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걸 봤다. 무지개만 네 번. 빙하가 낙하하는 것 세 번. 빙하위를 걸으면서 평소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장관들.(이건 세지 않겠다.)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라 더욱 특별했다.

그리고 오늘 내가 깨달은게 있는데, 나에겐 외국인을 식별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거다. 투어 가는 길에 버스 옆에 미국인 아저씨가 앉았다. 짧은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지개도 같이 보고, 아니 빙하투어도 비싸죽겠는데 입장료는 왜 따로냐면서 함께 수다도 떨고. 근데 돌아가는 길에 또 내 옆에 미국인 아저씨가 앉았는데 나에게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또 물어;;; 이걸 왜 또 묻나 싶었더니 자기는 혼자 여행왔대. 아까 그 아저씨는 분명 부인이랑 같이 왔었거든. 결국 그 때부터 나는 그 두 사람을 식별하기 시작했다.
 
남미를 다녀보면 아르헨티나 남자들이 제일 잘생겼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통감하지 못했다. 근데 오늘 모레노 빙하 투어하는데 우리팀 가이드 아저씨가 너무 간지였다. (서양남자들은 썬그라스 벗어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모레노 빙하도 절경인데 가이드 아저씨가 더 절경임. 아저씨가 말하는 영어의 20퍼센트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내 자신을 책망했지만 말 잘듣고 쫄쫄 열심히 쫓아 다녔음. (빙하에서 낙오하면 큰일이자나요....)

빙하 투어가 끝나면 모레노 빙하 얼음에 위스키를 넣어서 한진씩 돌린다. 민중의 집 중남미 소모임에서 배운 말 언제 써먹겠나 싶어서 아르헨티나 관광객들에게 위스키 잔을 치켜들고 "Hasta la última gota(마지막 한방울까지)"라고  말하고 쭈욱 들이켰다. 여기저기서 저 동양애가 뭐래?뭐라니?하더니면 원샷이래 그리곤 자기들끼리 빵빵 터지기 시작.  
-진정으로 다행이었다. 열심히 외운거 한번은 써먹을 수 있어서 ㅠㅅㅠ b




동행자가 있어서 더욱 씬나는 투어! 코지, 선화, 고모님








하루를 돌이켜 보며

시작은 최악이었다. 새벽 3시경 배가 너무 아파서 일어났다. 후레쉬 대신 쓰기 위해 아이폰을 켰는데 아이폰이 안켜지는 걸 발견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일단 그 고민은 위급한 고민이 아니었다. 나의 뱃속에서 천둥이 치고 폭풍이 불었고 있었기에-. 일단 화장실부터 다녀왔다. 그 다음부터 나는 아이폰에게 애원을 시작했다. '아이폰아 아이폰아 왜 안켜지고 그러니? 나한테 삐진게 있으면 말로해.... 응? 응? 너 고칠려면 두달도 더 있어야 한단 말야'
우울해 하다보면 어느새 다시 뱃속에서 천둥과 벼락과 우뢰가;;; 그럼 다시 화장실로! 침대로 돌아오면 다시 아이폰아 아이폰아 울부짖고. 그렇게 새벽을 지샜다. 
그 피로 때문일까(?) 아침에 눈을 떴는데 8시 30분. 근데 또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어느새 10시.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근데 바깥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서 트렁크를 끌려면 트렁크 짐을 비닐로 한번 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숙소 같은 방 홍콩친구 우엉이랑 잎은 아직도 쿨쿨 자는데, 부스럭 부스럭 소리 내려니까 너무 미안했다.(이봐들 아침 안먹니?!?!? ;ㅁ;) 그들에게 미안함을 감수하고 후다닥 짐을 다 싼 시각은 10시 20분. 잠 자는 잎을 깨워서 곰인형을 쥐어주고 안녕을 고했다. '안녕 잎! 나는 여기보다 15페소 싼 후지민박으로 떠나.... 여행 잘해. 건강하고. (너 쇼핑 너무 많이해서 짐이 너무 많다고 큰일이라고 남자친구 우엉이 어제 니 흉보더라. 근데 가방 두개는 좀 심했다. 저 짐 다 들고 이과수까지 어떻게 가니;;;;)'
*진하게 칠한 대사만 말했음을 밝힌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작별하며 비가 휘몰아치는 빠따고니아 평원을 가로질러 후지민박으로 GOGO.

호스텔에서 주는 아침밥도 사양하고 (후지여관으로 가는 길에 배가 아프면 진짜 대책이 없을 것 같았다) 용감무쌍하게 호스텔 문을 나섰다. 근데 후지여관이 유스호스텔촌에서 너무 멀더라;;;;; 트렁크는 무겁고 여기저기 진흙탕 천지라 끌 수가 없고, 비는 세차고 안경은 다 젖어서 보이는게 없고. 게다가 지도에는 빠져 있는 길 투성이. 한걸음 한걸음이 고역이고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가 내 인생에서! 그것도 빠따고니아 평원 한가운데서 언제 비를 맞을 수 있겠는가!!!!!

마음씨를 곱게 고쳐먹어서 일까? 그때 차가 한대 내 앞으로 서더니 금발에 완전 이쁜 언니가 나를 태워줬다. 그리고선 타고 들어간 후지여관은.... 걸었으면 정말 40분은 더 걸렸을 거리. 곰인형을 하루 한개 이상 뿌리지 않기로 했지만, 너무 고마웠기에 언니에게 쥐어 줬다. 금발 언니가 이름을 적어줬는데;;;; 못읽겠다.... 이바나...라고 읽는게 맞긴 한거 같은데, 이거 필기체는 아닌거 같고 뭔글씨야?!?!?!!? 대체 뭔글씨야?!!?!? 여튼 금발언니 너무 고마워요! 언니가 나에게는 깔라파떼 최고 미인임! 아냐 아냐 아르헨티나 최고 미인임!!!!

여튼 그렇게 천신만고 끝네 후지민박에 오니까 우왕! 깨끗해! 그리고 한국집 같애! 아늑해! 완전 좋아! 거기다 한국 사람도 있어 완전 씽나! 감탄을 연발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날이 활짝 개더라. 그래서 나는 대한항공에 이번에 합격했다는 친구와 깔라파떼에서 가장 큰 슈퍼로 고기와 와인을 사러 출발했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이게 왠일! 숙소에 또 한국인이 네명이나 와있네. 진짜 반가왔던건 그들이 아이폰을 썼단 거다. 그들은 나에게 강제시작 버튼을 알려주었다..... '언니 이걸 아직 모르세요?'란 타박이 빈소년합창단이 불러주는 상투스 처럼 울려퍼졌음. 흑흑흑 이래서 한국인이 있어야 합니다!
근심걱정 (설사를 동반한 천둥번 집중호우 내 위장+아이폰 시작)이 해결되고 난 뒤 마주한 깔라파떼의 풍경은 또 달랐다. 어제도 감탄했지만 오늘은 더욱 아름답더라. 호수 구경겸 책을 들고 나가서 한두시간 볕을 쬐고 돌아오고, 새로 온 한국인들이랑 저녁거리 사러 다시 한번 장보러 나갔다.

그리고 저녁에는 후지민박에 묵는 일본인 친구들과 고기 굽고 술 따고 파스타 볶고 피자 만들어서 씬나게 놀았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