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어요

소소한 수다 2009. 12. 3. 17:41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님 떠나가면 어이해

주기자와 집에 오는 마을버스에서 '사랑했어요'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 많이 들었는데, 누가 불렀지? 제목이 뭐지?
발길에 부딪히는 추억을 말하고 그래서 두눈에 맺혀지는 눈물을 이야기하고
사랑은 기쁨보다 아픔이라고 결론지은 게 누구였지?

내일 인터넷 검색해야하는데 이대로 가사 까먹으면 어떡해,
결국 가는 길 내내 떡볶기 먹는 내내 노래가사를 중얼대면서
내일 찾아야겠다 미뤄두었다.

아침에 동네파 클럽 들어가봤더니 주기자가 벌써 찾아 놨더라.



사랑했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이 마음 다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 노래를 처음 들은건 20살 생일선물로 받은
김현식 트리뷰트 헌정 앨범을 통해서였다.

배우 최민수가 노래를 불렀는데,
원래 전인권 탐웨이츠 같은 목소리의 노예였던 나는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테이프여서 감아서 듣고 또 들어야하는데도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유투브에서 김현식이 부른 노래를 찾아 들었는데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다시 찾아낸 최민수가 부른 노래만 못했다.


드라마에 온 감정을 쏟아 부으면서 보는 요즘 나는,
사랑을 하지 않는데도 아픔에 콧날이 시큰거리더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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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을 벌일 이유는 많다. 하지만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자기와 함께 적을 증오한다고 상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마더 나이트> 커트 보네거트 2009 06 10 - 2009 06 11 새벽

우리 하나님은 우리편. 니네 하나님은 니네편. 사람은 누구나 '생겨진대로' 산다

이야기 하나
일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고등학교 그 시절이 자꾸 생각난다.
고딩들을 지켜보고 취재하면서 200*년도 입시를 준비한 그 시절을 모른척 지나친다면, 막장드라마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거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스펙터클 익사이팅 액티비티 했던 신촌동의 3년. 무수히 많은 장면들이 대하소설처럼 페이지마다 새겨져 있는 가운데, 최근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은 고2 겨울 방학 단과학원에서 김*록을 만났을 때다.

고 2 마지막 모의고사 200점 이하란 점수를 가지고 있었던 김군과(모의고사를 제대로 끝까지 풀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충정로 모 단과학원에서 우연히 만났다. 김군은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나는 우리반 반장이었고, 김군보다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거만하게 한마디 건넸다.

"수학만 하면 어떡해? 사탐도 해야지."

그뒤 김군이 남은 1년간 어떤 성적 스코어를 거뒀는지, 그래프 상에 얼마나 가파른 y축의 이동을 만들어 냈는지는 2대*고를 나온 아이들이면 다 안다. (십년 다되어가는 그 사건은 아직도 선생님들의 입을 통해 자꾸 회자되며, '너희도 할 수 있다','아직 늦지 않았다' 학습 선전용 도구로 쓰인다고) 결국 수능 날 392점이란 점수로 서울대도 가능한 스코어를 따낸 김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프로그램 주인공으로 딱인데 말야!
(비록 가끔 당당하게 코를 후비긴 했지만 그는 얼굴이 하얗고 눈썹이 짙은 긴 속눈썹 미소년이었다)


이야기 둘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타임퀘이크> 온 우주가 팽장을 잠시 중단하여 우주의 시계가 10년을 다시 돈다는 설정의 소설이다. 모든 인간들이 이미 겪었으면서도, 내가 어떤 인생을 살지 알면서도 그대로 10년을 살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책을 읽고 각자 판단하시라.



이야기 하나와 둘을 더하면...
"야 앙증! 스물 여덟 인생에 들어서면서 내 인생을 다시금 타임퀘이크가 찾아온다면 어느 시점으로 돌리고 싶니?"
"음... 나는 열아홉 겨울. 서울학원에서 김군과 수학 수업을 듣던 그때로 돌리고 싶은걸"

단과학원서 함께 떡볶기로 저녁을 때우던 김군! 왜 나에게 좀 더 권해주지 않았는가? '야, 지금 수학 안잡으면 일년 내내 고생해.' 라고 말이다.

'너 설마 내가 라이벌이어서 견제한거니?'
 이런 실 없는 농담 던질마큼 내 인생이 마냥 유쾌하고 신난건 아닐텐데;;;

내가 그 때 수학을 디비파서 완성했다면,1학기 내내 안나오는 수학점수로 애먹지 않았을거고, 고3 첫 학기 때는 여유 있게 영어를 봤을 것 같다. 그렇다면 60점대 나온 형편없던 내 수능 영어가 조금 더 나아지고, 서너 문제 정도는 더 맞출 수 있지 않았나? '간신히 서울 소재 대학'이 아닌 '서울대에서 조금 아쉬운 대학'을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지금 내 인생은 어떨까.

소설 <타임퀘이크>는 희화화 되었지만 '비극'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서울대에 가까운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내가 쉽사리 만화의 꿈을 접었을 것 같지는 않다. 버젓히 4년제 대학 졸업한 뒤 만화 한다고 2년 깝치다가 능력의 한계치로 좌절. 그제서야 다른 길로 가겠다고 커브 틀고 고생 좀 하겠지. 영어 공부도 안했겠다, 변변한 스펙도 없겠다 빽도 없겠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이모양 이꼴로 그대로 진전될 것 같은 이 예감! 비극을 향해 똑같이 도는건 소설 <타임퀘이크>의 등장인물과 꼭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이 폴더의 이름은 <타임퀘이크>
우주가 백번 팽창을 중지하면 백번 그대로
'꼭 같이', '똑 같이' 살아갈 내 인생의 흔적을 적어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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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퀘이크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커트 보네거트 (아이필드,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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