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을 꿈꾼다

20세기 소녀 2012. 10. 14. 15:45




나는 전복을 꿈꾼다. 
현실에서 힘들다면 상상이라도 좋다.
이야기와 노래, 영화, 드라마, 소설 어떤 장르도 가리지 않겠다.  
 
힘있는 여성의 목소리가 좋다.
몸통이 잘린 채 꽃병에 꽂혀 시들다 버려지는 게 아니라 
온몸을 뒤흔드는 비바람에 맞서서 
마지막의 마지막 까지 홀로 서는게 삶이고 인생이라고 외칠 때는 전율이 인다. 

나는 나약하기 짝이 없지만
어딘가에는 그런 삶이 사는 이가 있음을 상기하는 순간이 달콤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원하는 세상은
폭력이 극도로 절제 된 세상이지만
가끔 현실에 비분강개 분기탱천해 참을 수가 없을 때는
머리가 터지도록 상상을 한다.
마르고 닳도록 꿈을 꾼다.

말단 종업원 비정규직이 사장을 자르고
방한칸 없이 떠는 사람들이 취미로 땅을 사모으는 이를 한겨울 거리로 몰아내며
열부가 되기 위해 죽은 부인을 따라 남자들이 은장도로 자신의 심장을 억지로 찌르고
불가촉천민이 흰피부의 브라만을 부리는 이야기를  
권력의 바퀴 아래서 개죽음 당한 영혼들이 밤이면 다시 나타나 매일밤 처절한 복수를 안겨주는 이야기를

혐오하고 핍박하는 이들이 그 '대상'이 되어 보기를 
그 몸서리 치는 고통이 자신의 것이 되기를 

천계를 뒤집어 엎은 아수라 마냥, 
모든 파괴와 일체의 혼돈 전복이 반복되는 세상을 상상하며 오늘의 울분을 푼다.

'너는 남자를 이겨먹으려고 해서 틀렸어'

이딴 소리를 나랑 동갑내기 남자애 입에서 듣는 날이면
나는 위와 아래가 좌와 우가 바뀐 세상을 꿈꾸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