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실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존재가, 내 삶에서.

 

그녀가 영영 사라져 버린 지금, 나는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존재했던 것으로 착각했지만 실상은 비어 있었던, 그 난자리를 살펴본다.

 

사실 전혀 몰랐던 건 아니다. 다만 미묘한 수준의 거짓말이었을 뿐이다. 6개월 근무를 9개월 근무라고 바꿔 말한다랄지, 자신이 말았던 프로그램에서 역할을 살짝 수정한다랄지. 그것은 1년 넘는 시간을 같이 일한 관계에서는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 사사로움을 따지기는 미묘했다. 어차피 주어진 VCR을 말거나 프로그램 하나를 각자 마는 일이 우리 업이고, 서로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 미묘함을 꼬집어내 굳이 사이가 틀어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출신학교도 그랬다. 막연히 서울 본교는 아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학벌이 중요하지 않은 방송 판에서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서울 본교는 아닌 것 같은데 정말이까? 의문이 들었지만 디테일을 따져 묻지 않았다. 그녀가 보여준 졸업사진에서 K대 특유의 베레모 같은 학사모를 확인했고, K대이긴 한데 캠퍼슨가? 하는 생각을 해본적은 있다.

 

그녀가 타 방송사 다른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면서 가끔 확인 전화가 걸려왔다. 그쪽에서도 여전히 경력을 약간 구라치는구나. 살짝 정정해주면서도 크게 의아해 하진 않았다. 여쨌든 일했던 프로그램이 맞고 그녀의 자의로 프로그램 제작기간이 늦춰진 것은 아니라, 억울한 면이 있긴 했으니까.

 

돌이켜보면, 사상활에 관해서도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애인과 관련된 이야기나, 수상공모 경력 같은 것들. 팀에서는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는데 나와 만나 밥먹을 때 그녀는 일절 그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았다. 뭐, 많은 방송일 하는 사람들이 건강 또는 결혼같은걸 핑계대고 그만두곤 하니까, 그 핑계는 프로그램 그만둘 때 써먹으려는 구라카드인가보다 했다.

 

 

출근 2주만에 방송을 말게 되고 간신히 쉬고 있을 무렵,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의 경력을 디테일하게 확인하는 전화. 뭔가 일이 있나 싶었지만 굳이 그녀에게 물어보진 않았다.

그리고 그 주를 보내고, 그 다음주 목요일 금요일 그녀를 찾는 전화가 쉴새 없이 걸려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일하던 팀에서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며칠 뒤,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학벌, 방송관련 경력, 사소한 취미와 습관, 사생활에 가까운 연인관계, 부모님에 관해 해주었던 모든 이야기들. 대다수가 거짓말이었다. 터무니 없는 뻥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그녀가 나에게 말해준 자신에 관한 이야기기도 했다.

 

 

누군가는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녀에게 화가 난다고도 한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슬픔이다.

 

S본부에서 K까지 그녀는 나와 옆자리에서 함께 일했다. 스브스앞 쇠고기 돈장찌개의 공짜 돈까스 반찬에 함께 환호하고 K본부 오후4시의 비빔국수 간식을 먹으러 함께 나섰다. 내가 종종 사다준 연희동 빵굼터 엘리게이터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시시콜콜한 프로그램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PD뒤땅을 같이 까주며 공감해주던 그녀. 그녀는 단순 동료라기 보다는 분명 나의 친구였다.

순박하지만 영민하다고 여겨왔던 그녀의 모든 것이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 지금.  내가 1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왔던 그녀는 어디로 사라졌나.

알게 모르게 정주었던 그녀가 사실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그 허망함이 나를 이토록 슬프게 만드는 것이다.

 

여튼 그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