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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4 '헤어 킴(Hair Kim) 미용실'의 실종 2


우체국 들릴 일이 있었다. 평소 지나던 우정골목이 아니라 연희교회쪽으로 몸을 틀었다. 골목 어귀 조금 낯선 풍경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감사했읍니다 건강하세요'. 비어버린 미용실을 들여다 봤다. '헤어킴 사장 미세스 김' 언니는 그렇게 떠났다.

'5000원짜리 학생커트 2만원짜리 파마'.
대학생들 동네 아줌마들 상대로 미용실이 참 많이 생겼다. 그래도 동네 아줌마들 줄줄이 머리에 수건을 얹고 TV를 보고 있는 미용실은 '헤어킴'미용실이 유일했다. 작년 이맘때 쯤 파마약 때문에 독이 올라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염색 안해요, 파마 안해요' 써붙여도 동네 아줌마들은 '이번 한번만', '나만'을 외쳤다. 그래서 결국 언니는 이렇게 안녕을 고했나보다.

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1학년. 진아미용실에서였다. 당시 언니는 '미스 김' 시절이었고, 진아미용실 사장에게 고용된 종업원이었다.  손님이 8명 9명 몰려 있어도 진아미용실 사장 아줌마는 가위를 들지 않았다. 밀린 손님은 모두 미스 김 언니의 몫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언니가 안됐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게 사장과 종업원의 차이라고 말해주었다.
중학교 1학년 당시 커트비용 5000원. 그리고 나는 두달 전까지 언니에게 5000원을 내고 머리를 잘랐다. 언니의 손을 타지 않고 머리를 잘랐던건 진아미용실이 망했을 때 몇달, 대학교 졸업후 호일파마했을 때 세달, 언니가 출산휴가로 문닫았을 때 한달이 전부다. 모두 합하고 빼도 15년이 된다.

진아 미용실이 망했던건 나 대학때 일이었던거 같다. 몇달의 시간이 흘렀다. 우연히 동네 골목에서 마주친 언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학생, 저 여기다 미용실 차릴거예요. 그럼 이리로 와요.' 언니는 드디어 사장이 됐다. (비록 종업원은 없을지라도) 그때 본 언니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우리 할머니 누워계시던 몇년. 출장까지 와서 머리 잘라주면서 단돈 천원도 더 안받으려고 했던게 생각난다. 나 맹장터졌을 때 3일 안감은 머리를 감겨주던것도 언니였다. 그러면서도 샴푸값 천원을 더 안받았다. 마음씨 참 착하다고 동네 아줌마들한테 칭찬도 자자했는데.
그 고운 마음씨 만큼 행복한 모습만 봤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기 낳고 한달 더 쉬고 싶었는데 신랑이 화내서 미용실 문열었단 말이 자꾸 맴돈다.
자기 수요일 하루 쉬는데 그날도 밀린 집안 일로 쉴새가 없다는 말도 생각난다.
언니의 남편은 변변히 하는 일이 없다는 동네 아줌마들 말도 생각이 난다.

언니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착취'나 '여성의 노동'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언니를 처음알았던 시절에 나는 그런 단어를 알지 못했음으로. 언니와의 기억만으로 언니를 추억하고 싶다. 하지만 부정할수는 없다. 언니가 조금 더 행복하려면, (계몽 소설 같은 문구지만) '이대로'여서는 안된다는 것. 적어도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말이다.

많은 걸 바라는게 아니다.
착하고 순박했던 언니의 그 고운 마음만큼만, 딱 그만큼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바란다.
세상이 참 모질다. 비정하고 혹독하다. 그 '당연함'이 뭐 그리 '어려운가.
그게 너무 속이 상해서, 미용실 그 빈자리를 들여다 보는 내내 자꾸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