁜지 너무 잘알기 때문에... 길가다 말고 히죽히죽...

여튼 T와S. 그 '장점'만 싹싹 긁어 모아 놓아보면 나름 아담드라이버...;;;

넘나 좋다 빠져들었쒀!! ㅋㅋㅋㅋㅋㅋㅋ 

 

 

눈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아빠가 편찮으셨던 사건사고가 있었다.

앞으로의 십년. 뭘하면 좋을지에 방향을 타진하기도 했고 목표점을 물색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냈지.

갑작스레 탈린과 핀란드에서 짧게 나마 여름 휴가를 즐기기도 했다.

파업은 길고 무기력한 공백이었다.

뭘할지 몰라 꽤나 우울하고 의미 없이 시간을 써보기도 했다.

그 사이 사이 이루어낸 꿈이 있었으며, 간절히 원했음에도 이룰 수 없던 꿈도 있었다.

 

 

올해 꼽은 명장면은 투르쿠 호수에서 수영하는 나도 있지만,

T와 헬싱키 대성당 앞에서 맞이한 백야를 꼽고 싶다.

혼자 였다면 결코 내지 못했을 용기였겠지.

그토록 붐비던 대낮의 시야에서 모든 관광객이 빠져나가고

온 우주에 혼자 있는 것 같은 올곧은 느낌.

외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어썸. 쿨. 이라는 말을 들어주는 말동무가 있었다. ㅎㅎ

덕분에 덜 외로웠다.

덜 외로워 행복한 밤이었다.

 

앗 하나더 추가추가. 

친구 M과 새벽예불 전에 떨어진 낙산사 양양 앞바다에서

슬리핑백을 깔고 덜덜 떨며 둥근 달을 봤던 일도 잊지 않고 싶다.

몇년 전 아프리카에서 독대했던 거대한 달과는 또 왜이리 느낌이 달랐던지.

내 머리에 되새기듯 '삶이 너무나 짧아...' 는 중얼거렸는데,

그 말은 정말이지 피를 토하듯 슬픈 고백이었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아서.

너무너무나 많은데 시간이란 것을 도무지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해서..

그래. 지금은 백기를 들 타이밍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내에 무엇을 이룰지를 효율있게 쓰는 것이 현명한 일이지.

 

 

여튼 기쁜마음으로 내년을 기대하며...,

서른 여섯을 이만 보내주려고 한다

 

잘가요 너무나 멋있었던 서른여섯 신앙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