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간헐천 투어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났어야 했는데, 어제밤에는 10시 11시가 다 되도록 잠이 들지 못했다. 안그래도 24시간 버스타서 피곤해야 맞는데 잠은 안오고 새벽에 일어날건 걱정이 되고 괴로웠다. 그러다 간신히 잠 들었다가 눈 뜬게 새벽 2시반이었다.

숙소 밖에서 약 30분간 투어버스를 기다리는데 기분이 쏠쏠했다.새벽 별도 떠 있고 달도 떠 있고 운치도 있고. 그리고 여기는 바로 사막!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투어버스에 올라탔는데, 역시나 동양인은 나 혼자. (마사는 간헐천 투어 스킵할거라고 했다) 게다가 투어 가이드 아저씨는 스페인어 밖에 모른다고 한다. 아흙 ;ㅁ;
근데 옆에 앉아 있는 애들이 자기네가 간단한 내용은 영어로 통역해주겠다고 한다. 세살과 파뜨리씨오. 산띠아고에서 대학생이란다. 구세주를 만났다.

투어 버스에서 잠을 안자려고 발버둥을 쳤다. 간헐천 투어는 고도 4000미터까지 올라가는데 자다 깨는데 고도가 훅 올라가 있으면 정말 대책이 없을거 같아서. 화장실 가려고 내렸는데 정말 숨이 안쉬어지더라. 간신히 연신 숨을 들이키면서 버텼다. 껌 씹고 물도 계속 마쉬어주고
(고산병 팁 : 물에도 나름 산소가 들어 있기 때문에 고산병엔 물을 많이 마셔주는게 좋다. 단 화장실을 자주가야한다는 단점이 있다. 화장실을 갈때 숨을 멈출 수 없으므로, 각종 악취를 벌름거리며 모두 들이켜야 한다는 단점이 추가된다)

그러니까 나는 나름 (고산병을) 잘 이겨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간헐천 투어하면서 숨 쉬기가 어렵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안쉬어지는 것도 아니고
걸을 때 어지럽긴 하지만, 일단 투어하고 있는 간헐천이 달처럼(?) 생겼기 때문에 중력이 어그러진 같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재밌기도 했고.
 
새벽 4시에 시작돼서 동트는 걸 바라보는 간헐천 투어는 해발 4000미터까지 올라가는데 무척 춥다.이 투어의 하일라이트는 동트는 새벽에 하는 온천. 
추위와 온천을 대비하기 위해 나는 수영복에 내복 깔깔이까지 다 챙겨서 입고 갔다. 근데도 너무 추워서 '께프리오(추워요)'만 한 이백번 외쳤던가? 그런데 그 추운 와중에서도 반바지 입고 등장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너무 추워보인다니까 피식 웃는다. 스웨덴에선 겨울에 얼음 깨서 수영다며;;;; 할아버지는 10년전쯤 유행했던 '고조 우리 연변에서는 이런것쯤 아무것도 아닙니다.'개그를 떠올리게 했다. 나이불문 인종 불문 남자들의 허세란. 하지만 카일 할아버지는 나에게 무척 상냥했으므로 패쓰!

별거 없는 증기수(?) 폭발과 간헐천을 구경하고 온천에 당도했다. 나 정말 빵터졌다.
물.... 드러워.
이건 온천이 아니라 진흙탕인데;;;; 근데 투어온 서양애들은 죄다들 좋다고 좋다고 물에 텀벙텀벙 들어가는거다. 그 와중에 고개를 절래절래 지으면서 물에 절대 안들어가겠단 표정 짓는 일본애들과 너무 상반되길래 더더욱 웃겼다.
언제나 내 인생의 모토는 이왕이면 경험하고 체험하자 이기 때문이니까, 나는 과감히 옷을 벗어던지고 온천 입수. 근데 물은 너무 뜨겁고 물 위는 너무 차갑고. '아뜨거 아뜨거' 하니까, 투어에서 만나게 된 세살과 빠뜨리씨오 소피아가 웃더라. 그들은 아무리봐도 머드로 봐줄 수 없는 (자갈과 알갱이가 섞인) 진흙을 자기 얼굴에 바르더라. '구아뽀(잘생겼어)'라고 해줬으나, 나도 모르게 '좋냐? 그게 좋아?'라고 냉소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일단 칠레 친구들보다 온천에서 나왔다. 온도차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칠레 친구들 사진 찍어주면서 해뜨는 걸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나 온천들어가면서 싸왔던 물을 다 마셨던거다. 숨이 안쉬어지니까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머리가 안돌아가고 뒤로 그냥 넘어가 버릴거 같은 느낌이 막든다. 다짜고짜 아무나 붙잡고(심지어 물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음) '아구아 빠뽀르(물 좀)'이라고 매달렸다. 그에겐 물이 없었다. 저멀리 봉고운전기사가 물을 마시는게 보였다. 나는 그 사람한테 다가가서 물 좀 달라고 매달렸다. 근데 그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자기가 마시던 물을 한병 통쨰로 줬다. 다시 돌려주려니까 괜찮다면서 받아가랜다. 흑흑. 지금 생각해도 그 물 없었으면 나 투어에서 살아서 돌아왔을지 모를일이다.

물을 마시고 나서부터 간신히 숨이 쉬어지긴 했지만, 머리는 핑핑 돌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때 저 멀리 우리투어버스 운전기사가 보이더라. 그에게 우리 차 어딨냐고 물었다. 근데 그 사람이 웃더니 나는 네 운전기사가 아니랜다. 헐! 헉! 비슷하게 생겼다고 내가 착각했나보다. 근데 그때 상황에서 나는 우리 투어차를 찾을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간헐천 투어버스는 2,30대가 와 있는데 여기저기 떨어져 서 있었고 난 한걸음 두걸음 걷는게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 그냥 주저 앉자, 그 사람이 내 투어 티켓을 보여달라더라. 내 티켓을 받아든 그 남자는 그때부터 2,30대 버스를 오가면서 내 버스를 찾아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내 버스를 찾아줬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그 아저씨의 친절에 나는 감복 또 감복. 흑흑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을까요 ㅠㅅㅠ
아저씨가 찾아준 버스로 돌아가니까 세살 빠뜨리씨오 소피아 얼굴이 보였다. 눈물이 왈칵. 흑흑 얘들아 나 죽을뻔했어. 브라질 친구들은 툭툭 치면서 장난걸고. 인간들아! 나 죽을뻔 했다니까.

여튼 여러 현지인들의 동정을 구하면서 나는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다. 다시 한번 고산병의 두려움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일정대로라면 내일 우유니 투어 출발인데, 나 가능할까?

여튼 칠레사람들 짱짱 정말 짱짱! 나의 부질없는 목숨을 구해주었쒀.... ㅠㅅㅠ b 
Chilenos son simpàticos y amables!
(칠레 사람들은 친절하고 상냥합니다.)




피는 못속여
산띠아고에서 아따까마행 버스를 타는데 한 동양인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남미와서 생긴 능력중에 하나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얼굴을 식별하는 능력이다. 딱 보니까 잰 한국사람이다 싶었다. 근데 어랍쇼? 가방이나 옷의 브랜드가 아무리봐도 한국인이 아닌거다. 그렇다고 교포 삘이 나는건 아닌데 말이지....
그에게 웃으면서 말을 걸어보니, 그는 일본인이었다. 마사. 30대 중반으로 봤는데 42세였다. 다시 한번 일본인의 동안에 탄복 또 탄복! 마사와 나는 같은 숙소를 찾았다. 둘이 가서 쇼부치면 좀 더 싸게 우유니 숙소를 묵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우유니 투어도 같이 떠날까 한다.

아따까마에 도착하자 마자 약간 어지럼증도 있는거 같고 산소도 부족한거 같길래 내가 고산병 같다고 하니까 (심지어 고산병도 일본어 한자와 한국한자가 같았음) 마사가 코웃음 쳤다. 꾀부리지 말라고. 자기 아르헨티나에서 6000미터에도 올라가봤다 왔는데 여기 2500미터 될까 말까라고. 된다고 전세계 산이란 산은 안타본적 없다는 마사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마사와 코카잎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마사가 우리나라에 대해서 너무 잘아는거다. 삼성은 물론이고 LG 횬다이(현대;;; 이거 알아듣느라 한참 애먹었다) 한나라당 민주당 노무현 이명박 모르는게 없쒀! 한참 친해진 다음에 그는 웃으면서 말해줬다. 자기 재일교포3세라고. 할머니 할아버지 경상북도 사신다고;;;
그럼 그렇지 피는 못속인다.

마사와 묵게된 호스텔이 무척 마음에 든다. 숀체크 호스텔인데 100배즐기기에 나와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여튼 론리플래닛에는 나와 있다.
여튼 오늘 태어나서 사막은 처음 겪어봤다. 낯선 풍경이 마음에 쏙 든다.
내일 새벽에 떠나게 될 간헐천 투어에서 나의 고산병이 있을지 없을지가 판가름 난다. 떨린다. 그리고 무섭다. 고산병으로 우유니에서 돌아가신 60대 주부의 사건 따위는 듣지 않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흑흑




오늘의 곰인형 : 버스에서 만난 까롤리나
아따까마로 넘어오는 버스 내 옆자리에 앉았다. 연신 남자친구와 통화하고 (깨가 쏟아졌다 쏟아졌어 젠장;;) 22살 대학생이라고 한다. 아주 두꺼운 고대문화역사에 관한 책을 가지고 있길래 나도 사학과 졸업했다고 말했는데 나는 영어로 그녀는 스페인어로 말했으니까 통했는지는 의문이다. 사학과를 나오면 뭐하나, 만리장성과 용 중국황제에 대해 나름 설명해주고 싶은게 너무너무 많았는데 그녀는 심볼 조차도 못알아들었다 ;ㅁ; 나의 짧은 영어와 그녀의 짧은 영어가 맞부딪혀서 낸 결말은 서로를 향한 미소와 배려 선물만이 전부. 흑흑.

한밤중에 헤어져서 후레쉬터뜨린 사진밖에 없다 흑흑 미안해 까롤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