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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4 이번 추석 나의 소원


연휴 시작 전, 그냥 자연스레 쭈꾸미들에게 연락을 했다.
언제나 만나면 의례 순서인듯, 기름진 치킨으로 위장을 감싸고, 사이다 탄산이 주는 날카로운 목넘김을 즐긴 우리는. 어디로 갈까 이대로 헤어질까 주저하기에 내가 광분하며 의견을 냈다.
 

"나! 방송 일 시작하고 서울을 벗어난 것이 5번이 채 안된다. 이 밤을 이따위로 보낼 수는 없는 일! 홍얼이 차를 타고 어디든 가지 않는다면 이대로 혀를 깨물것!"

광분하며 이야기했지만 택한 곳은 (고작, 고작, 고작!!!) 선유도 공원.
난 여길 마음 먹으면 자전거 타고도 온다고 애원했지만 씨알도 안먹히는 이야기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온 그네들은 너무나 피곤했던 것!!! 게다가 유턴 하나 헛질 않고 바른 운전을 하면서도 뒷차가 새치기하면 광분하는 홍얼이가 운전대를 잡고 있어서 장거리 드라이브는 무리였다.

한강 도착 전,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 아이템 펑크로 인해 흐느끼던 나를 위로해준 그들은.
선유도 공원 곳곳을 돌면서 이것저것 참견을 더했다. 명절에 집엔 내려가지 않고 낚시대 드리운 아저씨들이 월척 낚는 현장을 목격 하기도 하고, 대통령 닮은 쥐를 보고 소리 좀 질러주고, 뎡이 그림자를 향해 참치마요네즈 전주비빔 같은 삼각김밥 닉네임을 달아도 보고.
자리를 이동했으면 배가 불러도 뭔가 더 채워넣겠다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내가 집은 건 스트로베리 라떼. 딸기 우유에 비하면 영문으로 표기된 이름엔 뭔가 고급스러움이 있지 않을까, 심지어 가격도 1000원이 더 붙었는데 특이한 깊은 맛이 나지 않을까 기대하며 뚜껑을 땄지만 예상 외 신맛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인 침을 넘겼다. 라떼란 단어는 왜 붙어 있는거냐. 우유 맛은 하나도 안나는데.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날이 좋다. 좋아서 참는다.

아이스크림 음료수 하나씩 집어든 우리는 한강을 보며 일렬로 앉아 있었다.
섭맨은 밴드는 연애와 같다고 푸념했고, 실연 아닌 실연의 아픔을 토로하는 그를 위로했다. 나는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고 그래서 연희동에 집을 사고 싶다고 했다. 3년으로 집어드는 연애에 고민인 지점이 몇개 있다 말하는 뎡이가 있었고, 추석날 근무하면 돈을 많이 준다고 좋아라 하는 실리적은 홍얼이가 있었다.(진심이냐 너는? 이라고 재차 물었지만 정말 신나하는 홍얼이 얼굴 앞에 우리 모두 무릎을 꿇었지) 자기 소개서 면접은 대체 어떻게 봐야하는 거야? 돌규가 물어봐도 방송과는 다른 그 판에 관해서 대답을 해줄 수 없어서 답답했다.
푸념섞인 근황을 전하는 우리 모두 꼭 1년 3개월 뒤면 서른이 되는데, 서른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절이란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할 조건도 만족할 여건도 아무것도 갖춘 것은 없다.

서른이 되면 우린 행복할 수 있을까?
그말로 인해 제일 불안한 것은 내 인생, 고작 요정도 행복이 최상 정점이면 어쩌지?


서른을 얼마 남기지 않은 우리는 추석 연휴가 시작되면 우린 꼭 얼굴을 봤다. 닥쳐오는 중간고사 시험공부한단 핑계로 교회에 모이기 시작한게 중학교 3학년. 그때부터였으니까 꼭 14년, 15번 째다. 반드시 모인 것은 아니었지만 대게는 모여 있었고, 약속은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치면 허전했다.  

'모이자' 해서 모인 우리들이 아니니까, '헤어지자.'라는 인사가 없이 헤어진다 해서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걸, 너무 잘 안다. 근데 그게 또 가끔은 쓸쓸해서 견딜 수 없다.



돌규는 여기 저기 우리들의 모습을 찍었다.
그냥 한강 밤바람이 너무 좋았고, 사진으로 남을 우리들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남겨주는 돌규의 카메라. 쌀쌀한 바람. 둥그래져 가는 가을 달. 우리가 나눈 담담한 이야기, 서로를 위한 소소한 위로까지.
모두, 찍을 수만 있다면, 원형 그대로, 그대로. 가슴 속 싶은 곳에 찍어두고 아무런 효과 보정 없이, 원판 그대로 담백하게 남겨서, 언제고 외롭고 쓸쓸한 날, 두고두고 꺼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 모레 추석 달을 보고 이걸 빌어야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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