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어보니 얼추 십년만이다. 금요일엔 대학 학생회관 동기들을 만났다. 자대 사대 소프트웨어대... 같은 전공 하나 없었지만 1학년 봄 총학선거때 만나서 대학시절 가장 긴 시간을 함께 하고 가장 많은 일들을 해온 애들이었다. 그 얼굴들을 다시만나니까, '아, 이제야'란 탄식이 나왔다. 숨이 트이듯 참아왔던 밭은 숨 같은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 이제야, 하고 싶은 말을 할 사람들과 마주했다.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과정이 틀린 건 아니다. 그러지 말자고, 그러지 말자고 자기 부정같은 것 하지 말자고 수백번을 되뇌여도 실은 아픈건 아픈거다. 스물 하나 스물 둘에 꾸던 꿈들은 결국 미완으로 남았고, 끝내 현실이 되지 못할 것을 예감하면서, 때때로 나는 그것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견디기 힘든 것 투성이인 것이 내가 사는 세상이고, 용납할 수 없는 허물 투성이인 나 자신의 일부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비슷한 꿈을 꾸면서 같은 것을 말하던 그들을 만나서 말을 하고 싶었다. 

구운 새우는 맛이 있었는데 소주가 무척 썼다. 해물라면을 시키면서 나는 2002년 민주노동당에 가입할 때 이야기를 꺼냈다. 마땅히 그때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친구들이어서 말했다. 그때의 꿈을, 그때 그렸던 5년 후 10년 후를 이야기 했다. 

이 아픔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다.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 그걸론 부족했다.
내게 필요한 건 나도 아프다고 나도 아파하고 있다고 말해줄 사람이었다. 들이킨 술잔의 숫자는 자꾸 늘어갔고 밤은 깊어지고 드문드문 비가 내렸다. 다같이 10년 전 꾸던 꿈을 조금씩 더듬어갔다. 화석처럼 남아 먼지를 거둬내지 않고서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희미한 흔적들... 그 흔적이 스무살 한 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반짝반짝 빛을 내는 보석같은 존재였는지... 그 존재를 알아줄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는 수다는 계속됐다.  그리고 나는 나의 한 부분을, 날것처럼 내보이는 내 상처를, 그 선명한 통각을 경험하고 있는 친구들과 있었다. 

친구들 앞에서 나는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것이 없었다. 이만한 위안이 또 있을까. 아마도 위로 받을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토록 이 친구들이 보고싶었나 보다. 






뾰족한 아픔들이 돋아나네. 뾰족한 아픔들이 자라나네.
그대여 더 늦기 전에 그대여 더 늦기 전에


2002년도에 민주노동당 가입한 이후로, 당적이 없었던 적은 없다.
지난주 즈음이던가 통장에서 빠져나간 2만원이 (처음으로) 아깝단 생각이 들면서 12년 만에 처음으로 당적 없이 지내볼까 하고 고민하고 있다. 

뭐 사실, 대단하게 활동하는 당원은 아니었다.
당비 밀리지 않고, 간간히 모임에 나가고, 가끔씩 특별당비나 보태고, 선거 앞두고 몇번 선거운동 뛰는 것이 당원 활동의 전부였다.

하지만, 2002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가 가진 당적이 내 에고의 한부분이자, 내 생각과 행동의 기반이 되는 하나라고 여겨왔다. 설령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내 본질의 하나이며,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싹다 갈아 엎고 싶은 여당이 아니라, 등신 천치같이 미적거리는 야당이 아니라 
더 많은 변화를 말하고 더 자유로울 것을 더 평등해질 것을 말하는 '작은 진보 정당'은 내게 얼마나 큰 자랑이었던가. 언젠가는 열망하는 꿈이었고, 현실로 다가올 날이 있다는 예언이었으며, 나를 움직이고 외치게 하는 힘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 나의 한 부분으로 위치해왔다.

그런데 그런 요즘엔 그런 자부심이 생기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내가 소속된 우리 당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제 더이상, 노동장이 녹색당과 무엇이 다른지, 정의당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세상이 얼마나 변할지도 말 할 자신이 없다. 사실은 우리가 과연 집권할 수 있는가를 헤아리는 것 조차 우스운 일이 돼버렸다.

탈당을 할지, 말지는 아직 결정하진 못했다.
나의 결정이 어떠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은, 아직 모든 희망을 버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진보정당 12년. 이렇게 처참하게 흩어지고 깨어져 부서진다면, 다시 합쳐져 변화를 마들어내는 '힘'이 될 날이 있으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지금 이렇게 투덜대고, 투정 부리는거라 생각하고 싶다.


옹졸해서 겉치례 번드르르 들기름바른거 같은 은근한 자기자랑 들어줄만큼 도량이 넓지 못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비가 목사와 마주하며 수다를 떠는 '지난한' 시퀀스다.
마음이 갔던 건 영상보다는 두 배우가 주고 받는 '대화의 내용'이었다.

세상 만사가 유물론적 사고로 결론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재하는 것들에는 힘이 있다.

어떠한 생각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변질되는 임계점이 필요하다.
물론 모든 생각이 그 지점을 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생각이 아주 작고 사소한 범위를 지나 임계점을 넘었을 때 
때론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삶의 방향을 선동하는 역할을 해낸다.

행동 하나마다 당위가 필요하고 그 행동을 변명하고 옹호하는 순간 삶은 그 당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임계점을 넘은 생각에는 가속이 붙고 날이 갈수록 더 큰 힘이 생겨난다. 
   
그가 선지자가 될 수 있었고,
마땅히 영웅의 역할을 해냈으며,  
능히 제단 위 어린양으로 바쳐졌던 투쟁.

먹는 것과 배설하는 것
흡수하는 것과 뱉어내는 것.
산다는 것, 생이 가진 본능 전부를 쏟아내며 완성하는 보시(布施). 

그리고 그 보시를 통해 임계점을 넘어가기 시작한 수많은 생각들. 
그 모든 연결고리가 완벽하게 이어지는 대화였다.

선구자는 위대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부딪히는 삶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완성된다는 그 진실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그것이 아주 사소한 시작점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서
손가락이 담배재를 톡톡 두드리며 대사를 읊는 그 시퀀스를
다섯번 정도 돌려 봤던 것 같다. 

 
 



요즘들어 책보다 더 많이 섭렵하는 장르가 된덕에
간단한기록이라도 남길까 해서 페이지를 만든다.
가끔씩 추가해주고 내키는대로 감상평도 몇줄 남길듯

2014.1.1
THIS IS THE END - 영진이와 치킨 뜯으면서 집 TV연결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 만든 팝콘과 MSG를 들이부은 감자칩 그리고 혀까지 썩을 것 같은 설탕이 녹아 있는 탄산 음료수와 함께 해야 어울릴법한 영화. 팝콘은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 자리를 양념치킨의 저렴함이 채웠다. 영화 이야기에다가 양념치킨 이야기를 넣는 건 딱 양념치킨 맛 같은 저렴함이 돋보이는 수작이기 때문에 ㅋㅋ 파인애플익스프레스2 찍어줘요.

2014.1.4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신촌 메가박스 조조 동네파와
Ground control to major Tom!
나도, 나도, 우주 공간에서 이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면
이번 생이 끝나기 전에 바오밥 나무 사이로 해가 저무는 풍경 정도는 보고 싶다.

2014.1.5
반지의 제왕 코멘터리 시청 - 카인님댁에서
왜 DVD를 소장하고 블루레이 디스크를 사는지 알게 됐습니다.
덕질은 함께 하면 배가 되는걸요.

2014.1.18
셜록 시즌3 - 집에서 TV연결
추리보단 팬픽이 좋아요.

2014.1.29
겨울왕국 - 신촌 메가박스

2014.3.5
레고무비 - 목동 메가박스

2014.3.6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아트하우스 모모

2014.3.7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재시청) - 집에서 TV 연결

2014.3.9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 만두네 작업실
웨스 앤더슨은 어떻게 자신의 '추억'에서 자신의 '세계'로 확장했나.

2014.3.12
노예 12년 - 신촌 메가박스 은지와
보는 내내 도리스 레싱의 풀잎은 노래한다의 구절구절이 떠올랐다.
+마이클 패스벤더 이 미친자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 신촌메가박스 금댕이와
규정에 대한 투쟁, 사람은 누구나 변화하고 맞설 수 있다는 또 다른 확인.
+같이 본 친구에게 살폿이, 자레드 레토의 본판 얼굴 사진을 검색해주었다.

2014.3.14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블루레이 부가영상 시청 - 집에서 TV연결
감독은 피잭이나 마블의 스페셜 피쳐와 확장판을 본받으라!
메이킹 필름이 9시간은 돼줘야 블루레이를 사도 잘샀다 싶은거 아닌가요? 
토르2 블루레이 부가영상 시청  - 집에서 TV 연결

2014.3.15
300 II - 신촌 메가박스 조조
살이 찢기고 피가 튀고 뇌가 으깨지는데 졸음과 피로감을 준 영화.
이 영화가 준 데미지를 씻어내고자 나는 다음날부터 질좋은 영화 를 미친듯이 탐닉하게 됐다

2014.3.16
300 II 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싶어서 이날 세편의 영화를 들이부은 날
원티드 - 집에서 TV연결
바스터즈 거친녀석들 - 집에서 TV연결
셰임 - 노트북
어머어머 이건 반드시 극장에 혼자가서 혼자 관람하고 혼자 곱씹으며 집으로 왔었어야할 영화!

2014.3.21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 - 아트하우스 모모
프로메테우스 - 집에서 TV연결

2014.3.23
300 - 노트북
300 II가 얼마나 거지같았는지를 가늠해보기 위해 시청

2014.4.2
만신 - 아트하우스 모모
벨과 세바스찬 - 아트하우스 모모 
큰 개, 그리고 알프스의 사계절. 
열시간 스무시간도 넘게 볼 수 있는 이 영상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2014.4.3
캡틴아메리카 원터 솔져 - 신촌 메가박스 조조 임지랑

2014.4.5
문라이즈 킹덤 - 만두네 작업실
로열테넌바움 - 만두네 작업실
헝거 - 노트북

2014.4.6
카운슬러 - 노트북


십여년만에 잡아본 외할머니의 손은 무척 차가웠다. 
힘이나 의지는 도무지 찾아 볼 수 없었고
그저 남은 세월만 간신히 헤아릴 수 있는 손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유해가 납골당에 모셔지고,
목사님은 마지막 기도를 올리라고 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고 발음은 무척 불분명했다. 
중얼 중얼 방언같기도 하고, 주문같기도 한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감사하옵나이다... 
다시 만날 날을 믿사오며...  
우리 죄를 사하신 것 처럼....
그곳에서 평안을 허락하시옵고...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고 그곳에서의 축복을 갈망하는 내용이었다

그날을 믿는다기 보다는
믿고 싶어하는 믿을 수 밖에 없는  이별의 순간. 
세상 모든 아픔을 위로해줄 수 있는 건  
믿음 밖에 없단 생각을 했다.

언젠가 '맹목'을 가진 '믿음'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한적이 있었다. 
평생 경계하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대신으로 전국 글짓기 대회에 날 데려가고,
외할아버지네 초등학교에서 손녀손자 다섯을 데리고 몇날 며칠을 돌봤던 할머니는
정말 어린아이처럼 작아져서 흐느끼고 있었는데,
인간이 주어진 모든 불행 앞에서 승리자일 수 없다면
차라리 맹목이나 맹신 같은 마취제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


나이를 먹을 수록 감지할 수 있는 맛의 범위는 줄어든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수백개의 미각의 차이를 경험하고 맛을 깨닫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지할 수 있는 맛의 수가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언젠가 나는 공감을 다양한 맛에 비유한 적이 있는데,
나이를 먹어가면 미각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인지할 수 있는 감정의 개수는 확장되는 것 같다. 
시야가 트이고, 사고가 확장되며, 이해의 범위가 넓어질 수록
타자를 통해 다양한 맛과 다채로운 색의 감정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살아가는 날이 많아 질수록 그 범위가 커져서 최근에 소소한 영화의 한장면까지 그렇다. 
이해 할 수 없었던 영화의 한 장면이 내 삶의 한 부분과 겹쳐지는 순간.
있는 듯 없는 듯 무의미했던 장면은  
떠올릴 때마다 콧끝을 따겁게 찌르는, 눈물을 시큰하게 뽑아내는
명장면으로 재탄생한다. 

얼마 전  <러브레터>의 한 대사가 그랬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건 
거무죽죽한 딱지처럼 떼어내고 나면 속시원할,
너덜거리는 궁상이고 청승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 순간 그 장면이 새롭게 보여졌다.  
잘지내냐는 안부의 인사는
이미 저세상사람이 됐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건네는 인사다.
알고는 있지만 차마 놓아줄 수는 없는 보내고 싶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
바꿀 수 없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걸쭉하고 질긴 마음들이 세상 천지엔 얼마나 많은가.   
그걸 '미련'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마음만큼은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감정은 물과 같아서 계획한 대로 흘르는 것이 아니니까. 

요즘, 간간히 버스타고 집에 가다가
오겡끼데스까의 의미를 혼자 곱씹어 봤다. 
자꾸 울컥하고 눈물이 나서 훌쩍이기도 해봤다.  
맵고 쓰린 통각에 가까운 맛이나는 '그 감정'에서는 꽤나 깊은 감칠 맛이 새어나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또 몇 장면을 새롭게 이해하고 
공감을 통해 새로운 맛을 경험하게 될까?

서른 셋에 펼쳐질 날들을 기다리고, 축복한다. 


잘지내니?

소소한 수다 2013. 12. 17. 14:09


누난 잘지내.

감기는 걸리지 않았는지
심심한 건 아닌지
같이 놀 친구는 사겼는지.
엄마랑 아빠 누나들이랑 형아 생각은 안나는지.

묻고 싶은게 참 많아.

공감의 부재

소소한 수다 2013. 12. 10. 11:49
방송국 엘리베이터에서 틀어주는 뉴스를 보는데 장성택 실각관련 소식이 흘러 나온다.
반혁명 종파주의가 이유라는데 내가 알고 있는 '혁명'이란 단어랑 너무 다른 의미라, 픽하고 웃음이 새나왔다.     

신문에는 '자유민주주의 부정 엄두도 못내게 해달라'라고 대통령이 한 말이 표제로 쓰여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의랑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그 모순에 너털 웃다 말고, 이런거에 분개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구나 왠지 외로워졌다. 

아는 것과 실재하는 것의 괴리가 크다. 그래서 나는 자꾸 견디기 힘들다.  
내가 알고 있던 지극히 당연한 권리, 
내가 알고 있던 가진자의 의무,
내가 알고 있던 신의 얼굴...  
하루를 살다보면 하나를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엊그제는 하룻밤 새 사천명이 해고당했다. 
그리고 어제는 천육백여명이 더 해고당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억울함에 동조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정치인의 탈세와 비리로 가득했던 2013년
프랑스 고딩들이 풀었던 바칼로레아 시험문제라고 한다. 

평소 같으면 나를 향해 던졌을 질문인데, 
이제는 가만히 있는, 공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너무 미워서
이 세상을 팍팍하고 건조하게 만들어가는
그들을 향해 던져보고 싶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원상복구 되지 못했고, 원상복귀 하지 못했다. 

괜찮다.  
산다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고 되돌아갈 수 없는 노릇이니까


핸드폰 속 통이 사진을 꺼내 보다가 그런 생각을 해봤다.
지금으로부터 일년 전, 까만 털이 수북하게 나기 시작한 통이의 모습이 너무 그리워서 
지구로부터 일광년 떨어진 별에가고 싶단 생각을.

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은 시미즈 레이코의 단편집 중 가장 유명한 만화 '잭과 엘레나' 시리즈 에서 차용한 아이디어다. 

엘레나는 2백년 전에 죽어버린 주인(텐류)을 너무나 그리워해서 자살(?)을 일삼는 비행로봇(?)이다. 그걸 지켜보던 잭은 엘레나를 위해 지구로부터 정확히 2백 광년 떨어진 떨어진 천문대로 여행을 떠난다. 수백광년 떨어진 그 행성에는 '지금'에서야 수백년 전 지구에서 쏘아진 빛이 도착할 시간이니가. 투시능력을 가지고 있는 엘레나는 망원경 속 지구에서  살아 있는 텐류의 습을 바라본다. 

사실 바보 같은 짓이고 무의미한 행동이다.  바라보는 것은 아무런 힘이 없으니까,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곱씹을 수록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만 깨달을 뿐이니까.

예전처럼 눈물 흘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 마음이 마모되거나 닳아 없어진 것은 아니다.
울면 울 수록 눈물의 방류점은 높아져서 그정도 높이에는 흔들려 넘치지 않는 것일 뿐.
닿을 수 없는 마음만이 계속 초라하고 허공에 빙빙 돌고 잇는 것 같고.

어떠한 시점으로 점점 멀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과거로부터 멀어지는 것일까
무수히 많은 과거들이 나만을 내버려두고 떠나가는 것일까.
시간과 공간에 대한 얼토당토 않은 생각들을 해보면서

알지 못하는 개념과 인지하고 있는 상념 속에서 쓸쓸한 마음만은 자꾸 한가득이라...
그래서 나는 소용 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엘레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 마음을 공감이란 이름으로 내내 곱씹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어릴적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건 '시야'였다. 
그림이 좋았다. 
꼬마 때는 멋진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조금 지나서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더 좋아졌다. 
이야기가 덧대여지면 
더 많은 것이 보였고 자잘한 하나에도 공감을 넘어서 동감할 수 있었다.
오래도록 만화를 좋아했었다. 

엄마가 보낸 5학년때까지 억지로 보낸 피아노 학원에선 늘 턱을 괴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6학년에 올라가서야 보내준 미술학원에선 늘 즐거웠다.
(보는 재미가 하나 없는 아그리빠 뎃생을 시작하기 전까지) 

지금도 나는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현재는 글을 쓰는 것이 업이지만
따지고 보면 보이는 영상에 음성을 덧입히는 일을 하는 중이다. 

방송을 매번 느끼는 건 '화려하게 금칠을 한 내래이션'한마디 보다는 
'순간을 사로잡는 한 장면'의 강력함이다.
(방송은 시각이 80%이상을 차지하는 특수분야니까.) 
영상을 넘어서는 내래이션이란 대게 거짓말에 가까운 법이다.

친구 이쥐가 추천해서 댄싱9을 보기 시작했다.  
류진욱, 남진현으로 시작해서 나중엔 누구라 고를 수 없이 레드전체의 빠순이가 돼버렸다.


댄싱나인 첫생방을 보던 날. 
왠지 AC밀란을 응원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챔프에 연재되던 슬램덩크 산왕전을 가슴졸이며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재밌다면 재밌다는 얘긴인데 보는 내내 맘이 좋지 못했다. 

그저 보고 감탄하기에도 부족한데, 대체 왜 스포츠와 같은 경쟁을 집어 넣을까
왜 춤추기도 부족한 아이들에게 군대처럼 소속을 집어 넣고 연대책임을 물을까 
소통을 위한 몸짓에 성적처럼 숫자로 결과를 논하는 것은 말이 되는 일일까,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은 끝이 없지만,
뭐 따지고보면 그게 현재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방증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배길 수 세상에 살고 있단 소리겠지.

여튼!
춤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내가 무대를 보는 순간마다 가슴이 뛰었던 이유는
'보는 것'은, 그것을 만드는 '순간'은,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이다.

춤을 보면서 감탄할만한 '진실'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좋아졌다. 
육체의 움직임, 몸의 언어.
과장도 왜곡도 덜어냄도 더해짐도 존재할 수 없는 진실한 '팩트'를 만나는 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 팩트감상을 방해하던 발카메라... ㅠㅠ 흑흑...)


다양하고 자잘한 팩트들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결론을 향해 맹렬히 달려갈 때 
구성은 빛을 발한다.
개개인의 캐릭터를 부각하고, 그가 살아온 인생을 보여줬을 때
그 사람의 움직임은 더욱 많은 것을 말한다. 
단순한 이해를 넘어선 공감.
그것이야 말로 예술이 수많은 장르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댄싱9은 보이는 시각과 설명을 잘 융합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눈에 띄는 무용수들이 모인 레드윙즈가 좋았고,
캐릭터 부각이 늦었던 블루아이도 알면 알수록 다들 착하고 실력있는 사람들이라
18명 모두를 응원할 수 있었다.
(솔직하자면 블루에서 몇몇은 다른 애들을 넣었어야 한단 생각이 드는 애들이 있긴 했다ㅜ)

여튼 나는 레드팀의 광빠..;;;가 되어,
댄싱9에 빠진 이후로 여섯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다.

레드 중에 누가 가장 좋으냐고 물으면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너무 좋아 대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댄서'로서 MVP를 주고 싶은 이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하휘동을 꼽겠다.  

35살. 
그는 아직도 춤을 춘다.

춤을 추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자아를 실현해왔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왔고, 마침내 증명해냈다. 
 
결론과 과정이 딱 들어맞는 완결된 '구성'.
이토록 완벽한 구성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참 부족한 구성작가로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늙다리 골잡이가 되어서도 은퇴 경기까지지 골을 넣는
필리포 인자기를 응원한 과정이 언제나 내내 간절했던 것처럼
아흔셋의 나이까지 쓴 글대로 살아왔던 에릭 홉스봄을 알아가는 순간이
감동을 넘어선 그 이상이었던 것 처럼

댄싱9에서 '춤을 추는 35세 비보이의 삶'의 단면을 지켜본 지난 두달은
유려하게 구성된 짜릿한 다큐멘터리의 명료한 결말 하나를 본 것같은 시간이었다. 
아주 오래도록 잊지 못할 이야기다.  


+덧) 그나저나 오늘 하휘동 ㅠㅠb
필리포 인자기 이후로 빠순질을 해도 평생 부끄럽지 않을 이름 하나 추가다.
오늘 MVP가 된 하휘동을 헹가래 쳤을 때의 감동은
2006년 아주리가 월드컵 우승하고 칸나바로가 컵 들어올렸을 때만큼이나 짜릿한 순간이었쟈나.... ㅠ ㅠ





약 2년 가까이 두장을 넘기지 않는 원고만 쓰다가
20여페이지 넘게 빡빡한 구성안을 쓰려니 역시 어색하다.
예전엔 쳐내고 쳐내는 게 일이었는데, 이번엔 채우는게 일이다.

그래도 방송일이란게 구성을 한다는게 늘 비슷하기 마련이다.
칸이 촘촘하게 선 쟁가를 쌓는 것과 비슷하다.
아랫돌을 잘 깔아야 높게 쌓을 수 있고,
의표를 날카롭게 찌를 수 있을 정도로 길고 뾰족한 날을 세울 수 있는 것 처럼...
짜임에 대해, 던져야할 화두와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끝없이 나열된 팩트(사실) 중에서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 
어디에 어떻게 놓아 사용을 극대화 할 것인가 
예전 프로그램이 몇개 되지 않는 커다란 블럭으로 완성시키는 일이라면
이번엔 자잘한 블럭으로 끝없이 상공을 향해 쌓아나가야 한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나같은 애에게 참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이젠 무엇을 말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지 고민할 때다. 

 


날씨가 다시 좋아져서
어제밤에는 통이랑 산책을 다녀온 뒤 멍청하게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통이가 더울까봐 여름 내내 쳐놓았던 가림막도 걷어냈고,
여름내 아빠의 간식거리가됐던 오이덩쿨도 쳐낸 옥상하늘이 어찌나 '탁'하고 틔였던지...

옆에서 물병을 잡겠다고 파닥파닥 점핑하는 통이와
아무리 뻗어도 도달할 수 없는 밤하늘의 풍경은
<라이프 오브 파이>를 떠올리게 했는데...;;;
(생선잡는 리짜드 빠커같이 너무 열심히 뛰어다니는 바람에...)

그 풍경이 너무 좋아서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행복을 결정 짓는 건 소유 보다는 경험이라고 하던데,
경험이 곧 소유 아닐까?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고 
영영 잃어버리지 않을 아주 흡족한 소유물

오늘 밤도 옥상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
<어린왕자> 속 나오는 여우의 뒷모습 같이
길이들어 세상에서 하나 뿐인 통이의 뒷모습과 함께.



작가로서 방송 일을 한다는 것은 연애와 상당 부분 흡사한게 아닐까. 
뭐 일단 일반회사의 정규직 자리가 아니니,
결혼처럼 정년퇴임까지 함께하겠다는 맹세 따위는 없는 거고...;;;
언젠가 끝날 것은 예감하지만 
여튼, 이 순간, 이곳에서, 뜨겁게 사랑하겠다는 약속 정도가 있는 작업.  

그래도 그 기억 때문에, 프로그램을 놓고 나면
언제나 아쉽고 안타깝고 후회하는 ‘실연’과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중이다.   

6개월이면 프로그램 할만큼 해봤다며 이동하는 이 직종 사람들과 달리 7년차란 말이 무색할 만큼 몇 프로그램 경험하지 못했다. 엉덩이가 무거웠고, 변화나 이동이란 말을 재밌어하기 보다는 피곤해 했었고...
여튼 그 중 두번은 내가 대쉬해서(?) 경험한 연애라 할 수 있고 자랑이었다.

요즘은 나의 마지막 연애(?)를 떠올리는 중인데.
반성과 후회지점이 많다.
그래도! 지금 이별하는 것이 절묘한 타이밍이었고,
먼 훗날 다시 잘될(?) 가능성을 남겨두는 일이었다는 걸 잘 확신한다.

여튼 지금은 
다음엔 누구랑 연애하지? 물색중인 타임이다. 

부디 좋은 프로그램, 멋진 프로그램 만나서
나의 수고와 노력과 시간을 바쳐도 아쉬움 없을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길

 


통이통이

소소한 수다 2013. 7. 25. 19:28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5월 21일 적군이 파리에 침입했으며 최후의 1주일간 파리의 근로자들은
삶에서도 그러했던 것처럼 죽음에도 강인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중략)
코뮌파들이 전투 중에 얼마나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투가 끝난 후에도 수천명의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43000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고, 그 중에 만 명정도가 판결을 받았으며
그 중 약 절반은 뉴칼레도니아로 유형을 당했고 나머지는 투옥되었다.
'젊잖은 어르신네'에 의한 복수였다.

그 후로 파리의 노동자들과 젊잖은 어르신네 사이에는 피의 강물이 흐르게 되었다

-에릭 홉스봄 <자본의 시대> 342p




여기서 나는 야만이라는 말에 대해 변명하고 싶은게 있다.
혼돈스런 개벽과 같은 혁명기에 누더기를 걸치고
성난 소리로 외치고
사납게 날뒤고
몽둥이를 휘두르고
곡괭이를 둘러메고
허둥지둥 낡은 빠리로 몰려와 민중들을 곤혹스럽게 했던
머리칼이 곤두선 그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었던가?

압제가 끝나기를
폭정이 끝나기를
군주의 살생권이 없어지기를
남자에게는 일을
아이들에게는 교육을
여자에게는 사회의 온정을
만인에게 빵을 자유를 평등을 연대를 사상을 세계의 낙원화를
진보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과연 야만인들이엇다.
그러나 문명의 야만인들이었다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송면 역, 동서문화사 1146p



단 한명을 위한 광적인 향연같은 루이 14세의 영광이나
전설로 남겨지고 영웅으로 포장된 나폴레옹의 전투와는 달리

패키지 여행에서 이런걸 만나기란 불가능한 장면이란걸 안다.
그래도 하루 반나절 저 두 구절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다음번에 또다시 빠리로 갈 수 있다면
100여년의 시간동안
 죽이고 또 죽여도 자꾸만 나타나던 공화주의자들의 흔적을 찾으러
 긴 시간 머물러 보고 싶다.



생각만 하는 내가 비겁하고 초라해 보여서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만이 주어진 전부가 아니다
오늘의 나를 가지고 내일을 살 사람이니까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무수한 생각들이 언젠가 무언가를 만들리라
단 하나의 생각이 이상을 만들고, 이상이 언젠가 혁명을 만든다는 
안네 브런의 'One' 노래 가사를 믿기로 했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고민하기로 했다


먼지가 바위를 만들고
공포가 분노를 만들고
심장박동이 시가 되어

이상은 혁명이 되리라

이상이 혁명을 부르리라
이상이 혁명이 되리라

어디선가 이 모든 게 시작되었다
아주 작은 하나로부터

모든 것엔 시초가 있는 법
태초에 하나가 있었다
모든 것을 가능케 한 단 하나가





호빗을 보고 도끼 썩는 줄 모르고 약간 미쳐 있는 상태다.  
문밖을 나서면 세상이 있고, 다시 돌아왔을 땐 나만의 이야기가 가질 수 있다는
간달프의 제안은 요즘 같은 세상 지금같은 일상에 얼마나 매력적인지...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
주문 같은 그 단어가 너무 욕심나고 탐이 났다. 
그러다 어제 프랑스 혁명사 스터디를 하다 말고
 
소소하게 대학시절에 대해서 떠들어 댈 일이 있었다.

집회 나갔던 일,
경찰서에서 보냈던 하룻밤,
농활에서 펼쳐졌던 풍경,
학생회 선거의 소소한 일들...
선배를 만나고 후배를 만들고 친구를 사귀고 어찌보면 별것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기억들. 그런 이야기들을 갖게 되는 건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저 조금 게으르게 보내고 텅 빈채 흘려보내는 시간 대신 
마음 가는대로 정이 가는대로 선택한 내 덕분이었다.    

요즘 부쩍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저 멀리 다른 대륙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들어도 좋고,
지금 있는 이곳에서 친근한 사람들과 소소하지만 특별하게 포장해 꾸미고도 싶다.






그분의 아빠를..

 



벨기에 시프도그 그루넌달
이라는 긴 이름과 영어 이름을 가지고 계셨어..;;;;

뭐 이름과 상관없이 널 사랑하지만...,

통아! 이제 어디가서 니 출처(?)를 모른단 소리는 하지 않을게! ㅎㅎ



그런데 너.. 가족을 보호하는 개라더라.
양도 치고 사냥도 하고 똑똑도 하다는데...;;;
으음...;;;


천 개의 생각보다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정말 '나'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그러니까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레미제라블에 푹 빠져서
누가 뭐래도 빅토르 위고가 한 말을 성경처럼 믿으며 살아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파이이야기를 읽고 맹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는 말씀

적절한, 그리고 어떻게 보면 적당한 자리를 잘 선점한 것 같다. 

노트를 사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여전히 서른 둘의 날들이 기대된다.  
축복하고 축하한다. 

 




춤을추며절망이랑싸울거야
우리들은얼어붙지않을거야

사랑하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1212

소소한 수다 2012. 12. 12. 12:57
바쁘지만 잘해낼거임!





우리집에 이 사랑스런 생명체가 온 것은 지난 여름이었다.
사랑하는 우리 통이에 대해 글을 쓴다면 백페이지도 쓰고 포스팅도 이억만개 정도 할 수 있다만, 이 모든 것이 늦은 이유는 단 하나!
포스팅할 시간 있으면 옥상에서 통이랑 노는게 더 좋았던 탓이겠지. 

여튼 이 사랑스런 생명체는 성장에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결과... 
 


회사에 있는 나를,
친구랑 있는 나를
언제나 집으로 소환하던 순도 100%의 싸랑스러움을 조금씩 벗어던지게 되었는데...
어느날 동생이 말했다.

"언니 나 우리 통이가 창피해서 차마 사진을 보여줄수가 없어."
"왜?"
"너무 못생겨서...."
"아니 어디가?!?! 우리 통이가 어디가!?!?!? 어디가 못생겨?!?!?!?"



동생은 자신 핸드폰에 찍힌 통이 사진을 한장 넘겨주었다. 

그 후로부터, 누가 개사진 좀 보여달라고 하면 
나는 변명아닌 변명을 하고 마는 것이다.

저희는 학대 안해요.
밥을 굶긴적 없어요.
때리지도 않아요.





빼어나오는 사랑스러움 
이 모습의 3개월 후...












.......................!!

 








다시 한번 종합

우리는 말못하는 강아지를 학대하지 않습니다.
때리지 않고요.
물론 밥을 굶긴 적도 없습니다.








여튼 신통은 산책길마다 다량의 니코틴을 섭취하며
(비행청소년임. 산책 1회시 약 한 번정도 담배꽁초 섭취. 입에서 빼려면 이미 꿀떡 삼켜버린 후.....)
오늘도 엄마가 일궈놓은 대야 위 파밭을 밀림마냥 헤치며
옥상에서 쑥쑥..;;; (요즘 앞발차기를 하면 내 가슴팍까지...;;;) 잘자라고 있는 중.



신통 사랑해♥
오늘도 고백했다 히히.





일일일. 하면서 보내느라 몇마디 적을 짬을 못냈다. 
이번에 마감한 건 자료 찾을게 많은 아이템이라 애 먹었고
그 와중에 알바까지 하느라 이리저리 휘둘리며 중심 못잡고 있었다.

며칠전 지하철을 탔는데 자리가 비어 있었다.
노숙인 아저씨 한분이 누워서 주무시고 계셨는데 아무도 그 옆자리에 앉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 풍경에 마음이 싸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걸까
같이 살아야하는게 맞는데 뭐 그렇게 두려울까, 
그 풍경을 곱씹으며 그 자리에 앉아서 왔다. 

좀 짬이 나서 이거저거 뉴스를 검색하는데 동네가 또 잔뜩 바뀐다.
홍익문고가 없어지고, 아트레온이 CGV가 되고, 민들레 영토가 없어진다.
10년뒤 내가 누구인지를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것들이 자꾸 없는 것 같아서
맘이 좋지 않다.
증명해줄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참 쓸쓸한 세상이다.  서울은.

대선으로 사람들이 어수선하다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세 명중 누구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노숙자도 사람이고,
아파트에서 자기 자녀들과 뛰어내린 베트남 이주 여성도 사람이고,
전기가 끊겨 촛불에 의지한 할머니와 손자도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알아 안다고!
엉망이고 부족한거
어디 내놓기 부끄럽게 엉망으로 방송됐다는 걸
어쩌면 그 부족함은 노력으로 채워질게 아니라는 걸
그래도 잘하고 싶은 걸 어떡해
'언젠가'에 기대고 싶은걸 어떡하냐고

따지고 보면

소소한 수다 2012. 9. 26. 13:26

그리 바쁜 것도 아닌데,
정신없이 지나치고 있다.
기록이 힘이라면서 기록하지도 못하고 말야.

만두가 구해준다는 아이폰키보드가 생기면 열심히 기록해야지 
마감 끝나면 블로그 써야지
이 드라마만 다 보면 글 써야지
어째야지 저째야지 핑계만 대고... 

10년가까이 모아온 윙크와 이슈를 기부하려고 하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다.
그 시절 내 생애 최고의 보물들이었는데, 
그 보물을 값싼 폐품 취급하는 도서관과 통화할때마다 힘이 쭈욱 빠진다. 
'그런 취급할바엔 내가 싸짊어지고 살겠음'
이런 생각도 들고...


태국사진을 이제야 뽑았다.
맘에 드는것도 있고, 좀 더 생각하고 정리했어야 했는데 아쉬움도 있고.

미안해서 시작한(?) 다이어트는 무리 없이 진행중이다.
한달하고 8일만에 무려 지방만 7kg감량 거기다 근육은 1kg 늘었으니
일단은 이번달은 대성공.
지난주말엔 고등학교 친구들이 
나를 보고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제부터 돌규가 참가하고 재민이가 참가하면서 인원이 늘었다.
정코치는 나의 놀라운 발전에 나보다 더 기분좋아했다.
(나는 아이템 고민으로 그 기쁜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했음)

그나저나 오늘 나 술 안마실 수 있나?


나는 감사한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에

공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이다. 
남성에 비해 '공감'이라는 정서가 짙다는 점,
그로 인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매력적인 일이다.

각양각색 음식의 향연처럼
다양한 감정은 다양한 향기와 다양한 맛을 가졌다.
인간으로 태어나 그것들을 경험하고 사유하고 내것으로 소화한다는 것은 멋진일이다.
그래서 나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여성으로 한국사회에서 태어난 것'은 다른 문제다.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참 많은 것들과 싸우며 살아가야 한다.
좀 더 화합하고 융화되길 바라지만
타협이 아닌 자아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세상은 싸울일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