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가지 단상

두번째스무살 2015. 10. 29. 22:01

 

 

물 건너간 다이어트.

다이어트에 대한 큰 의지는 없었다. 여기서 먹는건 흔히 먹을 수 있는게 아니니까, 일단 첫주에 수퍼마켓에 가득 진열된 치즈를 본 순간 '아 틀렸구나'하는 결론을 내렸다. 첫주엔 리코타 치즈에 도전했다. 왠걸. 망할 코스트코에서 파는 리코타는 리코타에 리 도 꺼내선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체 이탈리아는 어떤 나라길래 같은 리코타 치즈인데 이렇게 더 맛있는거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마스카포테 치즈를 발견했다. 아침점심저녁 쉬지 않고 열심히 빵에 펴발라 먹고 있는데 이탈리아 친구가 말한다. '신, 잼을 발라'

그 순간 다이어트는 틀려도 단단히 틀렸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

엊그제는 염소치즈에 도전했는데 이게 또 신세계다. 유분이 많고 촉촉해서 한입 먹으면 고소하고 새콤한 맛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안다 알아. 한국엔 없다. 그러니까 이곳에선 절제해선 안된다. 최대한 열심히 먹고 갈테다 흑흑흑

 

 

오피스 커플.

학원에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들이 있다. 수업 첫날 바로 깨달았는데 브라이언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타입의 성소수자다. 가끔 보여주는 신경질 적인 대답, 속사포처럼 내뱉는 수다, 그리고 매일매일 근사하게 깔맞춤해오는 스카프가 그걸 반증한다.

 

스위스에서 온 브루스 윌리스를 닮은 다니엘이 의외의 경우였는데 말이다. 3주 머무는 동안 사업차 1박2일 스위스에 돌아오는 모습도 얼마나 근사 했던지.  아침 조깅 때 종종 마주치는 바람에 다니엘과 나는 제법 친해졌다고 자부한다. 학원에서 언제나 다정하게 웃어주고, 브레이크 타임 내가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도 다 받아줬단 말이지.근데 제시가 어느날 말하는거다. '신, 다니엘도 토틀리...'

그제서야 나는 다니엘 귀의 피어싱과 조금은 남다른 목소리 톤을 떠올렸다.

 

크리스티나와 토니가 의외의 커플이었다. 물론 크리스티나의 파워풀한 모습이나 자애로운 성격에서 유추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대모 스타일의 여자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토니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동글동글한 인상 하트모양의 귀여운 입술 재잘재잘 우리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학원에서 <오피스>를 주제로 대화하던 날이었다. 토니가 말했다. '나는 오피스 커플이에요. 결혼했어야' 한국이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조합이다. 우리 사회는 묵인하고 눈 감아 버리는 사안이니까,

여튼 나는 유추할 수 있었다 크리스티나는 세마리의 고양이를 키운다, 토니 역시 세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크리스티나는 어제 새로 살 집의 타일을 고르러 갔고 토니 역시 오늘 아침 부엌을 꾸며야하는데 마음에 드는건 항상 비싸다고 말했다.

 

지난주 금요일에 크리스티나와 토니는 나름 커밍아웃(이게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미 대다수는 알고 있는 사안이니까)을 했는데 중장년 노년층이 절반이상으로  이루어진 학원에서도 다들 그런갑다. 둘이 결혼했다니 잘됐는갑다. 하고 시크하게 넘어간다.

한국이라면 뒤에서 수근수근 잘근잘근 토로하고 수다 떨 내용이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사는 나의 성소수자 친구들을 떠올린다.

부디 그들에게도, 남다를 것 없는 삶이 주어지길. 

자신을 드러내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남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게 되길...

 

 

 

그래도 여기도 나름 학교,

엘리사는 전형적인 모범생이다.  첫주엔 아민이 그렇게 한문제 하나에 눈에 불을 키고 선생님한테 묻더니, 아민이 반이 올라가니까 그 뒤로 엘리사가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하고 있다. ㅋㅋ 나는 여기 쉬러 왔기 때문에 쪽팔리긴 싫으니까 꼴찌만 하지 않겠단 마음으로.. 적당히 공부하고 애들이랑 대화하고 있다.

이 학원이 다른 학원이랑 다른게 매주 금요일 시험을 치르긴 하는데, 그 시험이 절대적인 평가 기준은 아니다. 목요일엔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숙제를 내준다. 옆에 앉은 친구와 답을 맞춰보게 한다. 답이 다를 경우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도 마찬가지다. 시험을 본 뒤 서로 답을 맞춰본다. 뭘 틀렸는지 확인하고 토론한다. 대충 몇개를 틀렸는지 감이 잡힌다. 다음엔 선생님과 답을 맞춘다. 채점은 자기가 한다. 점수도 자기가 매긴다. 애들이 너무 다들 솔직하니까 나도 점수를 속일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한다.

 

지난주 금요일 시험이 끝난 뒤 엘리사가 득달같이 나한테 오더니커스턴의 흉을 본다.

'나랑 개 답맞췄는데 개 거의 다 틀렷거든 근데 네개 틀렸다고 점수에 적더라'

 

엘리사는 광분해 있긴 했는데, 난 그 말마저 즐거웠다. 학교다. 내가 다시 학교에 왔구나. 실패하거나 실수해도 받아 줄  수 있는 연습공간...

 

 

 

줄리앙은 역시나 프랑스 남자.

우리학원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독일에서 왔다. 아무 생각 없이 독일에서 왔니? 란 질문에 굉장히 싫은 기색을 내비췄다. 살사바 공짜 레슨장에서 한국인이라면 제일 먼저 배우는 그 영어 질문을 물었다.

 

'웰알유프럼? 너 어디서 왔니?'

 

줄리앙은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프럼인유얼드림... 너의 꿈속에서'

 

그 뒤로 버터리하면서도 재치 있는 그의 문답을 듣는건 큰 즐거움이다.

 

-넌 내 살사 파트너가 아닌데 왜 내 손을 잡니?

-널 놓칠까 무서워서...

 

-오늘 너는 학교 끝나고 뭐할거니?

-너와 함께라면 비가 와도 해변을 걷고 싶어.

 

마르세유 대학에서 엔지니어 교수를 하고 있는 그는

이렇게 남프랑스 남자에 대한 편견을 이렇게 도 굳혀주고 있다.

 

 

첫번째 할로윈

어제는 학교 액티비티로 호박만들기에 도전했고 오늘은 싸구려 코스튬을 샀다.

그리고 내일은 할로윈파티 펍크롤을 갈 예정이다.

하루하루 맞바꿀 수 없을만큼 스무살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

 

 

여튼 이렇게 한국말로 실컷 일기를 쓰고 나면

친구들이 언제나 궁금해 한다.

What did I wright?

Guess!! hahaha X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