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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1 언덕 위 하얀집 4


오늘 우리동네 '언덕 위 하얀집'을 부수는 걸 눈 앞에서 보고
참담함에 일기를 쓴다.

'언덕 위 하얀집'이 정신병원을 말하는건  
골동품이 문화재로 바뀔만큼 오랜 시간된 유머인데, 
우리동네엔 아주 예전부터 이름그대로 '언덕 위의 하얀집'이 있었다 

곽지균 감독의 영화 <겨울나그네>에도 나왔던 집이고,
그 앞을 지나면 (그 근처 집들이 다 허우대 멀쩡하고 담높고 평수 좋은 집들이다만)
프로방스 식 아담한 집모양이 눈을 사로잡고 마음을 설레게했다. 

빨강머리 앤의 감수성에 반해 있던 꼬꼬마 시절
그 집에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해서 무얼하며, 
오죽하면 그 집에 살고 있는 먼훗날 연애의 대상을 상상해 본적도 있었지.
(모두 상상력이 뇌를 뚫고 하늘까지 뻗쳐가는 사춘기 시절의 일이다)

'마리아 칼라스'라는 까페 이름으로 바뀌었을 때 
개인 소유가 아닌, '투자'와 '이윤'의 공간으로 변질된 그곳에 대한 배신감은 얼마나 컸던가. 

그래도
까페의 모습으로라도, 계속 있어주길 바랬는데... 
 
언젠가 살고 싶던 집들이
언젠가 살고 싶던 삶들이 
꿈꾸던 것들이 자꾸만 실현 불가능함을 눈으로 목격하며 
나이를 먹는 것이 존재가 닳아 없어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아득히 슬픈 일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하루하루 닳아져 없어져 간다.
'존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