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실문

20세기 소녀 2013. 11. 19. 14:23
반려견 화장터는 급조한 펜션같이 생겼었다.  
어색한 가구배치, 과한 실내장식, 요즘 유행하는 페인트 색깔이
개소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곳임을 알려줬다.
 
이따금 열린 문틈 사이로
'또치야 얼른나와'
'몽아 너없음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 그래' 같은 악다구니가 새어 나왔다. 
그 마음이 어떤지, 어떨지 너무 잘알아서 중간 중간 입술을 꼭 깨물고 울음이 새어나오는 걸 참아야 했다. 심장이 꽉하고 죄는 느낌이 들 땐 주먹을 꼭 쥐고 꾹꾹 누르고 또 눌렀다.  

통이가 들어갈 수 있는 관은 아직 준비중이라 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가방에 담겨 있는 통이의 앞발을 꺼내서 꼭 잡고 있었는데, 
생각이 하나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수백번 수천번 손손 하고 말 해도, 아무리 울며 불며 떼를 써도  
이제 통이는 두 번 다시 내게 앞발을 내줄 수 없다.

통이의 발은 너무 차갑고 둔탁했고, 
싸구려 인조모피로 한번 감은 플라스틱 마냥 딱딱했는데,
그 감촉이 너무 낯설어 서럽고 한스러웠다. 

온기가 다시 돌아오진 않을까 
통이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는데 좀 처럼 덥혀지지 않았다. 
언제나 따뜻했던 통이의 체온이 아득히 멀어짐을 느끼며,
문득 심노숭이 썼던 망실문의 한구절이 떠올렸다.


유세차 임자 5월 27일 망실 유인 완산 이씨가 집에서 죽으니
나는 그 목소리와 얼굴이 점점 멀어짐을 슬퍼한다.


퉁퉁부은 눈을 간신히 떠서 화장터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통이가 내게 주었던 모든 것과의 이별을 인지하고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일년 반.
봄 한 번 겨울 한 번 여름 두 번 가을 두 번.
통이는 까탈스러운 강아지였다.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겁쟁이였고
죽기 한달 전쯤에야 비로소 나와 눈을 마주쳐주기 시작했다.  
조금만 혼내도 이빨을 드러내며 예민한 강아지였지만  
그래도 온 힘을 다해서 깨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리와 이리와 라는 말은 듣지 않았지만
내킬땐 언제나 무릎에 걸터앉아 내가 쓰다듬는 걸 기다리곤 했다. 
  
우리집에 온 순간부터 통이에겐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밀린자욱이 한줄 있었는데,
결국 올 여름에는 그 주변부로 털이 빠져나갔다.
몇몇 사람들에게 보기 흉하단 소리를 듣긴 했지만 
사실 그런건 통이를 사랑하는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 통이는 생김새와 상관없이 너무나 사랑스런 '우리 개'였으니까.
오히려 잃어버려도 금방 찾을 수 있는 표식이라고 말하곤 했다.

온기가 떠나가버린 통이의 손을 매만지며
나는 만남과 이별의 '거리감'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언가와의 만남이 '공간의 접점'이라면 이별이란 '거리의 멀어짐'이다.   
통이는 이미 나를 스쳐지나갔고, 통이를 사랑했던 나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시간이 흐르고, 삶을 살아가면 살아갈 수록 
그 시간들과 나는 점점 더 멀어지겠지.

시간을 보낸다는 건 수없이 많은 작별의 연장선이고, 
삶을 산다는 것은 과거의 나를 두고 떠나가는 길이다.      
  

강화도 반려동물 화장터에서 돌아오는 길은 몹시 추웠다.
20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3분 차이로 놓쳐서 멍하니 정류장에 서 있어야 했다.
나는 통이가 담긴 유골항아리를 끌어 안고 있었는데 
그림자는 마치 나 혼자만 오롯이 서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문득 세상 어떤 것으로도 이 외로움이 해결되진 않을 거란 걸 깨달았다.
낯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는 길잃은 어린애 처럼 정신없이 울었다.

<망실문>

유세차 임자 5월 27일 망실 유인 완산 이씨가 집에서 죽으니
나는 그 목소리와 얼굴이 점점 멀어짐을 슬퍼한다.
이제 꿈에서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니
애통한 마음에 한을 새기고 뱃속에 아픔을 담아두노라.
그대 죽음이 진실로 슬플진대
살아 있은들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오.
멀고 아득한 시간 속에 한바탕 꿈이로다.

그대 먼저 먼 곳을 구경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