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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예수전>이 집에 배달되어 온건 월요일이었다. 출판 되기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노란 책 표지를 넘기기 시작했을 땐 달 뜨도록 설레였다.

어릴 적 계몽사에서 나왔던 <성경이야기(전5권)>을 수십번 읽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예수님이 좋아요>를 시작으로 경건의 시간(성경 구절 읽고 묵상하는)을 가졌다. 구약은 레위기에서 막혔지만 신약은 완독 했다. 매주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드리기를 이십사년. 전부 다 안다 말할 수 없지만, 예수를, 그의 삶을 모른다고 부인한다면 (삼세번 부인한 베드로도 아니고) 그건 진짜 바보다.

 세상에 뿌려져 제 모든 것 바치고 썩어서 다시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개똥'에 비견되던 선구자. (나 다니던 교회, 존경하던 목사님은 항상 이렇게 말씀해주셔서 참 다행이다)

(한국)교회에 심사가 뒤틀린건 몇년 전이었다.
이단과 아닌 것을 구분하고 죄와 죄가 아닌 것을 재단하고 칼 같이 자르면서 비판하는 교회에 진저리가 났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끊임 없이 관대한 그들이 우스웠다. 정작 분노해야할 것에 외면하는 그 모습이 참 싫었다. 그토록 세상 복을 추구하면서 내세의 복까지 기대하는 그들이 탐욕스럽게 느껴지기 까지 했다.
서로가 서로를 사탄이라고 부르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봤을 땐, 그만 둘 때를 찾았구나 싶었다.  

그래도 24년 항상 의지했던 이름 예수. 한 때는 닮아가길 소망했고, (교회 수련회에서는 울면서) 부르짖기까지 했던 이름. 그의 이름으로 사는 자들이 싫다고 해서, 그의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겠다. 한장 한장 넘기면서 24년간 기억하고 있던 그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성전의 장사치들에게 화내듯 불의와 불평등에 분노하고 성 낼 줄 아는 원칙주의자. 허세와 허례허식에 찌든 바리새인에게 네 잘못을 말해주던 비판자. 슬프고 애통하던 자에게 천국 복을 약속하던 예언자.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낮춘 신(神), 신(神)의 모습을 닮은 사람.

내가 아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많고, 그가 행한 많은 이적마다 너무나 다양한 해석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그를 알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한 것은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서 언제나 분명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다. (현재의 슬픔과 애통함을 다행으로 여길 정도로 말이다)

아직 16장 마지막까지 다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마지막엔 판단이 서겠지.

예수를 믿는 것이 중요한지,
하나의 밀알로 썩어가던 그의 모습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중요한지.

어쩌면 이미 나와 있는 답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나는 이 책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예수전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김규항 (돌베개,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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