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20세기 소녀 2012. 10. 20. 22:15

첫사랑은 열네살에 시작됐고, 열아홉살에 끝났다

상대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같이 뛰어놀던 교회 오빠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나 중학교 1학년 되는 봄에 (갑자기 180이 넘는 키를 가지고) 나타나는 바람에
단박에 세상 모든 가요를 '내 노래'로 만들어준 장본인이었다.

매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때 할머니집에서 한두달 가량 머무르며 교회에 나타나는 키크고 잘생기고 돈많은집 아들. 그야말로 전형적인 '교회오빠'여서 뭔가 오그라 들지만..;;;

사실 나같이 금방 식는 애가 그렇게 한 감정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따져보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감정의 도취'였단 결론에 이른다. 
한두달을 제외한 일년의 나머지 시기는 상상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시절 나에겐 상상할 대상이 있고 가슴 떨려할 상대가 있다는 게 중요했다. 
도대체 나머지 시간 뭘하고 지내는지 알 수 없으니 실망시킬 일도 없고 (생각해 보니 완전 연예인일세..;;;) 주어진 팩트가 적으니 왜곡과 상상은 넘쳐만 갔다. 


그 오빠가 할머니 집에 있는 한달 두달의 시간이 나에겐 얼마나 절실했는지. 
그럴싸한 만화나 드라마에선 운명적인 사랑(?)은 항상 '우연'을 동반했는데,
고때는 그런 이야기를 오롯이 믿어 의심치 않을 때라
나 역시 우연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어떡해서든 마주치고 싶어서 그 집근처를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덕분에 꽤 자주 마주치고 수다도 떨고 그 수다를 또 그걸 까먹을새라 일기장 가득하 적어두고..;;;)
정말 웃겼던건 당시 나는 교회에서의 만남은 그 가치를 쳐주지 않았다는 거다. 기도하다 눈이 마주치고 입모양으로 대화를 주고 받아도, 교회 식당에서 아무리 장난을 쳐도, 그건 운명적이지 않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시절 나는 봄만 되면 연희동을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어떡해서든 인연이라는 증표를 잡고 싶어서. 믿고 싶어서.
그렇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으니까.

무수히 동네를 돌았고 골목을 돌때마다 가슴 떨려했고 그러다 아주 가끔 마주치기면 새파랗게 질려 그 오빠가 치는 장난에 떽떽 거리기만 했다.


그런걸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담이 높고 꽃피는 정원이 딸린 조용한 집들의 골목들이 언젠간 공간이 될거라고 꿈꾸고, 그곳에서 추억을 만들고 연애도 하고 그 공간의 기억이 내것이 될거라 기도하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공간에 내 상상을 그려넣길 주저 하지 않던,


오늘 오빠를 만났다.
서른 한살 서른 두살이 돼서 만난 오빠는 여전히 한재석을 닮고 정우성을 닮아 잘생겼고
한참을 올려다 봐야하는 188의 큰 키 
쾌활하고 씩씩한 목소리
이제는 외국인이 부르는 듯한 억양으로 내 이름을 부르고
먼저 악수를 청하고 예전 내 모습을 기억해줬다.
그건 단 하나의 떨림도 없는 무미건조한 순간이지만 

그 옛날
주지 못할 일기를 쓰고, 
물리적으로 절대 결코 나타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년 중 10개월에서 11개월을 '혹시나?'에 물음표를 찍으며 가슴 졸이며
사랑을 했든, 감정에 취해있든
단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돌고 돌았던 동네 골목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
내 망막을 스치던 풍경.

순수하게 한 사람을 기억하고 갈망하던 시간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생에 단 한번, '첫'이란 단어를 쓸 수 있기에 절대적인 순간이있었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 사실을 이해시키느라
오늘 내내 애를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