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즈음한 시각 서눈물한테 전화가 왔다.

자기 먼길왔다고. (우리들의 위치기준은 언제나 동네임;;;) 대치라고. 우리 회사에서 4정거장 전 정류장에서 버스탄다고. 그녀를 정류장에서 낚아 채서 저녁을 먹었다. 속이 느끼해서 파스타랑 수제버거는 별로라던 그녀는 한개에 만원짜리 샌드위치를 어찌나 잘먹던지.  그 미각의 섬세한 차이를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나도 잘먹었다.
나는 언제 다시 백수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아직 그녀에게 취직턱을 내지 못했으니 당당하게 (카드를) 냈다.
한시간반 가량. 상념에 가득차 내걱정 남걱정 세상걱정으로 돌고 돌던 퇴근길을 친구랑 같이 가니 왜 이리 신나고 웃기는지. 이래서 중고딩시절 등하교 길은 중요한가보다.
내친김에 맥주한잔 더 콜?? 그래 콜! 의기투합하여 그녀의 (신혼: 제공해준 이가 그녀의 오빠이므로 부제를 달겠다.)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몇명 더 부를까 해서 수영가 있는 김도도(에게 연락하면 당연히 주기자에게 연락이 닿는다)에게 전화했는데, 전화를 안받더라. 아직 수영중인가 싶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는데 주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버스 정류장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던 김도도와 주기자. 물어보니까 둘은 전화온줄도, 우리둘이 같이 서눈물네서 맥주마실것도 모른채로, 그냥 만나서 수다나 떨까 싶어서 전화를 했다네. 텔레파시도 이런 텔레파시가 없지. 남자라면 이게 인연이다 이게 운명이다 이게 사랑이다 되뇌일만큼의 재밌는 사건. 텔레파시가 딱 들어맞은 넷은 좁디좁은 동네에서 뭐가 좋다고 껄껄껄 한바탕을 웃었다. 

"아사히 사도 될까?"
"야, 우리가 드라마 <느낌>에 나오는 애들처럼 스포츠카를 몰아, 차가 있는 남자가 있어? 아사히라도 마시자." 
"이걸 사치라고 부르진 말자. 서른에 비참하다"
"그래 '룩'이 중요한데 말이지!"

졸라 예쁘고 예쁘고 예쁘고 미친듯이 예쁘고 지치듯이 예쁜 수애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러 가는 길이 었기 때문에 룩을 좀 중시해주기로 하면서 아사히를 샀다. 맥주를 마시며 김래원을 욕하고, 이미숙의 (세월을 거스르는) 미모를 찬양하고, 향기역할로 나온는 밥통같은 기집애에 안타가워하고 수애언니가 서른살 82년생 개띠로 나오는 것에 비분강개하며... 함께 티비를 봤다.

사소한 고민을 풀어놓고, 작은 욕에 공감해주며, 남걱정을 함께 하면
아무리 크던것도 줄어든다.

이 소소한것들이 뭐 대단할까 싶지만 막상 갖지 못한 이들이 많다. 그리고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지. 따뜻한 집. 아프지 않고 평안한 가족. 인생에 나눌것이 참 많은 친구들. 
일 때문에 괴로워하는 와중에도 나는 참 가진 것이 많구나.
스스로 뿌듯하고 참 다행이고 암, 행복하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