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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에게

20세기 소녀 2011. 3. 31. 10:00

제대로 된 편지지 하나 없으면서 네게 편지가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구나. 일기장 맨 마지막에 적었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제대로 된 봉투에 넣어줄께. 편지를 부치는 방법도 있지만, 핑계를 대자면, 쿠바 아바나에서 한국까지는 우편으로 한달이 넘게 걸린다고 해. 분실사고도 빈번하고 말야. 그리고! 그 전에 내가 도착할꺼야. 파하하.  

네가. 지금. 이곳. 쿠바 아바나에 있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눈에 너무 선해서.
일기도 못쓸만큼 '나'에게 집중하기 어려운 이곳에서도 자꾸만 네가 생각난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 아바나에는 작은 광장들이 많이 있어. 커다란 하나보다는 서로 다른 다양함을 추구하지. (듣기엔 베를린도 그렇다고 하는데 사회주의의 산물인듯) "비에하 플라자" 우리 말로 하면 오래된 광장. 이곳에는 유럽 애들이 줄을 서서 커피를 사가는 예쁜 커피숍이 하나 있지. 아침 8시 반부터 줄을 서서 아침 9시 10시면 다 팔리고 없는 경우도 있고, 그 전날 미리 예약을 해 가는 관광객도 많고.
여튼 쿠바 아바나에서 가장 자본주의(맛있다고 질 좋다는 뜻) 냄새가 물씬 나는 커피숍에서 나는 방금 커피 꼰 럼(럼들어간 커피)를 마시며 기분이 좋아서는 어쩔줄 모르겠다. 이렇게 유쾌하고 행복한데, 꼭 그만큼 혼자 있다는 게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구나.

요즘 들어 알콜에 눈 뜬 너와 이 술들어간 커피를 함께 했다면 얼마나 신났겠니. 비에하 광장에서 노닥거리는 꼬마들 사이에 '아하하하' 큰소리로 웃어대는 어글리 꼬레아나스 가 될 수 있었는데 말야.

헤밍웨이가 '내 인생의 모히또'라고 외쳤던 잡화점에서 모히또를 마시고, 250원 하는 길거리 피자를 먹으면서 배를 두들기고, 소복한 하얀 눈을 연상시키는 다이끼리를 마시고,
내가 연애를 안해서 그러는 걸까? 좋은 곳에 있고 좋은 걸 만날 때마다 대게는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라. 아니면 어쩜 아바나 시내에는 젊고 활기찬 청년들이 가득해서 한국 남자들 생각은 안나는지도 모르지.

땀띠가 나고, 하루면 티셔츠와 반바지가 소금기로 가득 쩔어버리는 이곳이지만.
말레꼰 방파제에서 바다로 점핑하는 남자애들을 바라보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하게 트인다.

길을 가면 삐끼들 투성이. 듣자하니 몸을 파는 아가씨들도 있다고 하고. 구걸하는 거지들도 참 많아.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모습을 조금 기대하고 온 여행이었지만, 조금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길 바랬는데 그런건 만나기 어려운 듯. 공룡을 보고 싶었는데, 사라져버린 공룡의 화석만 만난 기분이야. 그런데도 이상하지? 이곳이 전혀 실망스럽지 않으니 말야.
화석을 죽어버린 돌덩이로만 볼 것인지, 그 화석을 더듬어 그 옛날 존재했던 거대한 공룡을 상상할 것인지는 내게 남겨진 몫이겠지.

그래도 이들의 노래와 춤사위에는 그날의 격정적인 승리가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태어나면서 부터 룸바를 추고, 싸움을 하면서도 룸바를 추었다는 쿠바인들은 춤의 이유는 잃어버렸을지 몰라도 이렇게 춤을 추고 있잖니.
날씨가 무더워지는구나. 슬슬 내셔널 갤러리로 이동해야겠다.





쿠바 아바나에서 넷째날.
화석을 더듬고 있는 너의 친구 앙증으로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