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겠다.

20세기 소녀 2012. 12. 23. 19:45

꼭 십년전이다.

대학교 2학년 총학생회 선거날이었다. 
출마한 후보는 우리측 하나였다.
투표율만 넘기면 이기는 선거였는데, 50프로가 안됐다. 
우리 학교에는 전년도 학생회가 아닌 '대의원회'라는 조직이 선거를 관리했는데,  
학교측 입장을 아주 잘 대변해주면서 학생측 입장은 씹기로 유명한, 어용선거관리위원회였다.
그리고 그 조직은 운동권 학생회가 나선 선거에는 
연장선거 따위는 허락해주지 않는 게 전통이고 관례였다.  

마감시간이 다가올 즈음 나는 분해서 울고 있었다.
앞장서서 등록금투쟁해주겠다는데도 니들 대신해서 싸워주겠다는데 왜 이런 홀대를 받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답답했다. 미웠다. 분통하고 원통하고 통탄하고 무언갈 불사지를 수 있다면 지르고 싶을만큼 분기탱천하고 서러운 상태였는데 말이지...

눈물콧물 짜면서 선배언니한테 막 말했다. 그야말로 막말을 했다.

"언니, 쟤들은 당해봐야돼요. 등록금 삼백만원 사백만원 올라봐서 정신차려야돼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복수하고 싶어요,"

울음이 숨죽을 즈음, 언니가 넌지시 대답해줬는데 말이지.

"그런다고 행복해질까? 
등록금 삼백 사백만원인 학교를 다니는 우리는 진짜 행복할까?"

며칠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울분에 찬 친구는 울며불며 재래시장 이용하지 말라고 합정역에 대형마트 서는거 데모도 가지 말라고 그네들이 ㅂㄱㅎ 를 찍었다며 울분에 차 말했다.
나도 울고 싶은 마당에 친구 위로까지 해줘야하는 겹으로 서러운 상황이었는데,

문득 스물한살 그 선거가 기억났다. 



변질되지 않겠다.
빛 바래지 않겠다.
나는 몹시 성질이 급하지만 기다리겠다.
기다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에릭 홉스봄을 떠올린다.
열여섯에 마르크스를 만나서 아흔다섯까지 꿈꾸길 포기 하지 않았던 인생을.

행복하겠다.
다음 선거 때는 조금 더 행복하고,
그 다음에 한걸음 더 행복하고, 
더더더 행복해서 
충만한 행복을 쟁취하겠다.  


나는 나의 저주(?) 덕에 지금 나는 등록금 오백육백 시대에서 살고 있고,
그리고 조금도, 조금도 행복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