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물은 참 값싸다.
조금만 흥분하거나 조금만 자극시키면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눈물. 서눈물의 눈물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여튼 흔하고 값싸다. 그래서 후지다.

수 많은 이별 장면마다 나는 여지 없이 울었고, 그래서 내가 전하고 싶은 순간을 참 많이 망치고 간직해야할 것도 꽤 놓쳤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는 건 어쩔수 없다. 나는 눈물 미리 짜놓고 살 수 없으니 체념하고 순응하며 살수 밖에.

기억나는 이별장면이 뭐가 있더라? 곰언니 학교에서 떠나기로 하고 나랑 마지막 데이트 하던 날. 언니에게 마지막 편지 쓰면서 부터 울기 시작해서 데이트 날 당일 중간 중간 울고 집에 돌아오는 서대문우체국 길가에서부터 집에 도착하는 내내 울었고 눈이 붓다 못해 붙도록 울었고. 덕분에 그날 밤 우리 아빤 내가 실연한줄 알았었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왠일로 안우는가 싶었다. 그건 몰라서 안운거였지, 눈물이 나서 안운게 아니었다. 대학교 입학하고 첫 스승의 날이 었다. 고등학교로 찾아간 나는 1학년 때 담임 책상위에서 목을 놓아 대성통곡. 쪽팔리다 못해 두고두고 전해지는 신** 진상 사건에 꼽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그제도 울었고, 어제는 아침 7시에 눈떠서 울었고, 또 다시 사무실에서 울었고 지금도 때때로 울컥한다.
1년 3개월 일한 팀을 떠난다. 직장생활같지 않게 좋아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빠트림 없이 존경할 수 있던 '어른'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나는 필요한 사람이다.'를 느낄 수 있었던 몇번의 순간. 얼마나 짜릿하고 행복했는지. 이토록 좋아하는 프로그램에서 일할 수 있었던 건 너무 큰 행운이었다. 분에 넘치는 복이고 기쁨이었다.

70년대 서울 냄새 나는 외딴 연구동. 테잎들고 자막들고 가며 아그작 아그작 밟아대던 은행구린내. 쓰레빠 질질 끌고 책을 한짐 이고 가던 폐품냄새 가득한 주차장 길.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찾아들면 '치아키 센빠이'가 연주하듯 크레센도 크레센도. 아찔하게 울어대던 여름 매미 가로수 길.

쉬는 날도 공휴일도 빈적 없는 차장님 의자. 역사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우리방 책장. 옆방 건너건물 친구들, 동기들. 나의 온갖 푸념을 들어주던 동생 지연씨. 이런저런 고민을 들어주던 작가선배님들. 여의도로 찾아온 오군이랑 임지랑 노닥거리던 값싼 KBS 로비. 매뉴퓰레이터 촬영 가면 언제나 먹을걸 한움큰 쥐어주시던 특촬실의 감독님. 얼굴도장 찍을 만큼 찍었다고 사원증 없이 책 빌려주던 도서관 사람들. 역사프로에 정말 잘 어울리는 한상권 아나운서. 언제나 유쾌했던 종편실 은실언니랑 김영호 감독님까지.

잊고 싶지 않은게 참 많고, 놓고 싶지도 않았는데

다시 돌아와 좀 더 오래 머무르기 위한 '양보'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인내하기로 했다. 헤어지는게 아쉬워도 조금만 참고 더 오래도록 함께 일할 수 있는 길을 선택 하겠다.

그래서 주문을 외운다
돌아온다. 나는 돌아온다. 꼭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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