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거짓말

다시 출근을 했다.
 
작년 8월 막방을 끝내고 아프리카를 간다며 작별인사를 나눴을 때, 외쳤었다.
K본부 신관8층만큼은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이곳은 내인생에서 밤샘의 기억이 가장 많았던 곳이다.

6주마다 일주일씩, 지독하게 길었다.
파블로프 개의 효과로, 편집실로 턴하는 입구의 형광등만 봐도 멀미가 날 것 같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순간의 풍경은 유쾌하던 기분도 답답갑갑하게 만드는 재능을 갖추고 있다.

 

언니들이 몇번이나 이곳 일자리를 권해줬었는데 그때마다 거절해왔던건, 이런 이유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어쩌다 보니 거치고 고쳐서 다시 돌아온 곳이 이곳..

아아.. ㅠㅠ

 

익숙한 K본부에 앉아, 주변을 돌아보면 그때봤던 얼굴들이 고대로 남아 있다. 
바뀐 것은 팀의 위치. 책상의 방향 정도?
커피까지 여전히 맛없어! 어쩜 이렇게 한결같은지.

퇴근시간 광흥창행 버스 15*번 지옥까지 똑같음. 꼭 같음.

 

여튼 모든 것이 그대로인 곳에 앉아 있다보니  보니 모든것이 아득한 꿈, 거짓말 같다. 몰타의 대리석 건물들, 프랑스 리옹의 요리, 남아공의 오렌지리버, 거대한 달의 향연, 나이먹은 숫코끼리, 집채만한 독수리떼. 빅토리아 폴의 무지개, 트럭투어의 캠핑장, 세렝게티 투어...
지난 1년 나의 여행이 모두다 거짓말 같다. 

아이돌 피디님이 인생은 속고 사는 거라며 말해줬는데,
거짓말로 치부하기엔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많잖아?
여튼 모든 허탈함을 뒤로 한채 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다.

가진 재주 중에 그나마 그 재주를 쓸만한 팀에 들어와서 다행이다.

간절히 바래왔던 스타일의  프로그램이라 그나마 위안이 된다. ㅠㅠ

 

 

 


*존나 부러움의 회전

작년에 아프리카 간다고 작별인사를 했을때, 팀장님 한 분이 진심을 다해 나에게 말했다

 

"*희야 '존나' 부럽다"  라고.


모험과 여행을 사랑하는 팀장님은 아이가 셋이다. 막내는 늦둥이다. 다 크려면 아직 멀었다. 평소 비속어를 절대 쓰지 않는, 과묵 점잖은 신사적인 어른이었기에,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팀장님이 정말로, 나를 '존나' 부러워 하시는 중이라는 걸...

 

그런데, 돌아와보니 왠걸, 이번에 팀장님이 특파원으로 해외에 2년 나간다고.
그것도 내가 꼽은 인류 최고 맛있고 아름다운 나라로 ㅠㅠㅠㅠㅠ 흑흑.

작년, 의기양양하게 작별인사를 나누던 K본부 8층에서 근1년 만에,

나는 팀장님과 다시 마주쳤다.

 

"놀러와라 *희야. 밥사줄게."

 

만연한 미소.

흑흑 알고 있다.

내가 2년간 바게트국에 나타날 가능성 따윈 한참 바닥이라는 걸 알고 건네는 인사라는 걸 ㅠㅠㅠㅠㅠㅠ 
다시 만난 팀장님한테 차마, '팀장님 존나 부러워요.' 라고 말하진 못했다.

정말 부러워서 입 밖에 내 뱉는 순간 눈물이 날것만 같아서.

 

 

 

 

*덥다
그리고 습하다.

이대로 한반도에서 진화하다간 한민족 후손에겐 아가미가 생길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땀에 푹 절어서 눈을 뜬다.
얼마나 더우냐면, 블루레이로 산 <배트맨과 슈퍼멘>확장판을 못볼만큼 덥다.
근육근육한 주인공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것 같아서

차마 아직도 블루레이를 돌리지 못했다. 


 

토요일엔 오뉴블을 보는데, 교도소에 있는 주인공들이 나보다 더 쾌적해 보였다.
습도란 이런 것이다.

분노를 자아내고 짜증을 쥐어짜고 인간다움을 잃게 만든다.
미드나 영화는 나의 더위에 분노만 자아내 것 같아서, 어제는 카페로 도망을 갔다.

쩔어주는 습도와 온도를 위로하기 위해 오랜만에 <버마시절>을 들고 나갔다.
벽지에 핀 곰팡이랑 비오는 계절과 습한 밀림에 대한 묘사를 보니, 일단 조금은 위안이 됐다. 내가 나을거야. 암 20세기 초 식민지 공관의 영국인들보단, 내가 나은걸거야. 중얼중얼 주문을 되뇌였다.

그러다 문득 미얀마가 보고 싶어졌는데 이번 방송 녹화를 털고 나면 나름 또 비는 시간이 생길텐데, 여행을 다시 떠날지 나를 위한 공부를 해야할지 살짝 고민이 된다.


일단 올해 수입금은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금액이라서 돈을 아끼긴 해야할텐데 임애인 보러 삿뽀로에 가보고 싶기도 하고, 성게알 덮밥도 먹고 싶고 미얀마가 11월부터 계절이 괜찮다고 하니 이 책들고 떠나볼까 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단 이 다음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찰제'의 여부로... 삼고.

올해는 적게 버는 만큼 인생을 채워야겠단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