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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0세기 소녀 2009. 4. 2. 18:20



12년 전, 나는 서태웅과 닮은 점이 있었다.
고등학교의 선택의 간단명료함.'가까우니까'.

높고 높은 연북중학교에서 3년을 지내다 보면, 평지에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이대부고 교문을 보면서 사랑과 운명을 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사랑과 운명이 아니라 해도 어차피 연북중학교 애들은 이화여고 지망에서 떨어지면 '금란'아니면 '이대부고'로 갈 운명이었다. 과하게 운명을 거스르지 말자. 교복 치마를 입지 않아도 되는 그 학교를 선택하자. 커트머리였던 나는 머리 규정이 단발인건 문제가 아니었다. 

대학을 적게 가는 것도 장애물이 아니었다. 나는 선지망에 서슴없이 '이대부고'를 적었다. 연북중학교 3학년 5반 담임과 9반 담임은 이대부고를 못쓰게 했단 소리가 돌았다. '거길 가면 대학을 못가요' 학부모를 설득하기 참 명쾌한 문장이었다. 같이 쓰기로 한 몇몇이 선지망에 학교 이름을 못적었단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화여고 떨어지면 다들 만날 것을 뭘. 

11년 전 3월 2일. 아스트라한 입학식 장면을 잊을수 없다. 칼구두 쫄바지.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달라 붙은 루카스와 이스트백가방 속에서 혼미함을 느꼈다. 그래도 애써 다니는 학교인데 폄하하지는 말자. 안그래도 똥통학교로 유명한데. 그게 내 모토였고 어느새 불평보다는 장점을 찾기 시작했다.  

한학년 6반 270명 작고 작은 학교는 단점도 많고 부조리도 많았다. 서울대 이름 아래 '1'이란 숫자 하나 못 집어 넣었지만, 모든 선생님들이 전교생 이름을 외워주는 우리학교가 좋았다. 좁아서 50m 달린다음 두배의 숫자를 100미터 기록으로 넣을 망정 매점에서 1분이면 꼭대기층 2학년 교실까지 올라갈 수 있는 작은 학교가 좋았다.
휠체어를 탄 학생도 3년 개근상을 받던 학교. 옆반과 우리반이 남아서 축구대회를 하고 이대골목에서 수십명이 단체로 떡볶기를 사먹을 수 있던 학교. 토요일 하루를 빼서 지각비로 떡을 해먹으며 장기자랑을 했던 학교.
애써 장점만 봤던 탓도 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좋아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학교였다.  

8년 전 금란과 통합으로 건물은 이전되고 기억 속 그곳은 중학교가 되었다. 전교생 14명 한학년 700여명이란 숫자도 늘었지만 소위 명문대 적어 넣는 숫자도 참 늘었다고 한다. 교복과 두발단속은 더더욱 심해지고 남녀간 교제도 엄격해지고 통제하지 못할 참 많은 것들을 구속하고 닫아 놓는단다. 그래도 대학보내는 숫자 하나로 '자랑'이 되고 '명문'이 된단다.
내가 그리워한 우리학교는 그런 곳이 아니었는데.

고등학교 그 시절을 기억하면
불완전하고 모자란 특이하다 못해 이상한 아이들이 가득했고, 다른 학교에서는 생각을 못할 상상을 넘나들 일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기억 속 나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복도, 교실, 교무실 곳곳에서. 언제나.

토요일 버스타고 지나치니 하얗게 칠해진 건물이 보였다. 다음날 오후 자전거 타고 이대 후문을 지나오다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서 한바퀴를 돌았다.

참 많은 일이 있었던 3년이었다. 그 시절 누구를 만나면 항상 그 때의 이야기를 할만큼. 다들 어디 있는지 때로는 궁금해서 못견딜 만큼. 그리고 언제라도 그 때 누구를 만나던 '그 때가 좋았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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