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긴진 잘 모르겠다.


기억이 맞다면 그건 여섯살 겨울 즈음이었다. 지금 동네로 이사오고 난 뒤, 근처에 보이는 이웃집 담장 높고 정원이 있고 (주로 서양을 배경으로 한) 동화책에 나올 법한 집들의 존재를 깨달을 즈음일 것이다. 새로 이사온 뒤 2층으로 넓어진 집에 걸맞게 둘째고모는 동화책 전집을 선물해주었다. 상상은 현실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므로,

그 책들을 한껏 투영하여 나의 망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요즘 오덕용어로는 자캐 정도 되겠지. 현실 속의 나는 일단 절로 치워버린 채 내가 이런 캐릭터였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하며, 거기에 온갖 설정을 덧붙이기 시작했으니... 

 

당시 나는 여섯살에서 열살정도였으니, 합리성과 현실성은... 따지진 말자.

 

정말로 웃기는 점은 당시 나는 엄마 따라 개신교회 주일학교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를 동경했던 것 같다. 천주교의 세례명을 가지고 싶으니까 내가 상상하는 소녀는 갑자기 천주교로 개종(?)..;;; 천주교의 대부 대모 제도가 간지나 보이니까 맥락 없이 집어 넣고... 대부와 대모의 인원수도 걍 내키는대로 늘렸던거 같다.. 막 다섯명 여섯명... 푸하하. (대모의 조건은 권력 있고 재산 빵빵한 인물로 늘 상상했었는데 영국이란 나라에는 왕, 그것도 여왕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난 뒤엔 상상 속 소녀의 대모자리는 언제나 영국여왕으로 낙찰!) 힘과 권력 돈을 꿈꾸는건 당연한 본능 아닌가염? ㅎㅎㅎ


소공녀를 읽고 난 뒤엔 갑자기 나타나는 부자 먼친척을 꿈꾸기도 했고,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을 읽을 땐 우리집 정원에 있는 모과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곤 언제부턴가 상상이 당시 보는 만화영화에 큰 영향을 받기 시작... 했는데 껄껄껄! 어느날은 우주의 여왕 쉬라의 여동생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고 우주보안관 장고와 알고 지내는 사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작은 숙녀 링이란 만화를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보기 시작한 뒤론, 내가 상상하는 그 소녀는 보딩스쿨 같은데 다니면서 말을 끝장나게 잘 타는 '숙녀'여야 한다는 압박이...;;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수치사 하고 싶은 내용이지만 봐주자.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당시 나는 열살도 안된 아이였을 뿐....)

 

 

여튼 동네 담장 높고 큰집들을 헤메이면서 내가 늘 상상한게 있는데,

이를테면 이야기의 인트로 만화의 프롤로그 격의 부분은 먼 친척집을 찾아가는 소녀의 장면이다. 유럽 어느 나라. 이왕이면 왕족이면 더 좋고, 말괄량이 이 소녀를 사랑해주는 서양인 외모를 가지고 있는 푸른눈(???? <-중요 포인트 미국만화나 일본만화나 죄다 서양인들 일색이었기 때문에)의 부자(??? <-말을 몰고 정원을 거닐만큼의 재산보유가 뽀인트) 친인척친구들이 등장하는 것이 이 프롤로그의 핵심이다.

 

 

여튼 얼토당토하 않던 상상에 빠져들던 그 시절. 

나는 언제나 푸른 눈의 친구들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시작되던 그 이야기를 꿈꿨다.

그렇게 아주 오래 전 꿈꾸던 이야기와 유사한 도입으로,

서른일곱 그 해 여름 손님처럼 다녀간 짧은 휴가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