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소녀 2014. 10. 31. 14:08

누군가 덥썩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곤 같이 추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출 줄 모른다고 말했지만, 이미 시작돼 있었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꼬았다 풀었다가를 몇번 반복하면서
밀짚페도라를 쓴 190은 족히 될만해 보이는 꺽다리 친구는
자신을 독일에서 온 요한이라고 소개했다. 

나같은 몸치가 과감하게 그 친구의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건
건너 섬에는 번개가 치고 있고, 바람이 시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행으로 같이간 동생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누나, 한국에는 이런거 없어요."

그래, 그말이 맞다.
번개가 치는 바닷가에서 춤 출 수 있는 밤 따위 한국엔 없다.

춤을 추는 사이사이,
찰방찰방 때로는 발밑에서 때로는 무릎까지 파도가 부딪히고 채였다.  
번쩍 번쩍 클럽의 미러볼 대신, 건너편 섬에 번개가 내리쳤다.

요한은 엄청 능숙한 리더였는데,
10분 넘도록 넘어질듯 넘어지지 않으면서 춤을 출 수 있었고
스텝은 꼬이는 듯 하면서 단 한번도 꼬이질 않았다.

예거빔의 기력이 다했을 때 결국 나는 바다에 빠지고 말았는데
그것조차 너무나 유쾌해서 우린 한참 배를 잡고 웃었다.

어제 주기자가 스윙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갑자기 나쁘진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다시 쿠바에 간다면
울띠마, 노체, 베사메가 주는 안타까움을
짧은 스페인어로 더듬거리기 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춤을 추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 같다. 

간신히 몇걸음 떼는 것이 아니라,
십분, 이십분, 한 시간...
 춤이 길면 길수록, 나는 그 밤을 오래도록 찬양할 수 있겠지.

삶은 짧고, 순간순간이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