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이가 죽고 난 지 오늘로 꼭 한달이 되었다.

동물병원으로부터 통이의 사망 소식을 전해진 건 
영화 <그래비티>를 조조로 보고 나온 후였다.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만 하는 당위'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난 직후에
내가 맞닥드리게 된 이 상황은 너무 야속했다.
클리셰라면 너무도 지독하게 뻔한 클리셰같은 상황에 약이 오르고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 모든 것이 나를 두고 떠나가버렸다는 것을
지난 한달간 되새기며
나는 단 하나만이라도 찾아내고자 자꾸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통이가 내게 두고 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대답 대신 기억나는 것은
통이를 사랑하면서 내게 찾아왔던 기적같이 놀라운 변화였다.
 
통이를 사랑하면서 비로소 나는
폐지 줍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숨차하는 늙은 치와와가,
추운 겨울밤을 나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있는 길고양이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부리로 쪼아대는 비둘기 한마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은 내가 통이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사랑받아야 할 존재로 가득했고,
나는 마치 안경을 쓰기 시작한 것처럼 그들의 존재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대로 나는
통이가 내게 두고 간 것이 무엇인지 영영 찾지 못할지 모른다.

그래도
태어나 딱 한 번 살다 죽는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은 만남과 작별을 경험하고
탄생과 소멸을 지켜보면서 사랑스런 존재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사랑할 무언가를 찾아내고, 그 보석같이 빛나는 순간을 간직하는 것.

그 깨달음이 
작고 귀여웠던 모습으로 처음 내게 왔던 우리 통이가
언제나 내가 위로를 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줬던 우리 통이가
내게 두고간 선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