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이금댕과 마지막 수영을 하고, 다쿠앙에 모였다.

 

동네파는 제각기 다양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금댕이 가진 탁월한 능력 중 하나가 바로 때밀기다. 마지막을 예감하면서 수영장 샤워실에서 금댕이는 나와 주기자의 등을 밀어줬다. 주기자는 자신이 망원시장에서 구입한 때밀이 타월 덕분에 잘밀리는 거라고 했지만, 우리는 아닌걸 안다. 이십여년간 수영장에서, 찜질방에서, 각종 온천에서 이금댕은 어떤 때밀이 타월로도 놀라운 능력을 펼쳐냈다.

 

이제 이금댕은 남편이랑 수영을 다녀야 한다. 수영장 사워실엔 남편과 함께 들어갈 수 없기 떄문에 등을 밀어줄 사람이 없다. 나는 마지막이란 생각에 이금댕의 등을 꼼꼼히 밀어줬다.

 

 

 

금댕이는 이번주 토요일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신혼집은 부천인데, 연남동이 아닌 다른 곳에 사는 금댕이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주기자가 어제밤 금댕이랑 헤어지고 단체 창에 글을 띄웠는데, 만취했던 나는 아침에야 확인했다. 덕분에 출근길부터 눈물이 왈칵 났다.

 

이금댕과 헤어지던 길이 고3독서실에서 공부하고 나와서 헤어지던 길이랑 너무 똑같아서 서글퍼졌단다. 마냥 계속될것만 같았던 그 길에도 '마지막'이 있다는 걸 깨달아서 속상했다고 한다.

 

'이금댕 시집가서 잘살아. 행복하게.
당연하다고 느낀 일상의 모든 것들이 매우 큰 행복이었어'

 

나도, 나도. 나도 그렇다.
당연하다고 느낀 동네파와 함께한 일상의 모든 것들이
나에겐 너무 큰 행복이었다.

 

봄과 가을마다 계속됐던 소풍, 엠티,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함께했던 마니또 커플놀이, 매년 빠지지 않고 챙겼던 동네파 10명의 생일파티.... 그리고 수영장을 함께가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

 

정말 셀수조차 없다는 표현이 딱 맞을 만큼 근 이십년. 함께했던 수많은 기억들을 곱씹으며

나는 내 친구의 어느 지인이 했다던 말을 떠올려봤다.

 

 

동네파는 나의 단단한 방패였다.
'나를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견고한 성벽이었다.

 

세상 이곳저곳에서 생채기 나고 상처받고 돌아와도 나는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옆엔 동네파가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의심 없이 확신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내 모든걸 알아주는 가족인 동네파가 해주는 말이었기에.

 

나는 동네파가 있었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보호받고 온전할 수 있었다.

 

 

이 무수한 것들이 지금 당장 '마지막'을 선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 다쿠앙에 앉아,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로 깔깔대는 내 친구들을 바라보며
이 고마웠던 방패들이 어느 순간, 나를 두고 말 없이 떠나가겠구나. 란 생각을 해봤다.

 

우리의 이름은 동네파인데, 동네를 떠나는 친구들이 생겼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친구들이 생겼다.
동네파보다 더 가까운 '남편'이란 '베프'가 생기고
우리와 함께 놀기보다는 엄마라는 사명에 충실해야할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

 

그건 저항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내 힘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서럽지만 엉엉 울면서 붙잡고 매달리는 대신,
'고마웠다'란 인사로 보내주기로 했다.

 

아직도 부족하긴 하지만 20년간 신나게 놀았으니,
이젠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서로의 방패이자, 성벽일 것이며,
잠시 서로의 삶을 열심히 살다가
은퇴무렵 다시 모여서 함께 신나게 놀 것이기 때문이다.

 

 

 

동네파, 고마워. 나를 지켜줘서.
너희들이 있어서 나는 언제나 나로서 살아갈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