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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0 광화문 연가

광화문 연가

소소한 수다 2010. 7. 20. 18:21


급하게 한편을 더 구성하게 됐다.
다급한 마음 재촉해서 구성안을 써봐야하지만, 오늘 마음을 울린 글 몇편을 적어 놓고 싶어서 정리해둔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경복궁 근정전 앞에 세워지고 광화문이 총독부 건물을 가리게 됐다.
총독부 건물의 위용을 조금더 드러내고,
조선이 망했다는 가시적인 효과를 위해 일제는 광화문을 아예 헐 계획을 준비한다. 
광화문이 처한 사정이 알려지면서 여러 사람들이 반대의 글을 기고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일본인 예술가 야나기 무네요시 였다.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웅대한 너의 모습.
지금부터 50여 년 전 너의 왕국의 강력한 섭정 대원군이 한치의 주저도 허용치 않는 의지를 보이며, 왕궁을 지키고자 남쪽으로 면한 명당자리에 너의 주춧돌을 굳게 다졌다.
여기에 조선이 있노라. 하고 외치는 듯 으리으리한 건축들이 전면 좌우에 이어지고 광대한 수도의 대로를 직선으로 한성을 지키는 숭례문과 호응하고 있었다. (중략)
현대의 동양, 특히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격변해가는 조선에서 저 광화문이야 말로 귀중한 유작이 아닌가.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광화문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이전하게 되자,
설의식이란 기자가 헐리는 광화문이란 글을 기고한다.

광화문, 원래 너는 물건이다.
울 줄도, 웃을 줄도, 노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밟히면 꾸물거리고 죽이면 소리치는 생물이 아니라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너는 의식 없는 물건이요, 말 못하는 건물이라 헐고, 부수고, 옮기고 하되 반항도, 기뻐도, 서러워 아니한다. 다만 조선의 하늘과 땅을 같이 한 조선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아까워하고 못잊어 할 뿐이다.
오백년 동안 풍우를 같이 겪은 조선의 자손들이 너를 위하여 울어도 보고 서러워 할 뿐이다. 석공의 망치가 내 가슴을 두드리리라. 너는 알지 못하겠지만 역군의 지렛대가 네 허리를 들출 때에 너는 괴로움이 없으리라마는 우지끈 소리를 듣는 사람이 허리 잘려 할 것을 너는 과연 아느냐, 모르느냐.
 
너는 네 모양 그대로 있어야 생명이 있으며, 그 신세 그대로 무너져야 네 일생을 바치는 것이다. 풍우 오백 년 동안에 충신과 역적이 드나들며, 수구당과 개화당도 드나든 광화문아! 평화의 사자도, 살벌의 총검도, 일로의 사절도, 원청의 국빈도 지나든 광화문아!
너는 그 자리 그곳을 떠나지 말아야 네 생명이 있으며 그 방향 그 터전을 옮기지 말아야 네 일생을 마친 것이다. 너의 천명과 너의 천직은 이미 없어진 지가 오래였거니와, 너의 생명과 너의 일생은 지금 헐리는 순간에, 옮기는 찰나에 마지막으로 없어지려고 하는 구나.

급하게 할 일이 많지만 역시나 존재하는 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시대를 관통한다는 진리를 다시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