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덕분에

20세기 소녀 2013. 8. 24. 21:13

어제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여의도에 다녀왔다.
국민은행 건너편을 걸어가는데
문득 클리셰라고 하면 클리셰고
진부하다면 진부하다고 할 지독히도 판에 박힌 어떤 모습이 떠올랐다. 

반팔티셔츠 반바지 스포츠 샌달에 대게는 안경을 끼고 까맣게 그을린 피부
팔에는 집회 유인물을 잔뜩끼고 짐은 이동에 방해되지 않는 작은 검정스포츠백
외모는 초라할 지언정 언제나 생글생글 활기찬 표정으로 다니며  
학교와 학교를 연결해주고 집회를 소통시키는 역할의 여대생
(때로는 여대생 처럼 보이는...)

새내기 시절에는 까마득한 학번의 선배의 얼굴이고
조금 지나서는 동기의 모습이며
때로는 안쓰럽고 짠한 후배의 얼굴이 되기도 했던 모습. 

사람의 인생이 아주 작은 만남으로 인해
부딪히고 반응하며 변화하는 과정이라면

까맣게 그을린 피부의 그네들은
나의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그 변화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사소했나?
아니면 너무나 커다래서 지금도 반응을 거듭하고 있을까?

그들 덕분에 나는
정부를 믿지 못하고
세상 모든 가난과 질병은 인간 사회탓이라 합리화 하며 
가진자의 것은 다른 누군가의 것이 아닌가 늘 의심하고
느리게 걸음하는 질서에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이 안달복달 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 덕분에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제상 속에 작은 부품이 아닌가 의심하고 
이것이 맞는 일인지 언제나 반추하고 되짚어 보며
늘 죄스럽고 조금 덜 죄스럽기 위해 노력하는게 아닐까?

그들로 인한 변화가 언제까지고 계속 되길 바란다.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지만, 
<바보 과대표> 그 노골적이고 그래서 촌스럽지만 그럼에도 솔직한 낡은 시집이
 내 책장 바로 맨 앞에 꽂혀 있는 동안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