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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28 다섯여름이 지나고

길고, 깊었던 여름이었다.

진저리 날 만큼.

 

그리고, 그렇게 쌩- 하니 가버렸다.

 

금요일엔 K사 본관에서 주스를 사들고 야외 벤치에 앉았다.

여의도 공원을 바라보며 땡땡이를 쳤다.  

동료와 수다를 떨던 도중, 깊어진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서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는데,

딸려온 내음이 5년 전 줄창 듣던 어느 노래를 실어 보냈다. 

 

 

잠이 들 때엔 여름이 한창이었으나,

눈을 떠보니 싸늘한 겨울이 와있더라.

 

5년 전. 남미 여행을 하기 전과 하고 난 후, 

<생각의 여름> 앨범 전곡을 열심히 들었다.

한번 재생시키면 멈추지 않고 끝까지 듣곤해

나에겐 앨범 속 열두곡이 한곡처럼 느껴졌다. 

 

하늘을 바라보다 주스를 빨고 수다를 떨다

중간중간 눈을 감고 맴도는 노래에 귀기울였다.

 

 

다섯 여름이 지나고

나는 어디 있을까?

다섯 여름이 지나고

나는 지금 보다

아름다울까, 어떤 색으로 짙어질까.

푸르러질까 붉어질까 창백해질까

 

 

5년전 이 노래들을 듣던 그때를 떠올렸다.

시간의 힘은 얼마나 대단한가.

많은 것을 지우고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꺼내 놓는다.

 

다섯 여름 전, 당시 나는 완전! 귀여웠지만 ㅎㅎ

평생 커트 머리를 할거라 결심했었고, 내 인생의 몸매는 아마도 영원히 오동통하지 않을까 속단했었다. 사는데 불편 없으면 된거 아닌가? 라고 스스로를 규정었다. 그 생각이 틀렸단 것은 아니지만 결론 지을 필요는 없었다. 한국사회에서 쓰잘데기 없이 제시한 '여성에 대한 미'의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를 폄하하던 쩌리같은 면이 있기도 했었다.

엉겁결에 다이어트를 하고 머리를 길렀다. 절대 하지 않을거란 화장도 이젠 제법 능숙하다. 덜 여성스러운 '나'라도 즐거운 데이트를 하는데는 무리 없단 걸 알게 됐고, 오랫동안 꿈꿨던 장소들을 경험하며 겁은 덜어내고, 용기는 더해가며 살아보고 있다.

 

 

그래.

다섯여름이 지나고 나니 그렇다.

그날의 나는, 감히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어째서 상상해 볼 수 없었을까?

나의 존재가. 이처럼 다채롭게 채색 될 수 있음을.  

끝없이 도전하고 무언가를 향해 변화하고 있음을.

그래서 더욱 반짝 반짝 빛날 수 있음을.

 

 

<다섯 여름이 지나고>를 속으로 따라부르며,

나는 불과 보름전에 시작됐던 놀라운 일들을 기억한다.

그 난자리가 완전히 아물지는 않겠지만

그때의 생채기가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고 끝없이 변화하고 멈추지 않을것이다. 

다양한 색으로 가득 물들었다 바래지기를 반복하며

삶이 얼마나 누릴 것으로 가득한지, 그 풍성함을 만끽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