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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네에 20년 이상 살다 보면 그 동네 풍경이 된다.

며칠전 문득 내린 결론이다. 매해 유입되는 인구와 다시금 밖으로 나가는 인구(지방에서 유학하러 왔다가 취직과 동시에 밖으로 떠나는 Y대생)가 유달리 많은 동네.
 
출근 할 때면 밀물 밀려오듯 등교하는 대학생 사이에서 혼자만 역방향으로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흡사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된 기분이다. 분식집 분식집 하숙집 하숙집 치킨집 분식집 하숙집 원룸 하숙집.... 그래도 그 사이 참 변하지 않는 풍경들이 너무 많아서 낯설지 않은 건 다행이고.

우리집 1층에서 삼삼오오 앉아 아침밥 먹는 하숙생 아이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예전에는 열살 이상 차이나는 오빠 언니들이었고 어느 순간 인사 나누긴 다소 어색한 또래들이었고 이제는 파릇한 새내기들로 바뀌어 채워져 있다. 요즘 다시 어린 친구들과는 인사를 나누는데 매번 너무 자주 바뀌는 얼굴들이라 못 알아볼 때가 부지기수다.

늦은 밤 퇴근길 무심코 탄 작은 4번 마을 버스.
오래간만에 오줌싸개랑 인생한탄하면서 전화통화하고 있는데 그 작은 봉고차에 날 아는 얼얼굴이 셋이나 앉아 있다. 중학교 옆반 친구, 중학교 같은 반 친구, 교회오빠. 카드 단말기 찍는데 한명 그 뒷줄 뒷줄에 한명 맨 뒷자리에 한명. 셋이 나란히 앉아 있다. 어디 앉기도 뭐하고 누구부터 인사하기도 어색한 상황. 아이고 지겨워. 근데 실은 또 반가워.

새벽엔 만두에게 문자가 왔다. 한잔 하자길래 나에게 연애거는거냐고 한마디 해주니까 다시 냉랭한 문자가 돌아온다. 결국 실실대면서 자리에 누웠다. 진짜 다행인 건 나만 이 동네 붙박이가 아니라는 거다. 그게 참 다행이다.

십년 후 이십 년 후 지금 연희동에 유입됐다 밖으로 나갈 대딩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저 하숙집 아직 여깄네, 저여자는 아직도 사네'라고 진저리 칠 정도로, 사라지면 어색하고 쓸쓸한 빈자리로 남도록. 나는 우리 동네의 <오랜 풍경>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