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20세기 소녀 2016. 9. 3. 11:20

생각해 보니, 프랑스 요리가 그랬다. 낸둥 구워나온 커다란 대파, 흰 크림에 뿌려진 후추, 핑크색으로 물든 육회... 겉보기에 이상한 조합이라, 이질감이 잔뜩 드는데, 한 스푼 뜨고 나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주방에 있는 요리사에게 너는 마법사야 기적을 창조해. 트리비앙! 세봉! 델리셔! 아는 단어를 다동원해 감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그애랑 만남도 이질감에 연속이었다. 그리곤 만나고 나면 곱씹고 곱씹을 만큼 황홀한 기억이었다는 것을 꺠닫게 된다.

36도를 넘나들고 체감온도는 40도를 오고가며 그런 지옥불구덩이가 20여일 가까이 지속되며, 전국민이 건드려만 봐라 불쾌지수에 쩔었던 그 여름. 그애는 나랑 전시회를 가겠다며 긴팔 흰셔츠를 갖춰입고 26인치 캐리어와 60리터 배낭을 들고 나타났다. 신도림에서 한참을 헤맸지만 마닐라 교통체증보다는 나았다며, 사람으로 터져나갈듯 붐비는 홍대전철역에서 땀범벅에 활짝 웃고 있었다. 언덕을 오를 때 노래라도 부를 것처럼 크게 웃으며 뛰어오르는 모습은 얼마나 생소했던가. 그 즈음 대한민국 사람들 전체는 누구라도 하나 걸려봐라 가슴속에 화염방사기를 하나씩 품은 상태였었다.

그 말도 안되는 상황이 너무 낯설어서, 나는 그냥 너털 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세월호 노란 천막이 나부끼는 광화문 광장에서도, 세종문화회관 안 네스카페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 틈에서도, 미세먼지가 잔뜩 껴 노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한강 강변에서도, 사람들이 바글대는 망원시장 안에서도, 모두 똑같은 메이크업을 한 20대들이 바글대는 삼거리 포차에서도 그 애는 항상 낯설고 실감 안나는 상대였다. 내 옆에 혹은 마주 앉은 긴 갈색 고수머리는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의 하나였으니까.

 

나는 너에게 뽀뽀하고 싶은데, 버스에서는 그러면 안돼? 

왜 이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야?

 

일요일엔 안된다고 타일렀는데, 화요일엔 그냥 웃고 말았다.

우리가 앉은 버스출입문 바로 뒷자석엔 가림막이 있었고, 가림막이 없었더라도 나는 웃었을 것이다. 이게 마지막일 걸 알았으니까. 그 애는 졸립다면서 부둥켜 안은 채로 잠이 들었는데, 달게 자는게 괘씸해서 '나는 사라질거야'라고 말했더니 '안돼!'라며 도망못가게 나를 옭아매 안았다.

사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는데, 곧 떠날 것은 이 애고, 이 비현실이란 것을. 그럼에도 이 애가 알려주는 구나. 순간에 충실한 애정이란 게 이런 거란걸, 그것이 이만큼의 충만함을 가져다 줄 수 있단 걸. 떄론 찰나가 아주 오래도록 기억되어 영원에 가까워 질 정도로 빛날 수 있단 걸.

 

홍대로 향하던 버스 밖 풍경은 곧 비를 뿌릴 것 같이 어두워졌다. 내 생애 이런 순간을 앞으로 몇번이나 더 가질 수 있을까. 사라질 것은 내 앞에 갑작스레 나타난 낯설고 이질적인 순간들이었다. 사실은, '사라지면 안돼.' 라고 말해야 하는 건 그 애가 아니라, 나였다.

그럼에도 그애가 안된다고 말해줘서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