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연말과 연초 나는 영화 레미제라블을 총 세번 보고,
10주년 뮤지컬 콘서트를 한번 25주년 뮤지컬 콘서트를 세번봤다.
그리고 얼마전 완역본을 통째로 읽었다.

'힐링'이라는 단어만큼 듣기 싫은 단어가 없다.
'치유'라니, '대답'이 아닌 '변명'이 치졸하고 비겁하게 느껴졌다.
내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닌 단단한 기둥이고 줄기다.

언제나 스스로가 불안했다.
십대에 내가 가지고 있던 모습이 이십대에는 사라졌 버렸고,
이십대 초반의 믿음은 소소한 농담거리로 사용됐다.

서른.
나는 변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변하지 않을까?
마흔이 되어 '지금의 나'를 틀렸었다고 고개 젓지 않을까? 


다꺼져버린 재처럼 하얗게 세어버린 국민의회 의원에게서,  
인생의 모든 것, 마지막 책 한권을 팔아치운 채 바리케이트에 깃대를 꽂았던 노인에게서
베드로처럼 거꾸로 매달려 혁명의 '반석'이 된 앙졸라에게서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자꾸 물었다.


멈추지 않는다
더뎌도 멈추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하고 변하고 만다고,
언젠가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 때로는 변명하고 탈출구를 열어두면서도
실은 나는, '그 말'을 너무나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그렇게 말해줄 누군가를 기다렸다.

찰나의 순간이 쌓여 거대한 줄기를 이루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어지는 궤적 속에서
포말처럼 바스라져 더뎌질 순 있겠지만,
분명 나아간다.  

다섯권의 책, 문장마다 똑똑히 새겨진 '대답'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