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사랑의 플리커를 찾았다. 아직도 초절정 미남이시다 아.. 나 어떡해.. 이 나이에 가슴이 설레. 퇴근도 못하는 주제에 이러고 있다.(아련한 첫사랑 그는 아직도 초절정 미남 그때 독을 탔어야해.)2009-08-14 20:57:15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8월 14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요즘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주로 하는 일이 정해져 있다.
서로 질세라 경쟁하 듯 자신의 불행을 꺼내 펼쳐 놓는다. 절대 질 수 없다. 지금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냐? 나 역시 한 보따리 두 보따리 풀기 바쁘다. 그래서 얻는 게 뭐냐 물으면 사실 할 말은 딱히 없다. 여튼 '난 참 재수 없는 애다' '나 오늘 진짜 짜증났다' '참을 수 없이 열받았다' 욕하는 그 순간만큼은 신명이 난다. 나름 신나는 놀이다.
 니네 회사는 칼퇴가 없어지고 나는 수개월째 월급이 그대로고 걔네는 주말 출근이 확정이다. 아아! 이 가슴 속 한을 누구에게 풀 것인가? 불행한 영혼들 서로 비둥비둥 기대어 근근히 살아라도 가라고 살풀이 한풀이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번주 난 참 복도 없는 년이었다.
몇 달 전부터 잡혀 있던 만두 공연을 못갔다. 그래도 '혹시?' 라며 기대의 설레발을 쳤던 여름 휴가는 취소 예정. 내 평생 한으로 남을 27기 쭈꾸미들과의 제주도 여행은.... 이 선에서 체념 하는 것이 덜 아프고 덜 다칠 것이다. 딱지지고 흉지기 포기하는 게 낫다. 

차마 이 공간에 적을 수 없는 나의 불행을 떠올려 본다. 정녕 나는 불행한 인간인가? 인간의 만족도는 절대평가도 상대평가도 아니지만 오늘 이 시점에서 나는 내 인생을 점수 매겨 볼 수 밖에 없다.

올해는 홀수 년. 주로 내 인생은 홀수 년에 불행했고 짝수년에 덜 불행했었다

서른이 일 년 반도 안남은 이 불쌍한 영혼도
내 인생에 만족스러운 점수를 내릴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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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바쁘고 싶다. 덜 정신 없고 싶다.
주저리 주저리 타자 치는 지금 나는 이틀 밤을 합쳐 6시간을 못잤고
오늘은 새벽 6시에 일어나 14시간 연속 근무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내 아이템은 아직 보이지도 않는다.


울분

소소한 수다 2009. 8. 13. 13:11

역사 프로그램 팀에서 빌리는 책은 대게 크기가 컸다 두깨도 두껍고 날라야 하는 권수도 많았다 특촬실 매뉴퓰레이터에서 촬영하려면 대게 크기가 그정도는 돼야 쓸법하겠거니 싶었다.

왕복 40여분 거리 KBS도서관을 6번 왕복하던 날
낑낑대며 책 들고 연예인 대기실 앞을 지나는데 전화가 왔다. 한 번 더 도서관에 다녀와야 한다고. 사진집이랑 도판은 6권이나 됐고 책은 너무 크고 무거웠다. 이대로 연구동에 갈 수도 다시 돌아가 남은 책을 빌려올 수도 없는 상황.
 <연예가 중계팀> 건너편 화장실으로 달려가서 엉엉 울었다. 서러운 것도 아니고, 누군가 날 슬프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짜증이 났다 짜증이 끓는 간장처럼 온몸에 눌러 붙어 떼지질 않았다. 눈물과 콧물 침을 섞어서 불리고 불려, 박박 떼어내야 했다.
그래서 책 들고 가다 말고 화장실에서 울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일부러 소리내서 흐느껴 울었다 벅벅 긁어 내야돼. 다 벗겨 내고 멀쩡한 얼굴로 사무실로 돌아가야 돼.

사무실 들어가서 허허실실 웃는 내가 참 베알도 속도 없는 년이라 생각됐다.

짜증의 밀도라고 치면 이곳에서 그 비슷한 밀도를 100번 넘게 경험한거 같다
사람들의 무능함이 짜증나고 그 와중에 나는 최고 무능하고
처지가 처지라, 그 짜증이 더욱 엉겨 붙는다


끈적하게 눌러서 떼어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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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짐

소소한 수다 2009. 8. 12. 11:07
어제 만두 공연에... 결국 못갔다
ㅠㅠ
아아.. 아아... 아아아아악!!!!!!!!!!!!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나 빼놓고 재밌게 노는 건'데
어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이 벌어졌다.
동네파에게 단체 문자라도 보낼까 싶어졌다.
'나 없을 땐 니네 웃지도마' '밥먹을 때 대화도 하지마' 라고...

이렇게 된 이상. 휴가를 꼭 가줘야겠다
무리한 스케쥴 별 기대 없었는데 휴가를 향한 강한 의지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월요일 화요일 물 시원한 계곡에서 발담그고 수박을 먹어주겠다.
미루고 미루고 미뤘던 우나무노의 <사랑과 교육> 책을 읽어주겠다
읽다 만 에밀도 읽어치워주겠다.
이번 주말부터 확실하게 놀아주겠다 
쩡아 생파 문*기와의 약속 제대로 놀아주고 보란듯이 웃어줄테다
내 한 서린 웃음과 독기를 풀어야지 안그러고선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번 프로그램이 끝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 달 이상 장기 여행을 떠나겠다
일본이던 유럽이던 몽골이던 어디론가 떠나서 바람냄새 뭍혀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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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친구 만두의 공연일. 근데 왜 내가 떨리냐능… 아 제때 퇴근하고 싶어선가보다 ㅋㅋㅋㅋ2009-08-11 16:45:50
  • 세상에서 나 빼놓고 노는 걸 제일 싫어하는 아이는 친구들 한창 삼겹살집에서 만두 공연 뒷풀이 하고 있을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앉아서 으깨져라 펜끝만 질겅인다. 어른이 되는게 제 본성을 잃어가고 제 색을 잃어가는 길이라면 나는 진정 어른이 되기 싫다 눈물난다 ;ㅁ;2009-08-11 22:57:14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8월 11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모든 걸 남의 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쌍용차도, 며칠전 검거된 선배 언니도. 실천하지 않는 주제에 뭘 또 우울해 하는지. 그냥 이래저래 내 자신이 못나고 못난것만 반복해서 확인하고 있다.2009-08-04 15:26:31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8월 4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금요일 부터 2박 3일 원고 쓰는 우울 모드로 들어갔다가 일요일 저녁 늦게 간신히 빠져나왔다. 휴가나온 우리집 막내, 다시 유학 떠나는 요섭이를 기념하는(?) 외가 모임이었다. 장소는 신도림 모 샐러드바. 어른들 없이 애들만 모인건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내게는 외사촌동생이 하나 있는데 나이도 동갑이고 생일도 딱 하루 차이다. 샐러드를 몇접시 비우고 케이크에 몰입해 가운데 사촌이 한마디 한다.

"요즘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중이야."

너무 놀라서 씹지 않고 넘겼다. 그대로 목에 얹혔다. 그녀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니.
그녀가 하나님도 아니고 예수님도 아니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다니. 과연 '하나님'을 배제 한 채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놀라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춘기 방황 따위 일절 없이, 언제나 반에서 1-2등을 다투고 그것도 모자라 노래대회란 대회에서는 언제나 대상을 휩쓸던 그녀. 비록 그녀가 대학을 성악으로 선택하면서 입시에 좌절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나를 소외시키고 작게 만드는 존재였다.

하나님의 사랑과 가정의 평안함. 세상의 밝고 맑은 단면만 보며 밝고 긍정적으로 자라난 그녀.(얼마나 사랑스럽고 여성스럽게 자랐는지 '하나와 앨리스' 영화에 나오는 아오이 유우를 보면서 나는 그녀를 떠올렸다.)
그에 반해 그녀 넓고 깊은 사랑 앞에서 열폭하며 직설적이고 외설적인 말만 지껄여 대는 나는 얼마나 초라했는지. 모든 암담하고 우울한 현실만을 지껄이는 나에 반해 여유와 긍정 사랑을 이야기 하는 그녀는 참으로 대인배 였다. 그 앞에서 나는 언제나 작아질 수 밖에 없었고, 그녀가 너무나 반듯했기 때문에 내 비뚤어짐은 더욱 도드라졌었다.


단적으로 나타난게 후레쉬맨 놀이였다.
우리 때 후레쉬맨의 인기는 지금 동방신기 못지 않았을 때였고 애들이 모이면 맨날 하고 노는게 후레쉬맨 역할을 나눠갖고 역할극을 하는게 놀이의 전부였다.

모든 남자애들이 후레쉬맨 놀이를 할 때 1호기를 하고 싶어하지 별 비중 없고 눈에 띄지 않는 2호기나 3호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여자애들도 마찬가지다. 예쁜 노란색 치마를 입고 귀여운 구슬 방울을 무기로 가지고 있는 4호기에 비해 무거운 장화를 신고 땅에 균열이나 내는 5호기는 얼마나 볼품없고 초라한가;;;
비중 없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에피소드에서 갯수에서도 큰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5호기가 나오는 에피소드는 한개 밖에 없었다. 괴물의 미니어쳐를 데려다 키워서 친해졌는데 괴물이 커지자 결국 5호기가 자신의 손으로 처치할 수 밖에 없었던 처절한(?) 에피소드....
그게 끝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끝! 그녀가 주인공이 됐던 것은 그게 '끝!' 이었다.
 
후레쉬맨 놀이를 시작하면 그녀는 언제나 4호기를 도맡았다. 아무리 욕심을 내고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도 나에게 4호기 역할은 주어지지 않았다. 몇번을 부딪히고 결국 나는 5호기 전담반이 되었다.
(이와중에 하나 더 기억난건 여자였던 내 동생은 후레쉬맨 3호기를 했단 사실이다;;;; 당시 모여 놀던 멤버의 성비율이 남자 둘에 여자 셋이었으니 한명은 남자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진아! 미안하다. 돌이켜 보니까 언니가 진쫘 미안해!! ㅋㅋㅋㅋ)

후레쉬맨 4호기도 5호기도 모두다 자신만의 아픔이 있고 자신만의 고민이 있다.
사랑 받고 자라던 받지 못하던 상처 앞에 아파하고 소외에 서글퍼 진다.
그래서 인간은 평등한 거다. 인간은 일직선상 동등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무수히 많은 차별과 차이 앞에서 당당해질 수 이는 유일한 이유. 그게 위안이라면 위안이고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이 글을 한창 쓰고있는 있는 찰나,
철민 오빠가 하나님은 언제나 날 사랑하고 있다는 걸 기억하라며 메신져에서 말을 건다.

오빠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노란색 짧은 치마를 입은 후레쉬맨 4호기가 예쁘다 칭찬할 때
뒤켠에 찌그러져 분홍색 무쇠신발 신고 쿵쿵 대는 후레쉬맨 5호기가 느꼈을 소외감.
하나님은 그 소외감까지 사랑해 주신다.
만드신 모습 그대로 보고 기뻐해 주신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다.

(언제나 문제는 한국 교회에 있을 뿐이다. '비주류'까지, '없는 자'까지 사랑하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한국교회가. 언제나 말썽이다)  


하나님이 날 사랑한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는데
오늘 같은 날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어서 그 말을 건네준 철민오빠가 참 고마웠다.
오빠에게 미안하긴 한데, 교회는 나가지 않을것 같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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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8월 3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막내가 휴가를 나왔다. 막내가 군대 갈 때만 해도 결심했었다. 편지 자주 써줘야지. 일주일에 한번은 써줘야지. 그렇게 혼자 마음 먹었다. 하지만 요즘 정신줄 놓고 사는게 다반사다 보니 속으로 한 약속 같은건 너무나 어기기 쉽다. 약속 깨고 부순지 이미 반년. 결국 어제 막내가 시니컬하게 한마디 하더라.
'누나 나한테 잡지 부쳐준지 몇 달 된 줄 알아?'


친구를 단 둘이 만나지 않는 편이다. 아니, 아예 그런 자리는 피하곤 한다. 끈기가 없고 조급한 나는 대화를 나누다 생기는 빈공간이나 여백을 참지 못한다. 1대 1의 만남은 불편했다. 무리 속의 하나대 하나로 만나는 게 좋았다. 그속에서 나는 단 하나의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에 마음도 가볍고 부담도 덜했다.

그래서 편지가 좋다.
일대일 데이트를 할 줄 모르는 못난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고요하게 내 이야기만을 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니. 여백따위 생략하면 되는거고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아도 잠시 펜을 멈추고 고민하면 된다.  
 
친구들이 유학가거나 군대를 떠날 때마다 언제나 마음 먹었던 것 같다.  
언젠가 좀 짬이 생기는 날. 그간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생각나는 날.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히히덕 대며 술 마시듯 편안하면서도 그 시간 너한테 오로지 집중해서 편지를 쓰겠다고. 일대일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빌어먹을 성격이니 너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만은 잘 정돈해서 건네겠다고.
뭐 결심은 그랬지만 실은 시덥지 않은 이야기만 한가득이었다. 하고 싶었던 말은 잘 하지 못하거나 흐릿하게 흘리기만 했지. 그래도 아직. 편지가 좋다.

이메일을 처음 만들고 저 먼 미시간에 있던 첫사랑 오빠에게 편지를 쓰던 건 얼마나 설레였는지. 꼭 10년 전. 다음 메일을 만들고 뭘쓸까하다 앙증이란 아이디를 생각해내고. 그 시절 메일은 수신확인도 안되던 시절이었다. 다음 날 새로받은 편지함이 0통이면 아직 읽지 못해서 그럴꺼야. 위안했지만 그만한 좌절이 없었다. 행여나 2통이 와 있는 날엔 세상을 다 가진거 같았고.

답장을 받는 건 편지 쓰는 것보다 더 신났다.
비록 말을 중간에 끊고 참견은 할 수 없지만 내가 건넨 이야기의 보답을 받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비밀스럽게 털어 놔주는 것 같아서 봉투를 뜯을 때면 언제나 설레였는지. 세장 네장 두껍게 온 편지는 더더욱 기뻤다.
덧붙이면, 차별은 아니지만, 국제우편이 훨씬 더 신난다. 외국의 우표가 붙어서 알파벳으로 표기되어 있는 '서울'이란 글씨는 얼마나 낯설고 생소한지. 저 먼 곳에서 니가 나를 생각해주고 내가 있는 이곳을 생각해주고. 생각에 생각이 덧대는것 같아서 더 값나가고 귀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편지를 써본것도 답장을 받아본지도 참 오래 됐구나.
마음도 바쁘고 몸도 분주하다. 그래도 조금 더 여유 있는 날에는 편지 쓸 사람을 생각해 보겠다. 예쁜 편지지는 아니더라도 가득 찬 마음을 전하겠다. 잘 접고 포개서 우체통에 넣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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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소소한 수다 2009. 7. 29. 12:24



나는 새로 들어가는 프로그램 아이템을 찾아내야 하고
내일 즈음에는 새로 들어가는 촬구를 써야하고 주말에는 원고를 써야한다.
어제 23시간 강노동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쓰기 시작한 편구는 다시 손봐야할 것이며
이번 건 시사 때 대박 혼나는 게 아닐까 싶은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네시간 반 자고 나왔는데
너무나 웃긴건 이상하게 힘이 난다는 거다.

다시 시작이다. 으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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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작은 소망 하나 덧대자면, 연희동 지리산 삼계탕 혹은 송가 유린기가 먹고프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기는 온통 불안함 뿐이었다 자신을 다독이는 가운데서도 자신을 믿지 못하는 그 알량함이 드러나는 일기장이었다. 오늘 그거 하려고 했는데 못했다 꾐에 빠져 노닥거렸다 반성이 아닌 푸념에 가까운 글들이 가득했다 다시 읽어도 흥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 그만큼 절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낭여행 일기장에는 온통 돈 이야기 뿐이었다 사치와 낭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궁상과 쪼들림 두 단어가 지배하는 시기였다 어디서 얼만큼 줄여야하는지 대책이 없었다 식빵을 뜯으면서 '맛 없다' 한마디를 적어 놓지 못하는 그러면서 그 도시에 대한 온갖 불평이 나열 가득한 일기였다.
또 하나는 지루함이었다 역 앞에서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마냥 기차를 기다리다 보면 말을 하고 싶어서 혀를 꺠물 지경이었다. 아무말이나 일기장에 주절거렸다. 학교 생각 집 생각 나라 걱정 동아리 생각 주변 친구들 얼굴. 떠오르는 대로 마구 지껄였다.
그래도 다시 보면 일기장에 그 모든 불평 불만과 무료함을 털어 놓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건지도 모르겠다.

일기장을 사야겠다.
일을 시작하면서 일기를 그만 쓰게 됐다.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시작됐던것도 같다.
자판의 편리함. 언제든 쓰고 부끄러운 단어를 수정할 수 있는 웹상의 문서는 너무나 편리하다. 하지만 '삭제하시겠습니까' 한 단어로 사라져 버리곤 한다. 자꾸만 덧대고 수정해버려서 그때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지금을 토로하고 지금을 욕하고 지금을 불평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일기장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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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면 안되는데 자꾸만 힘부터 빠진다. 과연 돌이킬 수 있을까?2009-07-22 16:43:19
  • 미디어 법은 통과되고 대운하는 첫삽을 뜨기 시작하고 MB당선 첫날부터 상상했던 모든 일이 '예상대로' 펼쳐진다 이래저래 한것도 없이 자꾸 지친다2009-07-22 16:45:27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7월 22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하루종일 우울하다.
결국 통과됐구나.
2MB 당선과 더불어 상상했던 모든 것들이 현실로 실현되는 걸 자꾸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그냥 두 손 다 놓고 어쩌지 못해하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재정된 무상급식 재정은 한나라당의 반대로 0원이 돼버렸고,
이미 자본의 노예인데도 생각과 사상 마저 돈의 노예로 만들기 위한 공작이 대규모로 진행중이다. 그리고 그걸 막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게 됐다.

그리고 더 비참한건 그 가운데 내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나는 세상과 타협하는 법을 배운게 아니라 지쳐서 포기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브로콜리 너마저>의 '2009년의 우리들'을 듣고 있었다.
고백할 것도 그렸던 미래도 하나도 없는 나는 무미건조하게 2009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심지어 지금은 2010년을 꿈꾸는 것 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자꾸만 어둡게 채색된 미래가 언제 오나 숨죽이며 기다릴 뿐이다.  

내가 정의롭지 못한데 누가 정의롭기를 바라나
내가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데 누구를 욕할 수 있을까?
근데 지치고 힘들어서 더 이상의 '기대'를 갖고 그 기대가 부서지는 걸 기대하고 싶지 않아서
이제 희망고문은 그만!
그냥  전부 다 놓고 나 혼자 잘살라고 저 먼 곳으로 가고만 싶다.

2010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 여기서 멈췄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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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고 싶은 일이 가까이 있으면 잡으려고 한걸음 가고 한걸음 가는 법인데 너무 멀리 있다 난 장거리에 약한 타입인 걸…2009-07-21 18:53:18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7월 21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내가 나온 모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이었다.
거의 매주 채플이 있었는데 이대강당에서 드리는 전체 예배도 있었고, 방송 예배도 있었고, 반별예배도 있었다. 공부를 안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설교가 들어가는 그 순간. 예배시간은 수업이랑 다를 바 없어지기 마련이다. 대게 그 시간은 졸거나 딴 생각하면서 보내는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던 우리를 흥분시키는 사건이 있었으니...  


그가 처음으로 춤을 선 보인 것은 바로 채플시간이었다.
반별로 진행되던 예배시간. 그 시간에 우리는 조별로 찬송에 맞춰 율동을 준비해야했다.
당시 젠틀한 이미지로 아버지감 1등이었던 종교부장 최*진이 치는 기타 반주에 맞춰 불러야했던 찬송가 '손을 높이 들고'.
그러던 그 순간 벌어진 것이다.

뭔가 지렁이가 흔들어대는 듯한 느낌으로 박자 무시하고 꼬부랑 거리던 그의 허리춤! 춤까지는 좋았으나 벗은 것도 아닌데 대체 거기는 왜 손으로 가리며 춤을 추는 건지. 그는 허리를 아주 신명나게 흔들어댔는데...
여학생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결코 환호가 아니었다. 그는 '비'가 아니었을 뿐더러 우리 역시 그의 팬이 아니었다. 보는 입장에서는 그 불쾌감으로 이그러지는 입모양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시 열렬한 기독교인이었던 나는 종교라는 것은 나름 '벌'이라는 것을 내포하는 절대적인 영역인데 성스러운 노래를 저렇게 더럽히다니!! 광분하면서도 차마 역정은 내지 못하고 소리만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야 이 새끼야 그만해!!!



2학년 가을 소풍은 북한산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들이 단체로 아무거나 생각나는데로 적어놓고 제비뽑기 한 것 같이 참으로 센스 없는 소풍장소다.
우리가 암반을 타겠는가 산정상에서 깃발을 꽂겠는가? 할일도 없고 무료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먹는 일 뿐! 김밥을 절반 정도 먹었던가? 두껍게 썰기로 유명한 우리 엄마의 김밥을 입안에 넣는 그 순간. 산 위쪽에서 전교생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의 이번 스테이지는 북한산 바위 위! 차라리 신화 춤을 추는 전*기는 깔끔했다!  
떨어질지도 모르는 그 높은 곳에서 그 기름진 춤을 춰대다니!!!
음악도 비쥐엠도 없었지만, 전교생들이 우러러(?)보는 그 장소에서 그는 더욱더 흥을 느낀듯 했다.

야 이 새끼야 그만해!!! 김밥맛 떨어지잖아?!?!?!?

뒤늦게 학생주임이 돌을 던져 그의 춤을 멈추게 했지만;;;;
영원히 회자되는 혼돈의 소풍이었다.
춤을 추는 것은 그네였는데, 왜 내가 부끄럽고 창피한지 알 수는 없지만 여튼 그랬다.



2학년 학기의 끝자락.
영어 과목을 맡았던 담임은 기를 써서 토요일 하루를 우리반을 위한 시간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날 1년간 모아 놓은 지각비로 떡을 하고 오락시간을 가졌다. 
당시 오락시간의 사회자였던 나는 그토록 반대했으나 몇몇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그의 등장.

팬들의 요청이라고 생각했는지 더욱더 화려하고 현란한 동작과 업그레이드 된 춤으로 응수했던 그!

그의 춤을 보다간 백설기에 박혀 있던 콩이 다시 튀어나올 것 같아서 나는 교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그런데 그는 교탁 밑으로 숨은 내쪽으로 계속 춤을 전진(?)시켰다고 한다. 에라이 이씨밤바?멍ㅎ먀ㅐ어ㅔ랴ㅐ버ㅔㅐ험ㅇㅁ레!!!

세번째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그 스물거림에 여학생들은 경악을 했으며
남자애들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리다 못해 고개를 숙였고
당시 담임선생님이던 영진은 얼굴이 씨뻘개 진채로
'들어가~!!! 들어가!!'를 외치며 그의 등짝을 때렸으나
맞아가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끝을 향해 달려가던 그의 춤.

그 춤의 느낌이 어땠냐면....
꼭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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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 느낌... 따악~ 요 정도의 스물거림과 느끼함....
식용유를 한대접 삼킨거 같이 토하고 싶지만 토한다 해도 깨끗하지 못할 것 만 같은
끈적한 이 느낌..


이 방송(?)과 몹시 닮아 있던 이형*군의 춤의 이름은 '공포의 거시기 춤'
역류하는 백설기를 억누르며 댄스에 이름까지 붙인 불어반 이한나의 작명센스에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박수를 보낸다.


  • 나의 네이트 베프 주기자가 휴가를 떠나버렸다 이제 누구에게 사회와 회사의 불만을 토로하는가!!! 슬푸다2009-07-20 10:15:53
  • 동선오빠에게. 오빠.. 그날 대체 우리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거죠? 가물가물 만취한 상태에서 커피를 마시며 약속한거 기억나는데 내가 생각한 그게 맞나열? ㅋㅋㅋㅋㅋㅋ 나도 진짜 주책이야! ㅋㅋㅋㅋ2009-07-20 10:17:27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7월 20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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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이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되겠어?' 하는 패배감이 어딘가 자꾸만 꾸물꾸물 새어나온다.
배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미 배워버렸다. 체념하는 법을.
나는 부정적이고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는 우울한 아이가 돼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돌규에게 정성스런 문자가 와 있었다.
언제나 나의 컴퓨터를 고쳐주며 27기 남편감 1등으로 자리매김한 돌규는 언제나 마음이 곱다ㅋㅋ 전에도 몇번이나 돌규는 내게 이야기했다. 내가 다시 교회 나올 때까지 기다릴거라고.
교회가 아주 조금이라도, 내가 생각하는 '예수'와 일치점이 있었다면, 그렇다면 나는 교회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겠지. 하지만 한국교회는 (절대) 변하지 않을거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영영 교회를 찾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다. 언젠가 상처 받고 위로 받고 싶을 때 즈음해서 교회를 다시 찾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과는 뻔하다. 아마도 그 선택을 후회하고 곧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꺼다. 내가 교회를 떠나 온 것은 위로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사람들을 떠날 만큼 커다란 무언가가 어긋났기 때문이다.
애초에 본질이 다른 것을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체력이 떨어졌다.
10미터 뛰는데 헉헉대는 내 자신을 보면서 이젠 정말 몸을 움직일 때란 생각이 들었다
버스 환승 되면서 지하철까지 걸어다닐 생각을 못했는데 마음을 바꿨다. 퇴근길 신촌을 가로질러 걸어올 생각은 없지만 조금만 지나면 한적한 길이 나오는 홍대나 이대후문길을 천천히 걸어올 생각은 있다.
여튼 어제는 그 연장선상으로 내 '브로콜리'를 심혈을 기울여 닦고 연대를 관통해 북문 쪽으로 나와서 서태지 옛 주택을 지나 연희동을 한참 달렸다. 구름에서 빵을 사다 태일이를 만났고 스테레오에서는 드롭 500미리 간장통을 두개 샀다. 하나는 내꺼. 다른 하나는 블록버스터 공연 준비하느라 졸 바쁘게 보내고 있는 심신이 피곤한 만두 꺼. (나 마니또때도 그랬지만, 최근 느끼는건데 '연애의 때'가 온거 같다. 챙길 사람이 동네 친구들 밖에 없다는 게 때론 너무 슬프다 아놔 ㅋㅋ)
집으로 갈까 하다가 동네 놀이터에서 책 읽다가 돌아가야지 하는 결심이 선 순간 애들한테 전화왔다. 우리집으로 오겠단다 주저말고 승낙했다.

놀러온 쩡아와 금댕이랑 놀다가
내 책장에 <에밀>이 꽂혀 있는 걸 알았다. 나 교육학과도 아니었고 사범대 다전공을 한 것도 아닌데 대체 이 책을 언제 산거지? (내가 들은 건 향가론과 현대문학사 수업 뿐이었다고)
글씨 포인트 9 안되고 장평 좁고 줄간격도 엄청 좁은데, 번역이 너무 잘됐다 ㅠ_ㅠ b
쏙쏙 머리에 들어와 박히는데 아 놔 200년도 더 된 이 아저씨 왜 이렇게 논리적이니? 뭐 이렇게 설득적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한가지 주제를 향해 푸는 '썰'이라는 걸 알겠는데 현란할 정도로 설득력 있는 전개. 너무 타당한 근거. 너무나 잘 정돈돼 가지런히 놓여 있는 논조. 그러면서도 여자를 무시하는 졸라 꼰대스러운 발언.ㅋㅋㅋ 여튼 한번은 다 읽어주리란 결심이 섰다. 잠자기 전 끄적 끄적 읽다 말고 침대 옆 테이블에 던져 놓고 나왔다. (자고로 책은 가까운 데 놓여 있어야 자주 꺼내 읽는 법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씩 일찍 당겨보겠다.
결심을 지키기 위해 11시 전에 침대에 누웠다.


토요일 푸념

소소한 수다 2009. 7. 18. 14:17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낄낄대고 인상쓰며 웃는 것 만큼 신나는 건 없는데
아침 눈을 떴을때 간장이 뜨끈뜨근 해독작용을 하는 기분은 좋지 못하다
애써 잡아 놓은 취재 취소하란 전화가 그것도 토요일로 치면 매우 이른시간인
오전 9시부터 울려대면 정말 울컥할 수 밖에 없다.

오늘 저녁 고모네 집들이가 있다는 건 몇주 전부터 알고 있었다.
고모네 가서 소고기 구이에 참석할 건지
집에서 노닥이면서 동네놈들 불러다가 무도 보고 낄낄댈 것인지
둘 중 하나만 고민하면 되는걸로 알고 있었는데

출근했다. -_-

나에게는 특이한 강박이 한가지 있는데
주말에는 양말이 신기 싫다. 그래서 출근을 하더라도 맨발로 출근한다. 평소에도 늘 구리게 하고 다니지만 주말만큼은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헐렁한 츄리닝 반바지를 입어야만 할 것 같다. 그날이 쉬는날이건 아니건 그렇게 입어야 휴일을 제대로 맞이하는 것 같다

도판이 가득들어간 트로이 신화에 관련된 책을 구입했는데 (하지만 슬프게도 인쇄여건상 흑백) 그리스 신들의 이름이 죄다 로마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헷갈려서 못 읽겠다.
그리스 신화인데 왜 로마식 이름으로 번역했나? 누구를 붙잡고 따질 수도 없구나.
라틴지방의 이름들은 외우기 너무 어렵다. 선화가 작년에 선물로 준 메디치가 살인사건도 가문 이름이랑 추기경 이름 외우다 끝나버릴것 같다.

선물 받은 잭슨 5의 베스트 앨범은 무려 3CD이다. 계속 마이클 솔로곡 씨디만 줄창 듣고 있다. 사실 오늘은 씨디를 계속 돌리며 간이 뜨끈뜨근 해독작용하는 걸 느끼면서 눈을 감고 누워있고 싶었다.


나는 회의를 위해서 출근했는데 왜 대체 회의가 진행되지 않나?
나는 배가 고프고, 그게 너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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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짠것도아닌데 우리팀 슬씨랑커플티로 마주쳤다 여자에이디와열애설난긴 이걸로두번째 아가끔은 남자랑염문에휩싸여보고싶다ㅋㅋ(me2mms me2photo)2009-07-17 14:05:45

    me2photo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7월 1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살 만화책이 너무나 많았는데 계속 야근에다 주말출근이어서 한양문고에 들리지 못했다
근 한달만에 들린 한양문고 앞에서 주머니를 뒤적였다. 주머니 속 32000원을 확인하고 가게로 들어섰다. 오! 오늘밤 침대에 누워 만화 좀 보겠는데...

진짜 뒷편이 궁금해서 죽어버릴 것 같았던 시미즈 레이꼬의 <비밀> 6권이 나왔고
한혜연의 애총도 사야하고, 새로운 발견 윤지운 작가 새 만화가 2권까지 나왔다 <한 눈에 반하다>도 새 책이 나왔구나. 렌이 죽던 말던 나나가 정신병자가 되던말던 나에겐 아오안이지만 <나나> 21권은 동생을 위해 사가야한다. 아아~ 살게 많아! 살 게 많다!!! 저스트 고고는 아직도 31권이 나오지 않았고 프린세스는 한승원작가 손목부상으로 1년째 다음권이 나오지 않고 있다. 배가본드 리얼 아직 새로 나온게 없다.

더 이상 안고른건 없겠지? 안심하며 돌아선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허니와 클로버 팬북>.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너 이 작가의 오타쿠였던 그 시절을 잊은거냐? 이여자 데뷔전 만화책을 40만원 주고 지르면서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다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더니 결국 1년 만에 식은 게냐? 인간이란 참으로 교활하고 간사하구나! 니가 진정 오타쿠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전 권 소장은 물론 새로 판본이 나올 때마다 구입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
스스로에 대한 검열과 자기반성으로 결국 집어 들었다. 근데 뒷편을 보다가 기절했다.
정가 7000원....

손바닥만한 이 사이즈의 책. 이거 원판 아니자나? 일본책도 아니자나?
정가 7000원은 뉘집 개이름인가염? 옛날 같으면 700원짜리 짭퉁 드래곤볼 10권 살 수 있는 돈이고 2000원짜리 오렌지 보이 해적판 3권 반을 살 수 있는 돈이거든뇨?

심지어 우미노 치카의 새 만화 3월의 라이온은 8000원이었다. 이거 뭐 30000원으로 책 네 권이나 살 수 있나요? ㅠ_ㅠ

<3월의 라이온>을 살 것인가 <허니와 클로버> 팬북으로 책장의 완성미를 더 해줄 것인가?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팬북이었다. 꽂을 자리도 없는 책장. 새만화를 채워넣기 시작하느니 단 하나의 빠트림 없는 완벽한 책장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선 손에 쥐고 있던 <애총>의 1,2권의 가격을 봤는데...
지금 장난하나요?!?!?!? 제시카가 서현이 밀치면서 식빵이라고 말한 것 처럼 오늘 나 생일도 아닌데 지금 만화출판사에서 담합해서 날 놀리고 있는건가염?!?!?! 권장가 8000원?
이거 누가 권장한건가요? 지금 만화책은 사서 보겠다는 일말의 양심으로 사서 보는데, 그 양심의 주머니 쌈짓돈을 다 우려먹고 사골국물 내겠다 이건가염?

결국 애총은 1권만 집어들었다... 는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사연이  ㅠ_ㅠ

내가 본격적으로 만화책을 모으기 시작한건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때 만화책 가격은 3000원 비싸면 3500원 선이었으니까 10년도 훨씬 지났겠다 생각해 보면 그 가격으로 오를 법도 하다. 하지만 한권의 만화가 가지고 있는 정보나 재미가 과연 8000원 가까이의 가치를 지닐까? 근 만원 돈인데 그 돈을 다 지불하고 만화를 사 보는 사람이 과연 늘어날 수 있을까?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을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만화가 계속 음지로 시장 밖으로 내몰리고 있구나. 매니아 집단만 남고 대중성과 멀어지는 문화는 풍부해지기 어렵다. 풍부하지 않은데 깊어질 수는 더욱 없는 법.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 인사도 없이 그냥 사라져 버릴거 같아서 그리고 그 자리를 일본 만화가 채울 것이 너무나 불보듯 뻔해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90년대 우리 만화는 아무래도 점점 만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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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빵!!! 이명박 개새끼 복수할꺼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친구 만두가 국악뮤지컬 <토지>에 서희 역할로 출연한다
주초췌와
나는 토지에 관해 이것저것 토론하기 시작했다

주초췌 님의 말 :최서희에 박만 어울린다
신앙증 님의 말 : 야 난 토지 보면 그 남자 주인공 있잖아 ㅋㅋ
주초췌 님의 말 : ㅇㅇ
신앙증 님의 말 : 왠지 야한게 나올거 같았어
신앙증 님의 말 : 근데 박경리가 결국 야한거 안쓰잖아
주초췌 님의 말 : 으흐흐
주초췌 님의 말 :
야 스토리를 야한 쪽으로 쓴다면 충분히 그럴수 있는 뼈대야
신앙증 님의 말 :어 주인아씨와 종놈의 사랑 ㅋㅋㅋㅋㅋㅋ
주초췌 님의 말 : 거기다가 만주로 도피가
신앙증 님의 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초췌 님의 말 : 게다가 서희 몸종은 서희 대신 이상한 놈한테 욕을 당하잖아
주초췌 님의 말 :
아주 예술과 그런거는 종이 한장 차이라고
신앙증 님의 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앙증 님의 말 :
구구절절 옳은 말이야
주초췌 님의 말 :ㅋㅋ

우리의 의견이 이렇다 하여 굳이 만두가 국악뮤지컬 토지에서 에로티즘을 구현할 필요는 없능일!
그냥... 그렇다고....




*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야말로 일본식 성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노래 가사와 미연시 같은 컨셉의 뮤직 비디오. 제복을 입고 등장하는 소녀떼들... 그리고 무대 위 늘씬 쭉쭉 뻗은 다리 춤의 향연

남자애들은 난리도 아닌데 난 이노래가 무서워;;; 너무 무서워....진짜 무서워 ㅠㅠ

어렸을 적에 밤늦도록 안자고 TV를 보고 있다가 유선방송에서 호러영화 한편을 보았다.
영화의 제목은 <마네킹> 오래된 마네킹들을 썰어(?)서 폐기 처분하는 공장이었는데
그 공장에서 폐기처분된 마네킹 다리들이 떠내려 오다 보면 어느새 사람의 다리로 변해 씨뻘건 핏물 속에서 다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었다.
어릴 적 그 장면이 내겐 너무나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나보다

나는 소녀시대의 이번 무대가 너무나 무섭다.
GEE일 때도 다리 춤의 향연은 계속됐었지만 그건 스키니 바지를 무지개빛으로 입은 캐발랄 소녀들의 깜찍한 춤이었지 이번 무대를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다리밖에 안보이는데;
맨다리 18개는.... 쫌... 진짜 무섭다.
저 다리들과 그 영화속 다리들이 묘하게 오버랩 돼서 부담되고 그르타;;
썰어져 있는 다리가 자꾸 떠올라서 볼때마다 좀 그르타;;

그나저나 소녀시대는 9명이서 한끼로 김밥 두 줄먹는다는게 진실일까?
그마저도 양보한다는말까지 있던데...
혼자서 세줄도 먹을 수 있는 나로서는 진실이든 소문이든 그애들과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 있을것 같다. ㅋㅋㅋㅋㅋ 그네들의 양보를 아주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말이지




* 몇주 전에는 여꼴멤버이자 같은교회를 십수년간 함께 다녔던 뎡이의 연주회가 있었다
연주회 끝나고 치킨도 먹고 유흥을 마음껏 즐기고 사진도 여러장 남겼다.
그 가운데 몇장은 싸이에도 올렸다.

남동생이 굉장히 다급하게 싸이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누나 타미 흰카라티 그 티셔츠 입으면 안돼!
특히 그 티셔츠 입고 교회사람들 만나면 안돼!
그거 누나 남동생의 옛 여친(남동생과 한교회를 다닌 것은 물론 나와도 잘 아는 사이이다;;;)이 사준 옷이란 말야!!!


남동생의 공허한 울부짖음이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들,  난 그 카라티 아빠껀줄 알았지!
차마 너의 체면을 살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이별 뒤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었을텐데 ㄲㄲㄲㄲ

아아! 그 누가, 사랑해서 남는 것이 무어라 했나?
자잘한 실수로 인해 구질구질해지는 일들 뿐임을....
이래서 내가 모든 연애 상담이란 상담을 세글자로 할 수 밖에 없다.
SAY YE~


헤.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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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6개월 전 내 인생 BGM은 자우림의 <샤이닝>이었다.
아이템 찾는 법을 몰랐고, 찾아도 취재하는 법을 몰랐고, 취재해도 뭐가 중요한지 몰랐고
매일 매일 까이는 인생이었다. 회의 때마다 혼나는 게 내 몫이고 내 담당인 그런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수 밖에 없었지'라고 수긍하겠지만 그 당시 그렇게 체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2007년 1월. 사회 초년생. 초짜배기 막내 작가는 밤 12시 다 될 무렵까지도 끊기지 않는 무시무시한 7611번 버스에 몸을 싣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았다. 지름길인 서강대교를 두고 마포대교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한강야경을 보며 울지 못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어폰에서는 김윤아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곳'이 과연 있냐? 혹시 개뻥 아냐?
사회에서 돋힌 가시. 세상을 향해 독이란 독은 내뿜으며 의문했다.


2008년 2월. 내 BGM은 뮤지컬 '애니'의 <Tomorrow> 였다.
고모랑 사촌 동생과 보러간 뮤지컬 해피엔딩 부분에서 남모르게 삐져나오는 콧물을 들이마시기에 열중했다.

Tomorrow! Tomorrow! I love yah, tomorrow!
You're always a day away!
Tomorrow! Tomorrow! I love yah, tomorrow!
You're always a day away!

이제 더이상, 난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 걸. 기다려도 딱히 나아지지 못할 '내일'을 다 알아버렸는 걸. 그게 너무 통탄해서 울었다. 백수 때 내일을 기다리면서 마음껏 놀아볼 껄. 후회에 통탄에, 아쉬워서 울었다.


올해 BGM은 <BEN>이다.
마이클 잭슨이 떠났다고 선택하는 건 아니고, 누군가 추모하는 글에 올려 놨는데 가사를 읽었다. 듣자 마자 눈물을 왈칵 짜냈다.

They don’t see you as I do I wish they would try to
I’m sure they’d think again If they had a friend like Ben (A friend)
Like Ben


내 다른 모습이 있을거라고 나만은 세상과 다른 눈으로 널 봐주겠다고 말해줄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난 마이클 밖에 없다니. 이럴쑤능 없능일! 누구라도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최루성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울부짖을 수 밖에 없을 꺼다.
울부 짖는 와중에, 그래도 참 다행이었다. 남들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는 분명 남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아이여서. 그걸 알아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으니까. (그게 마이클이라는 건 절대 아니고)


미국 흑인 노예제 시대 때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던 흑인들이 자살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들을 고용했던 고용주들의 자살율이 더 높았다지.
고용인들에게 없는, 흑인들에겐 그들의 한을 토해낼 '노래'가 있었다. 내게도 나만의 노래가 있다. 지금 이 순간과 그때 그 순간을 버티게 해줄 수 있던 작은 위로가.

그냥 사는 곳곳마다 내 삶을 대신 말해줄 노래들이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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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얼굴에 감격으 눈물이라도 그려주고푸다!



+) 덧붙이면 2007년도 여름 무렵 노래방 18번은 교실이데아였다
'매일 아침 7시 30분 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 넣고 전국 900만에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 넣고 있어!
고 3때도 난 즐겁게 생활하는 나태한 아이였는데, 그런 내가 교실 이데아를 부르며 피를 토하다니 ㅠㅠ

그냥 그 땐 아침 9시 반 출근해서 11시 반에 퇴근하면서
50일에 하루 쉬는 회사가 싫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 보면
14시간 근무에 11시 반 퇴근해서 노래방 갈 여력이 있었다니 그 젊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네이트온을 접속하니 오늘 생일인 사람이 수두룩이다
여꼴통 뎡이, 한집 사는 준근오빠, 방송국에서 만난 *진이, 2학년때 우리반 이치웅
그리고 추가 한 명은 보안을 위해 굳이 말 안하겠다. (나 비밀 지켰다!!)

고등학교 때 뎡이의 생파는 항상 웃겼었다
깜짝파티의 일환으로 미션 완수 메세지를 남기고 그 메세지가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우리의 깜짝파티 장이 나오는 건데 문제는 뎡이가 그 '미션'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거다
소리를 지르고 못기다리고 전화를 하고 바로 거기 쪽지 있다고 아무리 설명을 하고 갑갑한 심정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고 발을 동동굴러도...(그네가 그 당시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던건 천만 다행이었다)
결국 뎡이는 그날 미션이 적힌 쪽지를 발견하지 못햇다. (8절 스케치북 만한 쪽지였는데;;;)
6개의 미션을 준비했었는데 결국 다 때려치고 1번 미션에서 마지막 미션으로 바로 건너 뛴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6월 말 내 생일과 달리 7월 8일이면 기말고사가 끝나서 항상 여유 있는 날이었고 맥너겟에 흠뻑 빠져 있던 우리는 버거세트에 맥너겟 먹는 만한 호사가 없다고 생각했엇고 뎡이 생일날을 손꼽아 기다렸더랬지. 당시 여자 ㅇㅎㅅ 이라고 불리던 내 친구 모양은 얼마나 맥*날드에 빠져 있었는지,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맥도날드라고 쓰기까지 했었다;; (그녀가 그 모사에 입사한건 졸업 후의 일이다)

하얀색 하복에 배가 나왔건 안나왔건 자꾸만 주름이 돌아가던 회색 치마 그리고 수시로 떼었다 붙여야 했던 앞판까지. 그 교복을 입고 이대를 가로지르던 생각이 난다. 고개를 돌리면 여길 봐도 우리반 친구 저길 봐도 작년 우리반 친구 모두들 아는 얼굴이라 그 익숙함이 참 좋았던거고.

습기차 약간 후덥지근한 날씨. 장마의 끝무렵.
떡볶기집에 들어서기까지 지나쳤던 많은 풍경.
어디가냐고 손 흔들면서 서로 참견하던 일까지.

참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언제나 즐거웠던,
돌아올 방학이 기대되면서 왠지 모르게 가슴 설렜던,
말 그대로 열여덟 열아홉 여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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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친네처럼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만한 게 없다'라고. 새로운 것의 신선함과 적응하는 것의 설레임보다도 익숙하고 편안한 옛 것이 좋다 친구도 사람도 책도 영화도 만화도 음악도… 나는.. 늙어가나보다.2009-07-07 12:39:38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7월 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아이스커피를 사가지고 가게를 나서면 회사 도착 전에 얼음이 전부 녹아버리는 계절의 시작이다. 이빨이 누래지던 말던 커피에 띄워진 얼음은 우걱우걱 씹어야 제맛인데, 시리던 말던 젊을 때만 할 수 있는건데 늙으면 이걸 못할까봐 슬프다. 그래서 난 맨날 씹고 또 씹는다. 깨부셔져 작아지는 얼음을 녹여서 내 갈증 축이는 데 이만한 스트레스 해소가 없다.

스테레오 더치커피를 들고 출근했다. 왜 간장을 싸가지고 다니냔 소리를 들었다. 이번주에는 밤샘이 많을 예정이다. 미리 사두려고 했는데 너 한잔 나 한잔 얘 한잔 따라주다 보니 내일 아침 연명할 것 밖에 안남았다.

최근 잠깨는 약 대신이라고 생각하면서 커피를 마신다. 그 기분이 좋은 것 만은 아니다. 억지로 깨고 나면 피곤한 상태로 상태로 나머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강중약'이라는 강도로 '약'이라는 강도로 3시간 버틸 기력이 있는데, 커피를 마시면 '강'이라는 강도로 1시간을 땡겨 써버리는 기분이다. 기력도 시간도 모두 도둑 맞은 것 같은 이 기분.

그래도 마신다.
맨정신에 살지 않으면 안되는데 몸도 마음도 참 노곤한 요즘이다.

커피는 믹스가 짱이지. 자판기도 짱이다! 인사대 건물에서 뽑아나와 상명대 예쁜이 나무 앞에서 마시는 150원짜리 커피맛 만한게 없다고 자부했는데, 촌년인 나도 요즘 커피향이 무언지 알거 같고, 더치와 드롭의 차이를 알아가고 있다. 연필재 맛 나는 커피가 어떤건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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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졸립다....



꼭 10년 전 같은 반에서 '아들'이라고 부르던, 그네에게 '아빠'라고 불리던 내가
길고긴 공백기를 뒤로하고 해우하게 된 것은 며칠 전.
11일 연속출근과 근무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던 수요일.
밤을 새서 촬구를 써야하는 압박감 속에서 였다.

10년 전 내 아들이었던 그녀는 여성이 되었고, 한 남자의 부인이 되었고, 우리 사무실 옆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렸고,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극적인 만남을 동네에서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쓰레빠 질질 끌고 아무렇지 않게.

근 십년만에 만난 친구가 묻더라.
"어떻게 2년 반이나 '막내' 일을. 방송작가 막내 일을 할 수 있냐고 난 5개월도 지옥같았는데 넌 대체 어떻게 버틸 수 있었냐"

아들. 난 원래 어이 없는데서 잘 버텨.
맹장이 터졌음에도 일주일간 야근을 밥먹듯 했고 진통제 먹으면서 아무생각 없이 버텼던게 나야. 그게 바로 나지. '오 효과 좀 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터진 맹장 썩어가는데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겼었지. 참말 난 몰랐거든. 좀 아픈데 곧 낫겠지 스스로를 대단하다 넌 정말 성실한 애야. 칭찬했었지. 그 칭찬 하다 복막염으로 죽을 뻔했지만 말야...

아! 잘버틴 얘기는 또 하나 있어. 유럽여행 때는 프라하 전기나간 낡은 아파트에서도 잘도 하루를 버텼었지. 비오는 밤 중세도시 프라하가 얼마나 무서운지. 하얗고 창백한 피부에 붉은 머리털을 가지고 있는 서양 남자 귀신이 안 나오는게 더 이상했던 거미줄 쳐지고 전기 안들어오는 아파트에서 만 하루를 버티고 난 아침. 난 그날 묵었던 숙소에서 오늘 묵을 예정이라는 한국인 3명을 만났어. 난 불 안들어오고 낡아서 밤에 귀신이 덮칠 것 같이 무섭다고 미리 언질 좀 해줬지. 그리고 며칠 후 그네들을 오스트라이 빈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들은 그 밤 내내 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더군.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우리 셋도 이렇게 무서운데 그 여자애는 혼자서 무슨 깡다구로 여기서 버텼냐며.
그냥 그날 밤 어둠속에서 서양귀신을 퇴치하기 위해서 찬송가 좀 중얼대며 잠을 잤을 뿐인데...

 
친구가 말했다.
"내가 방송일에서 인생의 멘토를 만나지 못한건 참 행운이야. 확실히 이 길을 접어야겠다고 결정을 내려줬거든"

아! 그러고 보니 그게 문제였구나. 난 인생의 멘토를 좀 만났어. 저렇게 쑥쑥 자라고 싶다. 저런 작가가 되고 싶다. 저 피디와 일하고 싶다. 이 3D업계에 열악한 노동환경에 근무조건에 치떨고 손 털고 딴 길 찾으면 그만인데, 내가 이루고 싶은 자잘한 꿈이 주렁주렁 열린게 문제였어. 그리고 중간 중간 불평 불만을 한껏 들어줄 친구도 참 많이 만났지. 그리고.
그게... 그게 문제였던거군. 그게 문제였구나. 인생의 멘토 따위 되고 싶은 롤모델 따위 안 만나고 없었던 게 내 인생에 백만번은 더 도움이 되었을텐데 말이지.


친구가 말했다.
"그렇게 토나오도록 바쁜데 넌 어떻게 그 많은 애들을 만나고 있니?"

아들. 난 원래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참 잘해. 고등학교 땐 학교 임원을 하면서 학원을 다니고 그 중에 교회 고등부 행사의 핵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고. 대학교 3학년 때 동아리 학생회 과학생회 학회 내가 뛴 행사가 몇 개 인줄 알려줄까?
근데 포인트는 내가 행사 뛰는데 있는게 아냐. 그 와중에 친구들을 맨날 만나고 있었다는데 있지. 난 노는데는 못빠져. 나 빼고 노는 것만 생각하면 내 영혼은 가위 눌린 것 같이 어두워져. 50일에 하루 쉬는 와중이라도 금요일 주말이면 12시 넘은 야심한 시간 친구들 만나서 술을 마셨어. 동네 친구들 모여 있다면 15분이라도 더 놀아보겠다고 택시타고 총알같이 텨갔었지.
근데 지금도 나 빼고 놀면 분통하고 원통해서 눈물이 왈칵 나와.
아들. 내 친구 슈동이 궁금하댔지, 그 길고긴 막내 생활 중. 우연치 않게 일찍 끝난날 전화 걸면 언제나 '빨리 와'라고 말해주던 그네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고 생각하면 돼. 나중에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난 일보다 친구가 더 중해. 노는게 더 중요해. 내가 만화를 그만둔 이유는 거기에 있어. 사람들이랑 있는게 너무 좋아서 멈추질 못하겠더라고.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났다.
내가 지금 여기서 야근에 쩔쩔 매며, 내가 때려치고 만다 다 때려치고 만다 사직서 던지고 뒤도 안보고 도망간다 말만 나불대면서도 이 자리에서 컴퓨터를 붙들고 있는 이유를 단 박에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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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아직까지 여기 붙어 있구나....


  • 내일 아침 재시간에 출근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나오자 마자 검사를 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촬구를 한글자도 못쓰고 있다…. 나 미친거임? 나 제정신 아닌거임? ㅠㅠ2009-07-01 22:28:22
  • 늦잠을 내려주소서 새벽 퇴근하는 날만이라도 내려주소서.. 비논리적이고 개연성 없는 촬구를 쓰고 가려니 마음이 질척질척 때마침 비가 억수로 쏟아지니 가는길도 질척질척. 사실 새벽길이라 괴담도 생각나고 해서 쫌 무서움; 맹근이한테 구여친처럼 '자니?'라고 문자라도 해야될까2009-07-02 02:44:56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7월 1일에서 2009년 7월 2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아이템이 안풀리고 있다 이번달에도 잘만하면 15일 연속 노동 기록따위를 세우겠군2009-06-30 18:20:00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6월 30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씻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끕끕한 여름날이 시작됐다
어제밤 11시 넘어서 퇴근하고 씻고 한겨레 21좀 끄적이며 읽다가 마루로 나가서 TV켰는데
무도 하더라. 아 나 이거 기사 난 날부터 보고 싶었는데 주말 줄창 출근이라서 한편도 못봤다. 김태호 피디는 정말 천재인가봐. 동네파 달력, 마니또 게임, 체육대회... 무도를 이겨보고 싶었지만 알고 있다. 내가 진 걸... 싸구려 벤치 마킹 짝퉁으로 끝나고 말았다. 쥐어짠다고 쥐어잤던 부질없는 나의 아이디어들이여!!! ㅠㅠ
난 신화 팬도 아닌데, 이상하게 전진이 안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명박 지지자였던 하하가 싫은거겠지) 전진이 돈 가져갔으면 좋겠다 좋겠어. 아니면 노찌롱. 노찌롱이 돈 가져갔음 좋겠다 싶어서 계속 보고 있는데, 이게 끝이 아니네? 2부가 또 있네? 아 나 궁금해 죽어 죽어 ㅠㅠ
나 집에 노트북 가져가기는 너무 무겁고 코딱지만한 화면이지만 E-100에 넣어가서 오늘 자기 전에 봐야겠다 단디 마음 먹고 E-100에 무도 넣는데... 오늘 노트북 총 6번 꺼졌다. 뭐 이리 되는 일이 없냐...


작년에 난 크로슬리 턴 테이블을 샀고, 나의 애마 비토를 샀으며, 우미노 치카의 만화책을 수십여만원 들여 샀었지. 올 한해 뭔가 커다란걸 산게 없다. 웃긴게, 뭔가 허전하다. 큰 돈 들여서 사길 잘했어 정말 잘했어 우걀걀걀 소리내서 웃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거 같다. 더 이상 내 방에 들일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책장은 아예 새로 짜보고 싶은데 잘못 건드렸다간 총체적 난국이 예상될거 같아서 아예 못건드리고 있다. 내 책장중에 오래된 두개는 무너져내릴거 같다. 지진이 나면 집안 물건이 떨어져 내리는 것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는다고 하던데 집안 내 방에 앉아 있다 지진나면 난 아무래도 내가 그토록 아끼는 만화책에 깔려 죽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걸 행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잖아?


하루에 한번씩 포츈쿠키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 하루를 점친다. 맞을 땐 맞다고 좋아하고 아닐 땐 심드렁하기 그지 없고. 접속했을 때 트래픽 초과가 걸리면 그냥 생각이 난다. 세상 살맛 안나서 오늘 하루를 점괘에 매달리는 사람들 참 많구나 싶기도 하고. 나 같이 불행한 인생들이 모여서 불행한 사회를 만들고  의지할 것 없는 미래를 만들고 결국 불행해질꺼 왜 사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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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또 하루가 간다.



아직 원고를 완성한게 아닌데, 약간의 수정을 기다리는 시간이니 주저리 주저리 자판을 쳐보련다.

이제는 어제가 되었지만, 어제는 나의 생일이었다
엉터리 방터리 80프로 이상 수정하고 고쳐야하지만 그래도 나름 원고써야하는 날
저번에는 2박 3일 걸렸으니 이번엔 2박 정도 걸리겠지.
애초 모든 생일의 특권을 포기했다면 그건 거짓말이고,
동네파랑 생파 정도만 할 수 있게 해달라 하늘과 땅 천지신명께 대고 빌고 또 빌었다


0시를 기해서 전화도 오고 문자도 오고 다들 고맙고 소중했지만
스물 여덟 생일에 가장 놀랍고 기쁜건 선주의 문자였다.
"우리 딸 너랑 생일 같다"
며칠전 곧 둘째가 나올거 같다고 통화한거 까지는 기억나는데, 설마 싶었다.
정말? 정말? 갓 출산한 산모 붙잡고 몇번이고 되묻고 싶을 만큼 기분 좋다.
내가 낳은것도 아닌데, 그냥 좋아. 그거 말해주고 싶어.
나랑 같은 날짜에 니 둘째딸 생일 박아줘서 고마워 선주!


나는  이번주 목요일에 3시간 반을 잤고 어제 3시간을 잤으며 지금은 밤샐 계획이다
오늘 집을 나서면서 진짜 카페인을 드링킹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 생각난게 스테레오 드롭이었는데 왠지 또 이 시간 없는 와중에 뭔 짓꺼린가 싶어 망설였다. 사실 혼자가서 커피 나오는 동안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싫었고 말이지. 아니 사실 항상 동네 애들이랑 기분좋게 가는 곳에 '생일날' 혼자 가 앉아 있다니 이건 더 청승맞기 그지 없잖아!
그럼에도 너무나 다량의 카페인이 필요했기에 스테레오의 문을 열어 제끼는데, 앉아 있는 건 만두네 어머니. 그리고 건너편의 만두.
아 진짜 반가워서 울컥했다 나.
덕분에 덜 청승맞아졌다. 한컵 들고 나서는 기분도 좋았고, 오늘 친구 얼굴 하나 못보는 줄 알았는데 얼굴보고 짧게라도 수다 떨어서 참 좋다
스테레오에 있어줘서 참 고맙다 만두!



케잌 부는 거 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늦은 시각 출근해보니 책상 위에 케잌이 떡하니 놓여 있다. 누구냐 센스 있게, 라기 보다는 나 아이템 못찾았는데 혹시 진*피디님이면 우짜지 그럼 진짜 아이템 부담 백만배 될텐데. 다행히 케잌의 주인공은 월정이었다. 회사에서 축하 받을건 하나 기대 안했는데 그래도 토요일 출근한 사람들 싹다 모여서 노래 불러주고 촛불 불고 그랬다 케잌은 거진 내가 다 먹었다.
내 케잌인데 내가 먹고 내가 찌겠다! 고맙다 월정!



그냥 아무 일도 없이 무의미하게 지나갈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소소한 작은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고맙고 더 특별하다.
일단 지금은 좀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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