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3

20세기 소녀 2018. 7. 24. 13:53

오늘은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나만큼 아프지 않은 사람은 어떤 말이건 내게 건네선 안됐다.



왜 고작 4000만원 이었을까. 

뭐 그리 보잘것 없었나. 

그렇게 마지막까지 초라해야만 했나. 

당신이 평생을 바쳐 싸운 그 사람들 처럼, 

당신도 그렇게 보잘것 없고 초라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그래.

오늘 조문 행렬에는 아직도 현장에서 제 목숨 내놓고 싸우는 작고 보잘것 없는 이들이 참 많았다. 나는 그 줄을 보고 울었다. 화려한 화환과 누구나 들으면 알아줄만한 으라짜짜한 정치인의 이름이 아니라. 투쟁 조끼를 벗지 못한 활동가들과 전동휠체어를 타고 온 장애인과 검게 그을린 노동자들을 보고 울었다.국화를 놓고 엎드려 두번 절하며 울었다. 원통함에 새어나오는 소리를 입을 막고 울었다. 



그래. 

그게 당신이었다. 스물두살 알게 되어 당신을 따라 당적을 옮겼고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가장 먼저 이름을 대었던 당신. 진보신당을 나가 다른 당적을 가지고 의원이 되었을 때 내가 보낸 축하메세지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감사를 표하던 당신. 그리고 서른 일곱살 일터에서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당신. 선물이라며 건넨 커피 한병에 깍뜻한 인사를 표하던 당신. 


당신은 보잘것 없고 초라한 우리팀에서 가장 반짝이던 사람이었다. 누가 뭐래도 우리팀의 간판 스타였다. 4번타자며 센터였고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남들이 볼땐 가난하고 남루한 우리. 승률도 내지 못하는 가난하고 남루한 진보정당. 그 가운데 당신은 내가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이었다. '당신'이 바로 '우리'였다. 우리의 보잘것 없음과 초라함을 당신은 외면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우리'라고 부를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그토록 초라해서였을까. 변변찮고 모자라서인가.
고작 사천만원. 누군가는 피부과에만 몇억씩 쓰는데
고작 그 돈때문에 우린 당신을 잃어야 했나.
당신을 이런 일로 잃을 만큼 우리는 대단치 못한가.  

그것이 바로 오늘 내가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다.

 

두렵다.

당신과 함께 내가 꾸던 모든 꿈이 떠나갈까봐. 두번 다시 꿈을 꾸지 못하게 될까봐. 그게 무섭고 아득하고 서러우며 애통하다. 

그럼에도 간절히 당신의 평안를 빌고 또 빈다.


잘가시라. 

평안히 가시라. 

‘당신’이 ‘우리’였던 것이 큰 위안인 시간이 있었다. 

너무나 자랑스럽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란 것을 너무나 참담하게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