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youtube.com/watch?v=hUanYZvES3I


왼손을 뻗어 팔을 든다. BCD의 공기를 빼기 시작한다. 코로 숨 쉬는 것을 멈추고 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고 뱉어 본다. 수경 밑에서, 수경으로, 수경 위로 천천히 수면이 올라간다. 경계가 아득해지고 깊숙이 잠기기 시작하면,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사는 곳은 '푸른색의 가시광선을 뱉어내는 물'로 70%가 이루어진 행성이다. 

짧고 간략한 기도를 올린다. 
용왕님, 오늘 문을 열어주셔서 제게 바다세상을 허락해주세요. 

두번째간 춤폰 바다는 수채화 색이 아니라 파스텔 톤 바다였다. 보이는 세상 전체가 투명하지 않은 파란색이라 더욱 현실 같지 않고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머리 위로 노란 물고기 떼가 헤엄치고 발 아래는 투명한 은빛물고기들이 날고 있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그것을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것일까. 나는 40분간 눈 뜨고 꿈을 꾸고 있었는데 말이다.

마지막 펀 다이빙을 하러 간 날, 나는 옆으로 헤엄치는 법과 산호와 바위 사이로 조금더 바짝 붙어서 유영하는 법을 배웠다. 평소보다 길었던 다이빙 말미에 잊을 수 없는 장관을 만났다. 드넓고 평평하게 펼쳐진 산호의 숲을 너머엔 탁하고 트인 공간이 있었는데 그 사이를 검은 물고기 떼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언젠가 들은 적 있는 이야기였다. 집채만한 까마귀 떼가 깊은 침엽수 숲을 가로지르며 하늘을 검게 뒤덮는 이야기. 나는 왜 그것이 환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바로 지금 내 앞에 산호의 숲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검정 물고기 떼와 마주하고 있는데...  

흩뿌려진듯한 도열과 나열이 적절하게 섞인 세상. 개인과 군집, 복사해 붙인 듯하면서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같지는 않은 패턴의 반복. 셀수 없이 많은 집단과 개체를 만나면서 이 세상이 흠 하나 잡을 것 없는 황홀경이란 경험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삶의 방향은 무엇일까? 개인의 질문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집단과 집단이 만나는 공간. 아주 아득한 세월을 거쳐 종(種)을 보존하고, 그 명맥을 이어가고자 하는 최선의 선택이 각기 다른 향연과 춤으로 휘몰아쳐 완성한 시간.

개체의 살고자하는 노력이, 각기 다른 집단 간의 남고자하는 투쟁이. 어울어지고 제멋대로 굴러가다 보면 이런 아름다움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이 진화이고, 진보일까. 그리고 이것이 내가 사는 인간 세상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들을 해보면서 감탄 외에는 할 수 없는 그림 속에 머물렀다.  

(2014. 10. 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