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20세기 소녀 2008. 8. 12. 16:32

연희동

나는 연희동에서 자랄 수 있었음을, 아직도 살고 있음을 감사한다. 여섯살 겨울. 둘째 고모부의 차를 타고 건너 온 이 동네에서 스무해하고도 일년을 보냈다. 숨을 턱 막히게 하는 고층건물. 천편일률적으로 생겨 먹은 아파트 단지. 호화롭지만 갑갑하고 복잡한 주상복합 아파트들과는 달리, 단층 혹은 이층 건물로 이루어진 이 동네에서는 아직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하늘을 볼 수 있다.

나는 이 동네에 사는 '전'모씨와 '노'모씨는 죽음으로 역사에 사죄해야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생존해 있기에, 연희동이 '재개발지구'의 혜택을 입지 않는 건, 진정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쉽게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변화만을 선택하는 이 사회는 숨이 막힌다. 넌더리가 난다. 언제나 '개발'이라는 글자 아래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허용하고 묵인하고 침묵하는 <서울>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두렵운 곳인가. 그런 서울에 살고 있음에도, 내가 사는 동네는 그것과 관련없는 동네였기에 나는 행복했고 행복하다.

그래서 내겐 연희동이 그렇다. 누구에겐 숭례문이 그랬다지만, '연희동'은 언제나 내게 고정된 상수였고, 내 위치를 알려주는 지표였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은 천만이나 된다. 서울은 '내 고향'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겠지. 그래서 고향을 꼽자면, 스무해 하고도 일년. 느리게 변하고 변한듯 변하지 않는 '연희동'을.  멀리 떨어져 있으면 돌아가고 싶고, 되찾고 싶을 '연희동'이. 앞으로도 살고 싶고, 다른 곳에서 산다 생각하면 울컥하고 눈물이 나는 이 동네가 '진짜 내 고향'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