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그냥 한귀로 흘러버린지 오래였다.
다시 주섬주섬 이말을 주워올 날이 올줄 몰랐지. 정녕 몰랐지. 

지난 6월에 찾아갔던 점쟁이의 말.

"너 거기 무지 가고 싶지? 너무 가고 싶잖아.. 그치? 근데 큰데라고 다 좋은건 아니야. 그런데 가면 또 그런데로 모셔야할 사람이 너무 많아. 니 맘대로 못해. 속 끓어. 그니까 작은데 있더라도 너무 속상해 하지말고 거기 간다고 마냥 좋아해도 말고"

사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인데, 지금 상황과 딱 떨어맞으니까 다시 떠오른거겠지.

여튼 그 말과 같은 상황을 살고 있다.
이것이 나의 요즘 근황 "끗!"













얼마전 정말 사랑스러운 꽃병을 선물받았다.
우유통 모양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게 어떤색 꽃을 꽂아 놓아도 간지 작렬! 두어번 꽃사다가 꽂아 놓고 만날 헤헤거리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놔둬도 좋을 것을 '굳이 꺾어다' 집안에 들여놓는 잔인함. 사실 꽃의 입장에선 일생이 끝나버리는거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 곁에 두겠다는 소유욕 등등.
그 뒤로 꽃을 살때마다 매번 망설여 졌고 꽃병은 한동안 빈병으로 놓여 있었다.
며칠전 친구랑 꽃가게 앞을 지나치다가 그동안의 이야길 했다. 자꾸 망설여져서 꽃을 살수가 없다고.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언니, 그냥 고기나 끊어."

그말이 정답!





참 모르겠다.
이력서 쓰고, 스팩 뻔지르르하게 써서 팩트 불리고 해당기업에 구미에 맞는 자소서 쓰는건 어렵지 않다. 대충 몇번 해보니가 감이와~ 실제로 그렇게 취업도 됐고, 취업도 시켜봤고 말야. 근데 대체 연애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푸념을 친구한테 했더니 요즘 세상은 연애보다 취업이 더 어려우니 노력해보란다.  
이말을 해준 친구는 남편이 있는 '가진자, 유산자, 부르주아' 인데 '자본가'의 과연 믿을수 있을 것인가?!?!? (본래 있는자가 '노력해봐 니 정성이 부족한거야' 라고 말하는것만큼 쉽고 모순적인 일이 없거니와) -_-;;;





이대 후문 어느 커피숍에서 쿠키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커다란 유리병을 봤다.  비싸서 차마 과자 맛은 못봤는데, 내가 탐나는건 그 '병'이 주는 따땃한 느낌이었다. 필시 백발이 성성한채 콧등에 흘러내리는 안경을 쓰고 남는시간 흔들의자에서 뜨개질을 취미로 하는 눈 파란 할머니가 가끔씩 놀러오는 손주들을 위해 한아름 과자를 구웠다 저장해 두었을것 같은 유리병. 그리고 조르고 조르면 마지 못해서 손주 손바닥에 하나씩 올려주주었을것 같은 유리병! ㅠㅅㅠ
그 물건을 갖는다해서, 그 기억을 소유하게 되는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탐난다. 아아 정녕, 인간은 소유하려고 사는 존재인가봐. 선물받지 못할거라면 선물이라도 좀 해보고 싶다.
동네파 마니또를 빨리 했으면 좋겠다. 리본으로 이것저것 포장하고 싶다. 진정!




돌규가 카메라를 샀다.
지난주에 섭이네 가서 컴퓨터 설치를 맡기고 빈둥빈둥 대면서 퍼즐을 맞췄는데, 그때 기막힌 타이밍에 우리 둘을 찍어줬다.
오. 완죤.... 나 사진작가가 찍었는 줄 알았어!
껄껄대며 장군감마냥 웃는 나랑 남탓하고 있는 섭맨의 얍삽한 손가락하며 퍼즐 늘어져 있는 한적한 섭맨네 거실하며 분위기가 완젼! ㅜㅜ 내가 머물던 섭이네집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이놈의 카메라가 또 왜곡미화포샵질을 끝장나게 해주네. ㅠ ㅠ b
돌규의 수중 안에 5D마크2가 있는 한 친하게 지내야겠다. 낙엽이 물들고 잎이 떨어지고 한적한 한강 눈이오는날 쉬지 않고 돌규를 불러내서 좀 찍어보라고 해야겠다.
이런 칭구라 미아내.... ㅋㅋㅋㅋㅋㅋ





오래간만에 옛애인(?) J를 만났다.
처음으로 일했던 프로그램팀. 나는 막내작가였고 그'녀'는 조연출이었다. 세상이 나(혹은 우리) 빼놓고 모두 행복하던 시절. 일이 주는 무게에 눌려 기댈곳이 필요했고, 그때마다 회사 옥상에 올라가 여의도 밤하늘을 함께하며, 서로의 무거운 짐을 기댔던 나의 옛애인 J~. 
그덕에 우리는 사귄다는 소문마저 회사내에 파다해었더랬지;;; (나 남자 좋아해요. 나 진짜 남자좋아하거든요?!?!? 백번말해봤자 모두의 의구심만 짙어졌었음..) 

여튼 그 밤하늘을 보면서 우리는 좋은 작가가 좋은 피디가 되기로 헤아릴 수 없는 다짐을 흘렸었다. 성실한걸 빼면 내세울 것 없는 나에 비해 J의 능력은 정말로 대단했다. 예체능계 아이들이라면 모두 목을 메고 몇수를 하는 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그해 대통령상까지 거머쥐고. 아아 남들 몇년씩 공부하는 본사 자리도 떡떡 붙곤 했었지. (빡센 외주 조연출 일정으로 시험을 치르지 못한 덕택에 떨어지고 말았지만.) 여튼 그녀를 다시 본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가슴이 떨렸다.

여의도를 떠나 선택한 장소는 강남. 그녀는 예전보다 화사해졌고, '을의 을(외주인력)'이 아닌 '갑의을(정규직)'의 혜택을 톡톡히 보는 것 같았다. 근데 그런 그녀가 너무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해서 가슴에 스크라치가 났다.

-씅 나, 요즘 일에 대한 열정이 이제 눈꼽만치도 없어. 근데 욕심도 없어. 여기서 20년 채우면 연금나오거든.
-씅도 그냥 살빼서 시집이나 가.

한남대교를 건너오는데 입이 썼던건, 마음 가득 씁쓸함의 맛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한텐 '내 일(직업이 아니라 하더라도)'이나 '내 이름'이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자아의 만족'이 무엇보다 중요할것 같은데. J마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니 나름 단단하게 세워둔 확신이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 모습으로 이렇게 사는건, 사실 '특별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평범할 자신이 없어서가?'인가.

올해 이 물음에 답을 내고자 부산을 다녀오고 남미를 다녀왔건만,
또다시 의문이 다시 새어나온다.
아아. 이러지마아... o<-<;;;;







난누군가또여긴어딘가
십수년전 듀스 노래 가사를 입에 담은 건 아침에 눈떴을 때였다. 
깨질것 같은 머리와 비어 있음에도 매식거리는 위장. 술에 쩔여져 노곤노곤해진 몸을 다독일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제 신촌길바닥에 버려두고 온 기억의 조각을 다시 찾을 필요성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위험수위까지 넘어간 것이 한두번은 아니나,
총 4차까지 달렸던 긴 여정 속에서 절반가까운 시간이 망각의 저편으로 넘어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니까 1차 때도 나름 천천히 선방하면서 달렸고 2차 다모토리에서 이문세 노래 따라 부를 때까진 좋았는데 말이지.... 3차 횟집에서부턴 정말 기억나는 장면이 몇개 안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핸드폰을 열었다.

망했따.
고등학교 때 동창이었던 애들한테 전화돌렸던 흔적이 핸드폰 통화목록 언저리에 흩뿌려져 있었다. 가정이 있건 없건 애가 딸렸건 말건 새벽 1시에 이리저리 전화해서 나와라 왜못나오냐 주정주접을 떨었음이 분명한 기록들;;;;

페이스북을 열었다.
새벽 2시반에 글을 올렸다. 집에 좀 보내달란 글이다. 대체 술에 취해서 이런글은 왜 쓴걸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정말 졸려서 미칠것 같았는데, 애들이 자꾸 집에 못가게 했던게 장면이 언뜻 스친다.

핸드폰 케이스를 봤다. 오병강의 명함이 왜... 들어있지? 오병강은 어제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한참생각했다. 새벽 4시반에 신촌에 등장해 내 택시를 잡아줬던 흐릿한 그림자. 단신의 키로 추정하건데, 오병강맞는거 같은데... 더불어 내가 오래간만이라며 얼싸 안고 신촌바닥에서 소리소리를 질렀던게 기억났다.

두통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짜내며 고뇌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어제 3차까지 함께한 그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맥주로 달렸던 그녀는 제법 멀쩡한 편에 속했는데, 어제 다들 취기가 말못할 정도였단다.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한 녀석이 울기까지 했다는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난다;; 정말 안난다. 그정도 자극적인 장면이면 기억이 나야 정상 아닙니까요?!?!!?!? 흑흑 어디갔니 기억아! 어디로 도망가서 제자리를 못찾니!!
그리고 충격적인 증언이 또 하나 나왔는데;;;
술자리에 있던 두 놈이 과거 추억에 대해서 아웅다웅했단다. 그건 예전 우리반이었다가 이전퇴학다녔던 A에 관한 내용이었다. 한참을 아웅다웅하는데 내가 벌떡 일어나서 판결을 내려주겠다며 A의 친구 B에게! 새벽 1시 40분에 당당하게 전화를 걸었다는 거다;; 새벽 1시 40분에 가정있는 남자한테 전화해서 A의 연락처를 따내는 퀄리티....
아 인셉션같은 기술을 배울수만 있다면 B의꿈속에 들어가서 전화통화했던 내용을 싹다 지워버리고 싶따아. 아아. 왜그랬니 대체 왜 그랬니!!! ㅠㅠ

낮에 몇몇 놈들에게 전화가 왔다.
덕분에 스스로찾아내지 못했던 기억의 조각을 몇개 더 건졌다.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말들을 어제 몇시간동안 지껄였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 놈들 너무 소중하다느니, 사랑한다느니, 우리 고등학교 최고였다느니, 니들과의 추억이 너무 값어치 있다느니...
수십만원을 쥐어준다해도 내뱉기 힘든말을 단돈 2500원짜리 소주마시면서 무슨깡으로 잘도 내뱉은거니...? 너무 졸린데 애들이 집에 안보내줘서 막 벤치에서 졸고 그랬던거 기억나는데 아아! 죽고 싶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보통 고등학교 때 거국적으로 모이는 모임은 추석 설에 있는데,
다음번엔 주최하지 않을 예정이다.
뭐 어차피 내가 연락 안돌리면 술자리가 아예 안생기니까....
애들 연락돌리고 시간맞춰나가는게 은근 귀찮았는데 이럴땐 장점이군.

최근들어 필름 끊길때까지 마시는 술자리가 계속되고 있는데,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하는 스타일이니 앞으론 그냥 술을 안마시는게 최고의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왜그랬니왜그랬어왜그랬었니... 아아...






"사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12년이나 공부하잖아.
그러니까 수십년을 같이 살 짝을 만나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해. 
그걸 창피해 해선 안돼."
친구의 말이었다.

그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 방면에선 단 한번도 노력을 기울인 적 없었단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에야 일찌감치 대입을 포기한 학생 쯤 되는데다,
굳이 진학을 한다해도 대다수가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의 성격과 꽤 다르겠지만 말이다.  
여튼, 노력을 기울인 적 없었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걸 꼭 굳이 미래의 배우자를 찾을 남녀관계에 국한 할 것이 아니라,
내 인생 전반에 확대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요즘들어 만나는 사람만 만난단 생각이 들었다.
적응의 시간도 필요치 않고 서로 생각의 조율과정도 생략가능하다. 
익숙해서 편하고 그 안에서 '재미'를 찾는 과정은 언제나 쉬웠다. 

새로운 만남을 앞두면 언제나 막막했다.
한동안 있게 될 조율의 과정과 적응의 시간  
그게 불편하고 힘들고 굳에 그럴 필요성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꾸만 성큼성큼 뒷걸음질 쳤다.
조율과 적응의 과정만 좀 거치면 
앞으로 있게 될 '빅 재미.'를 단지 귀찮단 이유로 놓쳤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주저주저해서야 평균수명 백세를 앞둔 인생이 즐거울 수 있겠나!
여튼 좀 더 노력해보기로 결심했다. 
 


+) 토요일엔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곤 집에서 할머니 제사가 있었다.
난 스스로 내 선택을 존중한다. 심지어 그 선택은 우리 엄마도 지지해준다.
근데 자꾸 친척들이 모자란애 취급하는가. 불편해서 슬그머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가 차더라도, 나이에 상관 없는 사랑을 '친지'들에게 받고 싶다.  




이 바닥 사람들 중엔 싸이 메인에 자신의 프로그램 이름을 띄워놓는 사람이 있다.
나는 내가 일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내 전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게 참 생소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는 일이 내 자신의 전부가 되나. 앞으로도 그 철학이 바뀔것 같지는 않다. 근데 뒤집어 말하면 그건 단 한번도 내가 내 전부를 바쳐서 일하지 않았단 소리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내 싸이 메인에 올라갈까? 
아마 아닐걸.   

금요일엔 술을 마셨다.
전에 다니던 회사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새벽 5시까지 달렸다. 아~ 내가 존경하는 우리 왕선배님이 나와주셨어. 흑흑. 생각해 보면, 내가 일하던 첫프로그램 그만두던날 술을 사줬던것도 우리 왕선배님이셨고, 입봉할 곳 없어서 K본부에서 쭈구리가 돼 가던 시절 날 건져서 입봉시켜준것도 우리 왕선배님이셨고. 개떡같은 원고 몇번이나 봐준것도 우리 왕선배님. 흑흑. 신세지고 고맙고 죄송한거 투성인데 이번에도 또 술까지 사주셨어. 엉엉 ㅜㅁㅜ 난 우리 왕선배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이돌 피디님도 그렇고 만날때마다 '저런 사람이 되야겠다'고 언제나 마음 먹는다. 
근데 난 조급하고 성질머리가 나쁘잖아... 아마 난 안될꺼야...

토요일엔 술병이 났다.
여꼴통들 만나서 대낮부터 기름진 음식으로 위장칠하고 얼음장같은 생맥 좀 들이키는데 갑자기 숨이 턱하니 막히고 입술이 파래졌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구토를 동반한 심호흡 좀 해주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금 여기서 쓰러지면 이 문을 열고 날 꺼내줄 사람이 없다는 일념하나로 버텼다. 헉헉. 하지만 술병은 좀처럼 달래지지 않고... 결국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인 홍대서 택시타고 집에왔다. 여꼴통들 미안. 나 땜에 작파해서.... 다음부턴 작작마실께. 
여튼 과음한 다음날 낮술을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녜녜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이제 전 서른이죠. 이제 알았습니다. 다음부턴 안그럴께요.

월요일엔 재수가 없었다.
아이템 회의가 화요일로 미뤄졌다. 아이템이라도 더 찾아볼까 하는 마음에 마포도서관을 찾았는데 휴관일이었다. 원고 쓸 게 좀 있어서 곰다방을 찾았는데 노트북 전원을 연결할 데가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서영까페로 발길을 돌리는데 소나기가 세차게 세차게 아주 세차게 내렸다. 내리는 온비 다맞고 서영까페 도착. 젖은 운동화도 벗지 않고 꿋꿋히 원고 쓰고 있는데 한시간만에 전화가 왔다. 집에서-. 와서 설거지 좀 하라고. 아아 정녕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은 날이었다.

방송이 한달 밀렸다.
조금 널널해 질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느낌. 이게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센스로 칠해줘야하는 작업인거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이 와중에 저번 프로그램해서 책까지 나온게 반응이 좋아서 두번째 편이 나오게 됐다. 일하고 있는 것도 빡빡하니 괴로운데 책원고까지 병행하는 중이다. 어제는 회사에 남아서 책원고를 썼다. 열시 반에 버스를 타고 돌아와 원고 수정을 마저봤다. 아침 여덟시에 일어나서 눈뜨자마자 다시 원고 수정했다. 그리고 다시 자료찾으러 국회도서관으로.... 여의도랑 나는 끊지 못할 인연인거 같다.  

나도 꼰대가 다됐다.
<최종병기 활>을 보는데 그렇게 거슬리는게 많을 수가 없었다. 반드시 도망가야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죽어도 같이 죽자고 매달려서 거사를 그르치게 만드는 민폐덩어리 여주인공이나, 조선남자들이 뭐해준게 있다고 저놈에 또 정절드립;;;; 뭐 이런 반(反)남성적인 시각말고도 그냥 그런게 세세하게 눈에 밟히더라.
박해일이 귀마개라니 어서 귀마개야 정3품 당상관 이상만 쓸 수 있는 귀마개를 어따써!!!
같은 옹졸하고 치졸한 역사적 고증에 딴지 걸고픈 마음?
옛날 학부시절에 사학과전공자 여섯이서 동시에 <스캔들>보러간 날이 생각났다. 영화 보고 밥먹는데 그때부터 서로가 알고 있는 역사지식들이 총동원. '저게 말이 돼'라며 아는 역사적 지식 가지고 영화 까는 자리로 변질... 그때부터 그랬나보다. 팩트만 가지고 옹졸하게 쪼물락쪼물락. 그때 상상력을 키워놓지 못해 지금 내가 이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가?!?!!?!? ㅜㅁㅜ


설렜다.
사무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책상위에 붙어 있는 글귀를 봤을 때. 

"발명은 그때까지 따로 떨어져 있던 아이디어의 결합"
"서로 떨어져 있어서 아무도 짝지을 생각을 해보지 않는 조직들을
건방진 방식으로 결합시키는 연습을 한다."
"논리적인 방법은 난간처럼 우리를 떨어지지 않게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는 않는다."

마지막날까지 설레고 싶다.
과연? 



친구가 그랬다. 사랑은 그 사람이 귀여워서 어쩔줄 모르는거라고.
그말에 대입해 보면 나 아직, 톰하디에 폴인럽중임. 파하하.
올 말부터, 팅커테일러솔져, 워리어, 디스민더워, 다크나이트라이즈 까지 줄줄인데
너무 뜰까봐 걱정. 안뜰까봐도 걱정.  
근데 내 예감에 이런식의 영화 백편출연해도, 여자팬은 안생길거 같은 예감;;;;

나보다 수어살 많은데, 우쮸쮸쮸 해주고 싶다.


어제는 퇴근길에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서로가 서로의 번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가 신기할 정도의 사이여서
통화를 하면서도 무지 신기해했다.
버스 창밖을 보면서 소소하게 한시간가량 수다를 떠는데
창밖 풍경 속에 수다가 스며드는 느낌이라 그게 참 좋았다.

너 그때 그랬잖아, 대체 왜 그랬어. 
난 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이래.

때때로 과거를 기반으로 '현재'를 평가해본다.
커다랗게 다가왔던 관계들이 소소하게 변질되고
계속되리라고 믿었던 관계들이 끊어져도 아쉬움 하나 없는 것이 놀랍다.

남산터널을 지나고, 한강다리를 건너고, 금화터널을 지나고 그 사이 전화가 끊기기도 하고
서로 전화 하느라 통화중이 되기도 하고 다시 목소리를 듣고
그러다 시야에 고등학교가 보였다. 
전화를 끊고 연대정문을 지날 때즈음 창밖을 내다봤다.  
이게 집착인지 변질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화 속 잠시잠깐 등장했던 그 애가 무척 보고 싶었고
그냥 보고 싶은게 아니라 '무척' 보고 싶어서
그게 티날까봐 너무 겁나서 차마 자세히 묻지 못했다.
(나 아직도, 순정적인 여잔가봐 파하하.)
 



그러니까 그게 정확하게 13일 전 지난주 월요일의 일이었다. 월요병에 골골대며 평소와 같이 출근하는 길에 전화가 걸려왔다. 예전 같은 프로그램에서 있던 선배였는데, 뜬금없이 K본부 '****들'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거였다. 거기 있는 작가들이 물론 나보다 연차가 모두 높긴 한데, 메인으로 있는 작가님이 널 이뻐라 하셨던 분이니까 문제 없을거라고. 
그니까 정확하게 K본부 '****들'이라 함은 내가 요즘 하고 있는 교양프로그램 중에서 두번째로 가고 싶은 프로그램이었다. 묻고 따지고 잴것도 없이 그러겠노라고, 지금 당장 이력서 메일 넣겠노라고 진짜 하고 싶다고 소리지르듯이 외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둥둥 뜬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날 오후였다. 또 전화가 왔다. 내가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진짜로 일하고 싶어서, 작가를 안뽑는데도 불구하고 민망과 송구함을 불구하고 이력서를 넣었던 그곳에서.... 이력도 마음에 들고, 전에 보냈던 구성안도 마음에 들었으니 따로 면접을 보지 않아도 될것 같단다. 되도록 빠른 시간안에 출근해줬으면 좋겠단 소리를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하루 동안 가장 일하고 싶었던 프로그램과, 두번째로 일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에서 동시에 연락이 오는 일이 발생...하다니. 대타 후임이 정해졌건, 정해지지 않았건 이미 기분은 하늘을 날고 있었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수요일날 제작팀을 만났다. 만족스런 미팅이었고, 이대로 천년만년 그팀의 지박령이 되겠노라 결심했다.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설레고 떨리는 상황에서 생방을 맞이했고, 그날 20분짜리 원고 중 11분을 리허설 50분 전에 받는 기염을 토했다;;; 테잎을 내릴 수 있느니 없느니 난리도 아닌 상황에서 간신히 방송을 마쳤다. 무사했다는 것 단 하나에 큰 의의를 둘 수 있었던 다급한 순간이기에 스스로도 대 만족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약간에 우려가 있었던 장면이 그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 다양한 욕설이 올라왔다. 제정신이냐를 묻는 글은 안부에 지나지 않을 만큼 격앙된 글들이 올라왔다. 내가 욕먹는 건 견딜 수 있었는데, 출연자가 욕먹는 건 정말 괴로웠다. 출연자를 욕먹이는 피디 작가만큼 바보 같은 사람이 없다고 그 옛날 다큐멘터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배웠던 말들을 떠올릴 때면 더욱 가슴이 싸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일은 더 커졌다. 우리 출연자를 RT가 돌았고, 기사화 되기 시작했고, 방송을 보지 못한사람들까지도 기사만 보고 출연자를 욕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가장 고통스러웠던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다. 변명 같지만, 내가 책임 질 수 있는 부분이 정말 단 하나도 없더라.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오고가는 일주일이 시작됐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 이토록이나 짜릿한 순간이 찾아올까 싶을 만큼 행복한 일을 만났는데, 내 인생에서 이정도로 비난받고 욕먹을 순간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할만큼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일요일엔 S본부로 출근해서 사과문을 올렸고,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 듯 싶었다.
근데 그 다음날 내 대타로 오기로 한 작가가 안오겠다고 하는 바람에 후임이 없다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또 다른 서브의 도움으로 간신히 땜빵을 구했다. 하지만 지금 일했던 팀에서 욕을 먹어야 했다. 사실 욕이라도 먹으니까 차라리 마음이 편하더라.
그렇게 수요일부터 출근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짜릿할 만큼 행복한 순간인데 행복할 새가 없었고, 죽고 싶도록 좌절해야할 타이밍인데 그걸 견딜디고 버티게 해줄 위로가 있었다.

너무 행복해서 너무 들뜨지말라고, 준 불행인지 너무 불행해서 좌절하지 말라고 준 행복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

이제서야 토로할 수 있는건 그 행복과 불행의 감정이 모두 소모 됐기 때문인듯.
여튼 이번 일로 깨우친 인생의 진리라면..
두드리면 열릴 때도 있습디다! 참말 입디다!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기쁜일이 일어났다
이게 정녕 나에게 일어난 일이 맞는가 뺨을 꼬집어도 보고,
그일만 생각하면 벌떡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춰보고 싶다.

그러나 그 다음날.
모든 기쁨을 뒤덮을 만한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내가 잘못했어요.
사죄한다고 될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잘못했습니다.




출근한지는 오늘로서 9일째다. 아니 오늘은 출근을 안하고 회사에서 밤을 샜으니 하루를 빼야겠다. 여튼 목표하던 취직을 했다. 목표한 월급을 받지는 못했지만 저번보단 올려받았다. 주5일을 지킬 수 있는건 아니지만, 예상보단 유연하게 쉬는 날이 있고. 커다란 팀에서 일하는 걸 꿈꿨으나, 사람들 관계가 끈끈하단 장점이 있고, 생각보다 연차 어린 피디와 일을 하게 됐지만, 그만큼의 적극성 하나가지고 날 감동시켰다. 
뭐 장점과 단점이 뒤엉켜 있고 그게 중심을 잘 맞추고 있어서 이렇다 저렇다 평을 내리기 애매한 딱 어중간한 상황.

백수 생활에 진절머리를 낼 무렵 취직이 돼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오죽하면 출근해서 아이템 찾는게 재밌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루 사용할 수 있는 체력을 고갈시키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난 다음에 집에와서 딴짓을 할 때의 기쁨이 배가 됐다. 내내 딴짓만 할때의 미비하던 재미가 잘시간 재가면서 스릴넘치게 채우면 곱절로 다가온다.

여튼 아직까지는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일했던 첫번째 팀이 너무 혹독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래간만에 밤을 샜다. 사실, 방송작가 치고 드물게 원고를 쓰면서도 밤을 샜던 적이 없었으니까 생소한 경험이다.

견딜만하다. 견딜만 하지 못한게 아닌게 어딘가. 아직은 견딜만하다.



최저임금으로 연일 말이 많다. 나도 많다. 욕설이 주를 이뤄서 그렇지 많긴 많다.

일단 내가 쓰고 싶은건 그 애기가 아니다. 그지같은 최저임금 이야긴 집어치고, 최저임금 얘기가 나오니까 문득 그게 생각나네. 나 일했던 첫번째 팀. 일한 시간을 시급으로 계산했을 때 나왔던 처참하고 잔인하고 혹독했던 결과. 

그런 직장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출퇴근 시간은 자유롭고요 대신 책임만 지면 돼요." 그말인 즉슨 "출퇴근 시간은 없어요 당신은 능력이 없잖아요." 란 말의 또다른 표현. 
내가 막내 로 일했던 작업환경이 어땠냐면, 아침 9시 30분까지 출근해서 아이템을 찾고 밤 11시 30분에 퇴근을 했다. 내가 근무한 기간은 9개월. 그리고 쉰 날짜를 모두 세어보니 9일. 그 9일 중엔 아이템이 잘풀려서 쉬었던 구정연휴 2박3일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주말엔 쉬는줄 아는데, 아니거든요. 주말에도 출근했거든요. (물론 9시 반은 아니고 한 10시 반쯤 출근했다.) 내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일요일 저녁이었다. 우리가 그날 좀 아이템이 풀릴 기미가 보여서, 밤 9시에 퇴근을 하게 된거다. 오늘 일찍끝났다고, 우리 오늘 일찍 끝났다고 '씬'이나서, 너무너무 '씬'이나서 여의도바닥을 뛰어다니던게 생각난다. 
문득 한 막내가 말을 던졌다.

"근데 일반회사에선 평일에 9시에 끝나도 야근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2시간 일찍 끝난 자유의 기쁨을 순식간에 거둬갔다. 

여튼 그런 직장에서 일하던 우리는 시간이 많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만큼 많았다. 그러기에 한번 우리가 받는 월급을 시간으로 나눠봤다. 얼마나 시간이 많았으면 (물론 쉬는날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9개월날짜 모두더하기 쉬었던 날짜 9일 곱하기 14시간만 하면 됐다.) 그때 나왔던 돈이 2700원이었나 2900원이었나. 그 당시에도 최저임금이 간신히 4000원을 넘을 때였는데 여튼 그정도 됐다. 그니까 최저임금도 못되는 직장에서 노동을 팔아가며 일했단 이야길 하고 싶은거다.

최저임금 그지같다, 말도 안된다. 반드시 해결해야할 문제다.
더불어 난 내 직군에 대해서 떠올린다. 꿈을 담보로 저당잡힌 인생들. 단하나의 목표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터. 근데 사실 이런 직군에서 주5일을 보장한다는건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최저임금을 보장하란 이야기도 난감한 일이다. 근데 그 모든 혹독함이 '프로가 되기 위해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란 단서를 달면 유일무의해진다.

언젠가 나도 "야 난 이러이러해서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일했거든? 니네가 고생하는거 약과도 아니거든?" 하는 꼰대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근데 되지 않기 위해서 토해 본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남의 꿈을 담보로 착취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은 내가 일개 아무것도 아닌 무명씨니까 참고 입김 센 사람이 될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지금 단계에선 정녕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나?
누가 누굴 걱정해 내 팔자나 고민해야할 때인가. 

고민이 많다.
이놈의 그지같은 세상!
'내일'이란 허울좋은 말로 '오늘'을 그만 좀 괴롭혀라.
근데 일단 내가 그런 프로그램에 왔잖아? 진짜 하기 싫은데,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 배운답시고 완전 빡세고 힘들고 1회성 밖에 되지 않을 프로그램에 왔잖아?

난 틀렸어.
아마 이번 생에는 안될꺼야.







요즘의 나는 불안함과 슬픔을 구분할 줄 모르는 바보가 돼버린거 같다. 막 우울하고 왈칵 눈물이 나올거 같고 왜그럴까를 곰곰히 따져보면, 불안해 하는 마음이 거의 전부인듯 그니까 오래간만에 출근을 앞두고, 불안해 하는 마음이 원인?
누가 들으면 백수생활과 이별하는 것에 대한 슬픔 아니겠냐고 묻겠지만, 나 백수생활 지겨워했어요. 여백이 텅텅 빈거 못참아서 힘들고 버겁고 그랬음. 드라마 영화 다보고 나니까 미쳐버릴거 같다고 백번도 더 되뇌였었음.
여튼 요즘 나는 불안하면 분노하기 보다는 슬퍼하고 우울해하는거 같다. 나 왜 이럼?

(다음 프로그램은 반드시) 고르고 골라서 오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쳤지만, 선배언니가 가지 말라는 곳으로 와버리고 말았다. 그런것만 생각하면 우울하지만, 이좁은 바닥에서 남에게 폐끼치고 욕먹느니 길게 보고 눈딱 감고 3-4개월 버티겠음. 그럼 5-6개월째가 오겠지. 그리고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그 기회도 오겠지. 메이비디스타임~

정말 반년만에 노트북 네이트온을 켰더니, 반가운 방송국 친구가 있어서 대화를 걸었다. 근데 대화하다 보니까, 또 다시 쓰는 이모티 콘이 /담배 /자살/ 같은 이모티콘이라 좌절. 아아 여의도가 내게는 제자리이긴 한가보다. 

정말 잔고가 보인다는게 어떤건지 알거 같아서 최근엔 돈 아끼느라 커피도 못사먹고 
친구가 부르면 왠만하면 안나가고 그랬었다.  
일단 재 취업을 했으니까, 더치커피도 사마시고 본격적인 여름을 즐길 차례다.
그만 슬퍼하고 불안해도 말고 몰입으로 순식간에 휘리릭 지나가는 여름이 돼으면 좋겠다.

그래서 9월달 아니면 11월에 개봉될지 모르는 팅커테일러솔져스파이 보면서 강렬하고 뜨거웠던 2011년의 여름을 추억할 수 있었으면. 크하하.




*점을 봤다.
요즘들어 점의 영험함을 믿어는 중이다. 파하하. 며칠전에 점집을 찾았다. 솔직히 가격이 저렴했다는 큰 장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거리가 꽤 멀고 찾아가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친구의 친구. 내비로 찍고 친히 자동차로 모셔주기까지 하겠다고 하기에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나 신점은 태어나서 두번째 보는건데, 첫번째는 너무 맞는게 없고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하셔서 돈이 아까웠다. 근데 이번엔 진짜 용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내가 해왔던 지난 몇개월간의 이야기를 술술 푸시더라. 그 이야기 간략하게 하고 난 다음에 가족 이야기하는데. 와! 다. 맞.춰. 완전 용해. 그날 내가 보살님과 나눈 대화의 대부분은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가 전부였던듯. 과거에 대해선 정말 날카로울 정도로 딱딱 맞추시네;;; 근데 곰곰히 되짚어 보면, 미래에 대해선 확실하고 자세하게 나온 내용은 없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아온 것 처럼 나중에도 무탈하게 살거라고 했고 가족들도 다 별고 없이 행복할거라고 하니까. 일단은 꼭 믿어 보기로 했다. 


*서른살 생일
맹렬하고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서른살 생일날은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해서 혼자 하는 셀프 데이트를 즐길 작정이었다.
이른 아침 일어나 할인받고 조조로 영화보고 두번째 영화는 마망이 준 영화티켓으로 영화 보고. 눅눅하고 흐린날이었는데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쳐 올 땐 왜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상쾌하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선 남미 여행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혼자 골똘히 고민도 해보고.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으로 보냈다.
저녁즈음엔 심심해지기도 했는데, 급작스럽게 만두랑 도도가 찾아와서 쟁가하면서 수다 떨었다. 과자 그만 집어 먹어야하는데 오늘도 난 결심을 실천하지 못했쒀....


*술을 먹으면 시간이 빨리간다.
어제는 여꼴통들을 만나서 면세점에서 고이 모셔온 발렌타인을 깠다. 치킨 시키고 샐러드 만들고 연어말이 만들고. 게다가 수다떨게 백만가지니까 세상 부러울 게 없더라. 저녁 8시에도 해가 지지 않아 칼퇴할 때 눈치보이는 한여름에 오후 5시부터 모여서 술을 까려니 얼마나 신이 나던지.
제대로 얼근하게 취했었던지 새벽 3시쯤에 눈이 떠졌다. 근데 기억나는게 몇개 없네;;; 술을 마시니 시간이 한 세배속으로 지나는 기분이었던듯. 우리 꽤 깊은 대화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던거 같은데 우리가 함께했던 그 기억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술에 취해 필름 끊겼는데 갑자기 다음날부터 친구가 쌩까더라. 뭐 이런 일이 없었으니 된걸로 치겠다. .



며칠 남지 않았다.
생일이 뭐 그리 특별하냐고 입으로 말하고 다니지만,
막상 평소와 다를바 없이 보내고 싶지는 않다.

자잘한 축하나 선물 생일메세지 같은걸 바라는건 진짜 아님. 절대아님.   
그냥 내가 내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다.
맹렬히 고민해봐야지.




<친절한 금자씨>에서 내가 증말증말증말증말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그 빵집 소년과 자고 난 다음 금자씨가 담배 한 모금 맛깔나게 빨면서 내뱉는 말.

"나는 괜찮았는데, 너는 어땠어?"

이게 성역할만 바뀌었다면 클리셰오브더클리셰 겠지만,
내뱉는게 금자씨였고 당한게(?) 소년이었기에 더욱더 빛나는 명장면이다. 

히어로물의 재미 한번 알아보겠다고
팔자에 없는 <토르>를 봤다. 너무 구려서 치유하려고 작년 여름에 봤던 <다크나이트>를 다시 꺼내봤다. 그러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개봉한다기에 <엑스맨> 전편을 훑었고, 최근에는 <닥터후>에 도전 중이다.

근데 보는 매체마다 남녀성에 대한 틀에박힌 시선이 반복돼서 불편하다.
<다크나이트>에서도 그런 장면이 좀 있었고, <엑스맨>에서는 유독 <엑스맨3>랑 <울버린>을 손에 꼽고. 토르는.... 긴말 않겠다.
대체 무슨이유로 세상에 여자 독.떠.는 없는가!
안젤리나 졸리 같은 언니가 독떠가 나와서 위기에 빠진 나 좀 구해주고 시공간여행 좀 시켜주는건 왜 실현될 수 없는 꿈인가?
 
내가 손에 꼽는 영화 속 가장 짜증나는 장면은
남주가 사랑하는 여자가 남주의 품에서 죽어가는 장면.
여자 인생의 전부는 '사랑'이다. 라고 묘사되는게 아주 짜증나 못살겠다.
남주는 여주가 죽어도 자기 인생 목표를 향해 꿋꿋이 잘만 살아가더만. 

보고싶다!
비록 남주가 자신의 품에서 숨을 거두더라도
홀로 올곧이 제 갈길을 걸어가는 삶의 정도(正道)를 걷는 여주가.
과거의 남자 따우 '그런 기억이 있었지'라며 씁쓸하게 되새기면서 새 남자 찾는 멋진 언니가.



*사족
금자씨와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천녀유혼>.
이쁘고 청순하고 아름답기까지한 여주 언니 뒤로 숨는 왕귀여운 남주의 묘미.



 

세상 남주들도 좀 당하고 사는 그날이 보고 싶다!


예전엔 백수가 되면 하고 싶은게 참 많았는데, 백수 생활이 두달 넘게 길어지다 보니 무료하기 짝이 없다. 하나둘 사고 싶은 물건도 늘어나고 통장잔고도 슬슬 걱정돼고. 가장 큰 점은 꼭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 중 하나를 해치워버렸다는게 크겠지.

다음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 역시 마감이란게 없다.
그냥 무작정 덤벼보고 도전해보는건데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고 희미하기만 해서
어떻게 대처해야할질 모르겠다.

여튼 내일부터는 바짝 정신을 좀 차려봐야지.
여백의 미를 그토록 외쳐왔지만, 버릇은 개 못준다고 
잔뜩 조이고 또 조인채로 살았던 삶을 도무지 버릴 수가 없다. 

결심) 이번주 내로 일을 저지르고,
그리고 종로의 기적을 한번 봐주고
영상자료원에 가서 영화도 한번 봐야겠다.
구성작가*의회도 들락날락거리면서 일자리도 슬슬 찾아봐야겠음. 
 


그러니까 작년부터 모셨던 오빠들에 대한 순서를 더듬어보면

대길오빠-루퍼트 에버릿- 콜린퍼쓰-톰하디

의 순으로 귀결된다. (아아 나는 참 영혼이 값싼 여자...)
성격이 나쁜건지, 남들 다 좋아서 찬양해 마지 않는 남자만큼은 좋아하지 않는 것이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시작은 초등학교 6학년 <사랑을 그대품안에> 차인표부터였던가? 아니다, <마지막 승부>의 장동건 부터였을지도;;;;)
덕분에 세상 모든 여성이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콜린퍼스를 향한 내 마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건 사랑이 아닐꺼야 아니고 말고! 부정에 부정을 거듭한 결과 결국 마음을 속일 수는 없었다. ㅋㅋ  그러다가 콜린퍼스 나온 오만과 편견을 보고 홀딱 깨긴했지만.... (대체 헬렌 필딩은 마크 다아시의 어디가 좋았던걸까;;;)

여튼 그러다가 (7월에 개봉했다던) 인셉션을 올 1월에 한국영상자료원 가서 보고
톰하디에게 빠졌다. 
(중간에 남미 여행갔다온 후로 쿠바 영웅 까밀로 시엔푸에고스에게 빠질뻔 했는데;;; 스페인어 자료 밖에 없어서 결국 포기 ㅠㅠ)
톰하디 같은 스타일에 남자 배우를 좋아한건 처음인데, 나이를 먹으니까 브루스 윌리스의 매력도 알거 같고, 휴잭맨에게 가슴도 뛰어보고. 취향은... 네, 변합니다 변합디다!. 
 


인셉션 보고나서 바로
능글능글 잘생긴 빨간양말에 금시계찬 한국형조폭스타일 저 아저씨 누군가요?
그날부터 당장 검색 시작.
그러다가 중간에 두달 남미로 여행다녀오는 바람에 오빠의 일거수 일투족 검색을 못했고요.
널널하게 노는 기간. 네이버 창에다가 '톰하디'로 검색하는건 하루 중 빠질 수 없는 일과가 돼버렸다. 인셉션 이전에 제대로 출연한 영화는.. 일단 우리나라에 개봉된게 거의 없는 실정. 단역을 많이 했어서 '출연'이 아니라 '출현'이라고 말해야 어울릴 프로그램도 꽤 있고. 

여튼 이번 사랑은 진득하게 오래가는거 같은데 (푸하하)

이 지경의 톰하디에게까지 사랑을 느끼는거 보면, 이번 사랑은 진실된 사랑인가봐;;;
(사진은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에서 브론슨 역할 중인 톰하디.)  

덕분에 자막 없는 <버진퀸>과 팔자에 없는 <올리버트위스트>까지 BBC드라마란 드라마는 죄다 들춰보고 있는 실정.
어릴적부터 비뚤어진 성격 덕에 나는 승자의 승리보다는 패자의 탄식에 공감하는 스타일이었다. 덕분에 언제나 주인공보단 주인공 라이벌만 좋아하고 애정을 쏟아왔고, 그러다 보니 당근 엘리자베스보다는 메리스튜어트!의 편이었고.
그러니 당연히 엘리자베스의 사랑 따우 흥! 더들리 경이 진심이었겠어? 권력 따라서 빨간머리 주근깨 소꿉친구 여왕됐으니까 권력도 얻을 겸 빌붙어서 여왕 좋아하는 척이라도 했겠지 뭐. 이래왔는데....
톰하디가 더들리 연기하니까 순식간에 둘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안타깝고 숭고한 사랑으로 바뀌어버리네...;;;; 좋아하는 남자 따라 180 휙휙 바뀌는 세상에 대한 기준점. 네네 반성하겠습니다.


 
사랑의 은혜는 참으로 크고 놀라워서
나는 이런 90년대 아이돌삘 사진까지 찍은 오빠까지 사랑할 쑤 있게 됐쒀!



여튼 톰하디가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 중에 평범한 사람으로 나오는 역할은 손에 꼽는데.... 오죽하면 <락큰롤라>에서 제라드 버틀러에게 자기 성소수자였다고 커밍아웃하는 꽃미남 밥으로 나오는게 그나마 평범한 인간축에 속할 정도.
역할마다 눈빛이며 표정이 쫙쫙 바뀌는데, 필모를 훑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1세기 셜록(베네딕트)랑 같이 출연한 드라마 스튜어트의 생애. 근위축증 앓는 노숙자로 나왔는데 근위축증 연기를 너무 잘한 덕에 톰하디의 대사는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근데 참 귀엽고 마음 착하고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과정이 너무 잘 그려져서 (비록 쓰레기통 옆에 주저 앉아 있던) 톰하디지만, 나... 톰하디 진심으로 주워오고 싶었쒀.... 마지막 베네딕트 운전 씬엔 눈물이 펑펑 오지게 흐릅디다. 




<THE TAKE>였나 개쓰레기 나쁜놈으로 나왔을 때 인듯.(톰하디 이미지는 구글에서 죄다 주워와서 출처가 어딘지 모르겠다 ㅠㅠ) 스튜어트 할 땐 분명 순박하게 어리버리한 노숙자였는데 언제 이렇게 엘리트(?)돋는 쓰레기 눈빛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여튼 이 사진 보면 오빠가 미남은 맞는듯.


여튼 그래서 요즘 내가 제일 기다리고 있는건....
다크나이트 라이즈 개봉일!

1년 넘게 남았는데 어찌 기다릴지 모르겠다 ㅠㅠ
안그래도 크리스챤 베일을 싫어하고 배트맨을 증오하는(부자 싫어요 부자 나빠효!) 나인데
오빠가 배트맨의 허리를 분질러줄지도 모른다니....
폭력은 싫으면서도 배트맨이 당하는 꼴은 좀 보고 싶고요. 그리고 가장 보고 싶은건 20Kg 넘게 늘렸다는 오빠의 등짝.
핸드폰 배경화면 노트북 배경화면으로 돌아가면서 쏠쏠히 쓰고 있다.



결론 : 우리 오빠 잘생겼는데 다크나이트 2에서 얼굴 가리지 말아주세요! ㅜㅅㅜ
의문 : 이 사랑이 내년까지 갈까? 아니, 9월에 개봉하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까지 갈까? 자고로 나의 사랑은 다섯달을 넘긴 적이 없거늘....


동생이 갤럭시2를 샀다.
덕분에 스캔 필요 없이 어릴적 흑역사의 사진을 마구 찍어
제목을 붙인 다음
나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내고 있다.

현대 문명이란게 이런거구나.
새삼 느낀다.


제목 : 밀지마 이 여자야!


저 좁은 구멍으로 다리 두짝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제목 :  오늘 주인공은 난데 왜 언니가 볼터치함?

유심히 볼 사항: 손톱이 하얗게 질리도록 옴팡지게 흰떡을 쥐고 있는 집요함.





제목 : 두번다시 오지 않을 신앙증 리즈시절

역시 미모의 차이는 머리숱의 차이인가;;;





제목 : 아빠 우리도 자식이랍니다.
부제 : 버려진 딸년임에도 지나치게 쾌활한 언니의 발걸음


이 사진은 1989년 연세대로 추정. 어딘지 딱 보여서 더욱 신기했음. 새삼 이 동네에 오래살긴 했다.



대학 동아리 모임에 다녀왔다. 
만일 누군가 내게 대학생활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내 동아리 이름 두글자만 말해도 족할만큼, 내 대학생활은 동아리와 동아리가 넓혀준 인간관계로 점철됐다. 

학생운동이 떠나간자리, 대체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 속 이제막 침투하기 시작한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대중문화. 그 시절 대학의 학부란 절대 절대 뭉칠 수 없는 모래알 같은 점조직이었고, 학부친구들만 봐도 다들 정붙일 곳을 찾지 못해 학교와 집을 오가는 놈들이 수두룩.

그 시절 학생운동이란게 어찌보면 한참 촌스럽고 오래된 조직인데, 나는 그게 구식인줄 모르고 참 열심히 살고, 즐기고, 그러다 또 어느날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울기도 많이 울고 웃기도 많이 웃고. 술도 참 많이 먹고, 먹고 또 먹고 또먹고 먹고 그러다 토하고... 푸하하.

비록 대학교 3학년 말에는 선거떨어진 트라우마에 더이상 못하겠다 자신없다 도망도 갔지만, 새내기부터 2학년 3학년. 3년 동안 누릴 수 있는만큼 '대학'이란 공간 자체를 한아름 누렸던 것 같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고, 바꿀수 없고, 내 학번대에 그런 생소한 조직을 한 경험한 것이 지금으로선 너무나 감사하다. 

여튼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동아리는 재작년에 문을 닫았고 어제는 그 이름을 기억하던 사람들이 모여 웃음밖에 안나는 옛 기억들을 추억하며 히히덕댔다. 

나는 우리동아리가 생각보다 오래갔고, 그게 참 용하고 장하다고 생각한다.
나만해도 한번 동아리 나가겠다고 난리를 쳤었고, 그 벌로 선배 돼서는 나간다는 후배들 붙잡고 또 붙잡고. (사람을 잡는 일은 언제나 참 고되고 괴롭고 외로운 일이다.) 그런걸 생각한다면 좁고 좁은 취업관문을 앞두고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사회에서 내가 속한 동아리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었다. 나 졸업 하고나면 바로 문닫을 줄 알았는데, 제법 기특하다. 용해 용해.

근데 동기놈은 또 그게 아니었나보다.
왜 없어졌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내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나까지 짠해지고 슬퍼지고 그랬다. 


많은 일이 있었던 4년이었다.
과답사, 동아리 공연, 중간고사, 학술제, 학생회선거, 기말고사, 농활, 전수. 그리고 틈틈이 껴 있는 데모까지. 1년이 정신 없이 바쁘고, 그래서 텅 비어 있는게 아닐까 내내 고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가득차서 넘쳤던 시절이었다.

우리과 강의실이랑 과자료실이 있던 인사대를 지나고 예쁜이 나무를 거쳐 올라가면 그야말로 내집같던 학생회관. 1층 문구점서점을 지나 2층엔 총학실 3층엔 자대실 사대실 동아리연합회실 학보사 계단을 또 오르면 내 식구 같던 땅방 맥방. 그리고 우리 탈방.
탈방서 밤새 술을 마시고 있노라면 깜빡깜빡 꺼지는 북악터널 불빛 너머로 아침동이 터오던 북악산.

떨어져 있을 땐 그렇게 아득할 수 없었는데 
같이 있다보니 손뻗으면 잡히는 가까운 시절이다.

돌아갈 수 없다는 희소성으로 더욱 값어치 있게 빛난다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 어제 다시금 꺼내놓고 주르륵 훑어보니 이렇게 자랑스러운게 내가 스무살을 헛산건 아닌것 같아 참 다행이었다.






집에서는 쉰다. 는 규칙은 쓸데 없이 왜 만들었을까?
하루종일 쉬고 또 쉬는 백수가 됐지만, 여전히 집에서는 쉬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돼버렸다. 결국 2주 가까이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이력서를 싸매고 없는 돈에 동네 커피숍까지 기어나왔다. 

반지하 커피숍에는 창문너머로 화분이랑 파란 하늘이 보인다. 흡족하네.

가망성 없는 일에 시간을 쏟고 있다. 비웃음만 사며 실패할 확률이 95%가 넘는다. 성공한다 해도 별반 뽐낼것도 없는 자랑담일 뿐이다. 그럼에도 도전하는 이유는 내가 사는 인생이니까. 할 수 있을 땐 해보는 게 언제나 덜 후회됐기 때문에-.

한글파일을 열고 고작 두줄 채워넣고 딴짓을 20분 30분. 


지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엔 술을 좀 마셨다. 라틴아메리카 소모임에 가면 맨날 흥분을 하는 것 같다. 고작 두달 있었을 뿐인데 할말이 무지하게 많은거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 신나고. 빠블리또 선생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길 하면서 오랜만에 소주 각2병을 했다. 살사빠에서 몽롱하게 춤춘것도 살짝 기억나고 취한 덕분에 살사바가 무지 이쁘게 기억남았던 것도 생각나고. 거기서 잠들었다가 집에가겠다는 일념하로 텨나온것도 떠오르고. 근데 아침에 눈뜨자마자 생각난건 내가 인터넷 여기저기에 술취해서 남긴 뻘소리들 뿐이다;;; 나도 모르게 '헉!'하고 눈이 떠지더라. 서둘러 트윗을 보고 여기저기 지울 수있는 흑역사는 좀 지워버리고....
 
여튼 그저 술은 마시면 주책, 남는건 흑역사 뿐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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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a!
Un poco mal. Muy Bien.




읽어야 할 책도 더 있고, 봐야할 영화도 있고
공부해야할 것들이 더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며칠은 더 빈둥대며 텅빈 생활을 해야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조금은 이르고 성급하다고 느껴지는 출발!
여튼 반갑다.  

뭐 대단하다고, 연락주고 만나주고 걱정해준 사람들 고마워요.
다시 만나게 될걸 뭘 그래요. 그러면서도 너무너무 고마웠어요.ㅎㅎㅎ
두달여의 빈자리는 만나서 채우기로 해요!


1. 아이유
내가 알고 지내는 남자애들을 표준집단 비교집단으로 삼을만큼 많이 않다고 할 수는 없으나, 최근 만나는 남자들마다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있기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사항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이유.
기) 초반 그들은 조금 심드렁한 자세로 관심 없다는 듯이 일관한다.
"아이유? 귀엽지"

승)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좋아한다고 말 못하는 그네들의 딱한 심정이 꼴 보기 싫다면,
단 한마디만 던지면 된다. 이 한마디면, 백이면 백! 석유먹은 종이마냥 아주 화르르 화르르 타다 재가 되버리는 꼴을 감상할 수 있다.
"근데 걔 노래 잘해?"

전) 이때부터 쏘쿨은 내다버린채 침튀기며 아이유의 3단창법에 대해 그녀가 가진 음악성에 대해 10분 20분 30분 썰을 푸는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결) 너무 웃긴게 마지막 마무리는 다들 한결 같다는 거다.
"나 아이유는 여자로 좋아하는게 아니야. 오빠 같은 마음(누구마음대로 오빠인진 모르겠다)으로 곁에서 잘해주고 이뻐해주고 싶은거지"
부정을 거듭하면 긍정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근데 자꾸 부정을 거듭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하니까 나로선 긍정이라고 추측할 수 밖에.... 솔직히 나는 옥택연이 좋다. 남자로 좋다. 근데 왜 니들은 아이유가 여자로 안좋은지 모르겠다.
(설마 그정도면 '이쁜게' 아니고 '귀여운'건 아니겠지.-_-)

덤) 요즘엔 가사가 참 노골적이다. 그냥 속마음을 다 말하면 가사고 노래고 그렇다.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케에에에"
부정적인 자세를 버리겠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작사가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받아들이겠다.



2. 과거의 연인
서른줄에 들어서다보니 엑스보이프렌드와 엑스걸프렌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여기서 또 말도 안되는 여성과남성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를 하나 내리자면, 과거남자애 대한 여자애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라는 거다.
그(딴)놈 때문에 흘린 내 눈물이 아깝다는 둥, 지금까지 연애하고 있으면 어쩔뻔 했냐는 둥. 진작 헤어지고 또 헤어졌어애 했네, 그때 결정을 백번 천번 후회하지 않네 등등. 지나간 과거에 안타까운 연민과 현재에 대한 안도 뿐이다.

근데 너무 웃긴게 남자애들인데, 대다수 과거 여자에 대한 애틋한 향수만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때 내가 잘했어야 했는데, 다시 연락했었어야 했는데, 내가 무심했지, 내가 죽일 놈이었지. 그리고 내리는 결론은 지금이라도 어떻게 다시 한번?

근데 또 내가 처한 상황이 특수하다보니, 남녀가 섞여 있는 자리가 아닌, 남자들만 우르르 모였거나, 여자들만 우르르 있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대화만 듣고 있다.  대게의 이성애자 남자라면 여자를 만나서 연애한 것이 당연하고, 대게의 이성애자 여자라면 남자를 연애한 것이 당연한데
과정은 같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왜 그리 판이하게 다른지 손들고 누구한테라도 좀 묻고 싶다.


3. 결혼의 순서.
결혼에 관한 이야기도 단골 화제다. 근데 정말 빵터지는 건 여자애들이 말하는 결혼의 순서와 남자애들이 말하는 결혼의 순서가 정반대라는 거.
여자 - 1. 둘이 먹고 살 수 있을 법한 능력을 가진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2. 사랑하니까 결혼을 한다.
남자 - 1. 사랑을 한다. 그러니까 결혼을 한다.  
          2. 결혼을 했으니까 둘이 먹고 살수 있을만한 능력을 갖춘다. 

내가 이쪽저쪽 말을 들으면서 너무들 평행선을 달리시는 것 같아서
여자애들한텐 남자애들 의견을, 남자애들한텐 여자애들 의견을 전했다.
돌아오는 것은 바가지로 드링킹할 욕 뿐이다. 너는 세상을 모르고 철이 안들었고, 너는 속물적이고 물욕적이란다.
이렇게 중간에서 낀세대로 살 것이 아니라 언제 한번 자리를 마련해서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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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말 좀 들어보시죠"






앙증은 핸드폰번호 딸 때 만큼은 선수야 선수. 거부할 수가 없어.
란 소릴 들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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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바로 이런 사람....)

친구의 결혼식에서, 혹은 길거리를 지나치다 만난 우연한 기회에서, 핸드폰을 들이미는 나는 주저함과 망설임을 몰랐다. 언제나 담대하고 용맹했다. 10수년 전 학교에서 각종 비행과 일탈 그리고 외모로 말미암아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오빠라 불리던 남자애도, 애틋한 미모로 여자애들의 가슴 설레던 남학생도 거칠것이 없고 가릴것이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러한 용기(만용?)을 부리게 한 것은, 고런 멤버가 좀 끼어야 연말에 있을 반창회(?)가 성황을 이룬다는 진리 때문이었다. 남들에게야 오빠였고, 미소년이었지 사실 학교 다닐때 그들중에 날 설레게 한 사람은 없었다고!
 
그렇다면 정작 내가 번호 따여본적은 있는가.






있다.
세번.
모두 여자들한테;;;;


이 경험을 가능케 했었던 건 <개청춘> 덕분이었다. 개청춘은 인디다큐멘터리 계의 <시크릿 가든>이었나봐.... 길가다 낯선 얼굴이 '저 혹시...'라고 말하면 '넵! 개청춘 보셨죠?'라고 응수하는게 익숙해져갔다. 연락처를 원하면 연락처를 주고 나중에 시간되면 차나 한잔 하자고 진심을 다해서 말했었는데, 정작 다들 번호만 따가시고 함흥차사 모르쇠 였다.
그러다가 며칠 전 작년 봄에 우리 집앞에서 내 번호를 따간 풋풋+상콤한 연대(여학)생에게 연락이 왔었다. 이제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간다는 상콤이는 겨울방학. 나는 여행을 기다리며 무기력하게 방바닥을 긁는 백수. 그리하여 엊그제 연희동에서 우리는 만나고야 말았다.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깊고 나름 자신의 미래를 길게 내다 볼 줄 아는 상콤이 한테 진짜 뻥안까고 많은 걸 배웠다. 나 대학때는 어땠더라? 상콤이에게 늙으니 꼰대마냥 '저 학교 다닐때는 말이죠..'라고 주섬주섬 기억을 말하다 보니, 언뜻 언뜻 스치는 장면들이 꽤 됐다. 말할때마다 후회와 그리움이 뒤범벅. 더 넓게 볼 걸. 도망가지 말 걸. 그때 좀 더 잘할 걸. 대화로 해결할 걸. 그러다 보니, 내가 상콤이 그녀에게 해줄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일반적인 줄서기의 삶을 택할것이냐, 이탈을 꿈꿀것인가. 입으로야 그런 삶이 싫다, 진저리 난다. 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역시 나부터가 이명박이고 나부터가 모순이고 그렇다.
결국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금 내 상태가 어떤것인지 진단불가능한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와서 피드백 되고 반성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상념들이 많다.

사람이 스물다섯을 전까지 만나는 사람들이 A,B,C라면 스물다섯 이후에 만나는 사람들은 A다시, B다시, C다시 라고 들었다. 비슷비슷한 사람들을 반복해서 만난다는 이야기다. 그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아직 서른.
그 누구에게라도 번호 따이는 것에 주저하지 않겠다.
그 누구라도 번호 따는 것에 망설이지 않겠다.
새로 만나고 새로 배우고 부딪히고 싸우겠다.
아직 누려야할 많은 것들에 용기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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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도 춥다는 염장아닌 염장 엽서를 보내온 만두에게

백수가 되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폭풍같은 스케쥴에 시달려야 하는 걸까?
나도 답을 내릴 수 없는데 니가 답해줄 수 없는 물음이겠지. -_-

지난주에는 부산을 다녀오고, 금요일에 출근 아닌 출근을 했다가 이번주 월요일 화요일은 1월에 마무리한 기획안을 가지고 대전에 워크샵(?)을 다녀왔어. 열한시간 무의미한 회의를 진행하면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들을 내가 얼마나 알차게 사용할 수 있을까 같은걸 분통 터뜨리며 아쉬워 했지.
 
어제는 도난방지(?)용 자물쇠 두개와 쇠줄로 된 개목걸이 (유럽에서는 기차 화장실 갈때마다 선반에 칭칭 묶어두는 역할을 했는데 남미에선 어떤 효력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신촌-홍대지역 헌책방을 순례하며 여행지에서 읽을 문고판(?) 책들을 샀어. <불의 기억> 하드커버 양장본 3권을 들고가는 마당에 실천문학사에서 <체게바라 평전>을 들고 가는건 너무 오바(?)라고 판단하고 있었지.
(난 체게바라 평전에 대해서 아주 학을 떼는데, 대학 다닐때 반운동권학생회 애들이 빨간색 표지의 체게바라 평전들고 다니는 걸 너무 자주 봤거든. 토익책 토마토 따위와 함께 놓인 빨간 표지를 봤을 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아니? 그날 이후로 그 책은 두 번 다시 펴보지 않았어)

여튼 신촌 북오프에 시공사 디스커버리에서 나온 체게바라 관련 책이 있더라. 시공사 디스커버리의 최악의 발번역과 억지스런 조합, 구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작고 가볍단 이유 하나만으로 골랐다.ㅋㅋㅋ 산타 끌라라까지 가는 마당에 스페인어로 "아스따 라 빅또리아 시엠쁘레!"라고 외쳐는 봐야하지 않겠뉘? 푸하하하. 아이콘으로 박제 되어버린 것이 우습다. 우리끼리 체게바라에 대해 말도 많았지만 되새길 수 있는건 되새겨 보고 싶어.

헌책방 순례에서 가장 대박은 목표했던 잉카 문명에 관한 책을 구한거였어. 민중의 집에서 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소모임에선 가서 느껴보는것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답사가 더 맞는 체질인가봐. 아는 만큼 보인다고 믿고, 알아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오얀따이 땀보에서 마추픽추로 넘어가는 잉카 트레일에서 이 책을 꺼내 읽겠어. 고산병으로 심호흡좀 하면서 코카잎좀 질겅이지 뭐.

역시 너에게 편지를 써야 여행 준비할 맛이 나는구나. 푸하하
그럼 나는 추스린 마음을 들고 다시금 여행준비에 매진하겠어~

어제 엽서를 전해주던 엄마가 만두 너 언제 돌아오냐고 묻더라.
어제 금환이랑 소소하게 수다 떨고 커피마시면서도 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
우리가 네 빈자리를 기억해주는게 부담은 아니겠지.
여튼 어서 돌아와서 네가 겪었던 소소한(?) 대대한(?) 일상들을 나눴으면 좋겠구나.
기다리고 있을께. 공항 들어올 때 두꺼운옷 칭칭 동여매는 것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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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날씨는 아직도 엘 깔라파떼!
앙증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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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백수 첫날에 돌입하여 만두에게

그러고 보면 올해 시작하고 너에게 편지를 제대로 쓴날이 손에 꼽...아보려고 했는데 없구나.
ㅋㅋㅋ 회사를 오후출근 하는 바람에 나의 근무시간은 고작 4-5시간이었고 그 시간 내에 모든 업무를 해치우려고 하다 보니 폭풍 업무 돌입!  도통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 회사 끝나고는 너도 알잖니. 그 시간만큼을 절대 양보 할 수 없는 동네파들과의 시간인거. 푸하하.
그리하야- 나는 백수 첫날에 돌입하였단다. 비록 우리동네를 내리쬐는 아침해가 너무 밝아서 9시에 일어났지만 말야.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백수 생활인데 이번주 나의 저녁 스케쥴은 '화수목금토'가 꽉 차고 말았다는 불행한 소식이 하나 추가야;;; 백수되면 만나자고 연락을 죄다 뒤로 미룬자의 처참한 결말이지. 여행 도착해서 초조하고 촉박한건 딱 질색인데,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너무나 많구나 준비하면 할수록 느껴. ㅠㅠ

여튼 오늘부터 대략적인 비용 일체와 이동구간/ 머무를 코스를 알아보고 있는데 벌써부터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이곳에 가면 뭘해야겠다 저곳에 가면 뭘해야겠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

하지만 오전 10시부터 책상에 앉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제막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깔라파떼로 이동했을(?) 뿐이란 거. 깔라파떼에서 빙하를 걷는 기분은 어떨까? 생각만해도 염통이 쫄깃해져 오는데 부풀어오는 나의 심장을 빵! 하고 터뜨려 버린건 엄청난 고비용! 푸하하.
이번 여행결심 중 하나는 돈소리 덜하기 인데, 과연 그렇게 될까 의문이다.

여튼 요즘 한국은 깔라파떼와 다를바 없는 날씨를 선보이고 있단다. 여행가기 전에 적응하고 가란 뜻인가 봐;;; 대만도 춥다고 하는 너 이지만, 한국은 무시무시한 한파 속에 있단다. 무려 10일 넘게 영하 10도 아래로 넘어가는 날씨를 선보이고 있어. 우리가 초등학교때 배웠던 3한4온따위 죄다 거짓말이 돼가고 있다고!!! 우리집 예전같이 방에 불 안때고 그런짓 안하는데 집에 있어도 추워. 화장실 가는게 얼마나 곤혹스러운 일인지 넌 상상조차 못할꺼야.
이번주 수/목 부산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부산도 무려 영하 7-8도에 수도가 얼고 대난리라는 소리를 들었어. (난 정말 여행가면서까지 내복을 입고 싶지 않다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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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곳은 남극 근처이지만, 사진은 북극여우로 ㅎㅎㅎ)


교과서에 나온 말조차 죄다 거짓말이 돼버리는 세상이야.
확실한 것 하나 없는, 변하지 않는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무사하기 힘들다는 남미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어.
다시가고 싶다고 다시 가고 싶다고 발동동 구르며 내 침대위에서 하이킥 하고 싶어.

이제 다시 몰입해서 여행계획 짜야게구나 적어도 오늘 아르헨티나 여행준비는 끝낼 참이야.
배운지 9년 되는 엑셀 더하기를 어떻게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얼굴 못본지 꽤 되니 보고 싶단 낯간지러운 말도 던져본다!
(지금 부끄러움에 낯붉히고 있음ㅋㅋㅋ)



마음만큼은 엘깔레파떼 모레노 빙하 위에서
체감온도 엘 깔레파떼 모레노 빙하와 다를바 없는 서울에서
-만두 너를 보고파 하는, 네가 돌아올 날을 손꼽아보는 앙증




회사 퇴직 기념으로 이런저런 선물들을 많이 받았다.
후배 보*씨가 라틴아메리카 문학 소설책을 두권이나 선물했고,
귀여운 동물 시리즈 다섯개를 사고도 눈을 못떼던 나를 위해 버니, 금댕, 도도가
미니어쳐 두개를 더 사줬다.

본래 나는 퇴직하면서 내 짐이 든 종이 박스를 들고 뒷걸음질(?) 출을 출 계획이었으나,
나 다니던 회사 그렇게 악독한 회사 아니었는데, 너무 악독하게 보일까 참기로 했다.
ㅋㅋㅋㅋ
(그나저나 그 큰 박스 들고 춤췄다가 넘어졌으면 정말 큰일 치뤘을 듯)

동네파들과 축하주 한잔 하려고 했으나, 황열병 예방접종 관계로 관뒀다.
나의 목숨과 건강은 언제나 소중하니까요.
대신 신나게 먹어줬다. 크라제 버거를 먹고 와플에 아이스크림을 한가득 얹어 먹고 국대 떡볶기로 마무리. 날이 춥다. 이런 겨울 체온으로 뺏기는 열량을 보충하기 위한 방법은 정녕 먹는 것 밖에 없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열심히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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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회사 마지막날이다
방송일을 하다보면, 대게는 짧게 6개월 길게 일년 옮겨 다니기 바쁘단다.
하지만 난 딱 두군데서 일한게 전부다.

처음 일한 직장은 k본부 가장 큰 외주사였다.
두번째 직장은 그토록 원했던 본사 역사팀이었다.
역사팀에선 다시 K본부 가장 큰 외주사가 새로 차린 회사로 이동했다.
회사 이름도 위치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적응시간 따위 필요 없었다.

매번 마지막이 오면 나는 어떠했나?
정말 우스운건, 마지막 날의 나 였다. 만나고 헤어지면 다시 만날날이 있는법인데, 마치 그날이 오지 않을것 처럼 마지막날보다 펑펑 울었다. 역사팀에서 지금 회사로왔던 날이 생각난다. 진짜 많이 울었었다. 섭섭함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울었다. 아침에 일어나다 말고 울 정도 였으니까, 말 다했다.

자꾸 그날의 나를 떠오르는건, 그날 '오늘의 나'를 그려보기나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고.

처음과 마지막엔 생각이 많다.
내일 어떤 모습으로 떠날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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