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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30 편지가 쓰고 싶다 4



막내가 휴가를 나왔다. 막내가 군대 갈 때만 해도 결심했었다. 편지 자주 써줘야지. 일주일에 한번은 써줘야지. 그렇게 혼자 마음 먹었다. 하지만 요즘 정신줄 놓고 사는게 다반사다 보니 속으로 한 약속 같은건 너무나 어기기 쉽다. 약속 깨고 부순지 이미 반년. 결국 어제 막내가 시니컬하게 한마디 하더라.
'누나 나한테 잡지 부쳐준지 몇 달 된 줄 알아?'


친구를 단 둘이 만나지 않는 편이다. 아니, 아예 그런 자리는 피하곤 한다. 끈기가 없고 조급한 나는 대화를 나누다 생기는 빈공간이나 여백을 참지 못한다. 1대 1의 만남은 불편했다. 무리 속의 하나대 하나로 만나는 게 좋았다. 그속에서 나는 단 하나의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에 마음도 가볍고 부담도 덜했다.

그래서 편지가 좋다.
일대일 데이트를 할 줄 모르는 못난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고요하게 내 이야기만을 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니. 여백따위 생략하면 되는거고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아도 잠시 펜을 멈추고 고민하면 된다.  
 
친구들이 유학가거나 군대를 떠날 때마다 언제나 마음 먹었던 것 같다.  
언젠가 좀 짬이 생기는 날. 그간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생각나는 날.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히히덕 대며 술 마시듯 편안하면서도 그 시간 너한테 오로지 집중해서 편지를 쓰겠다고. 일대일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빌어먹을 성격이니 너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만은 잘 정돈해서 건네겠다고.
뭐 결심은 그랬지만 실은 시덥지 않은 이야기만 한가득이었다. 하고 싶었던 말은 잘 하지 못하거나 흐릿하게 흘리기만 했지. 그래도 아직. 편지가 좋다.

이메일을 처음 만들고 저 먼 미시간에 있던 첫사랑 오빠에게 편지를 쓰던 건 얼마나 설레였는지. 꼭 10년 전. 다음 메일을 만들고 뭘쓸까하다 앙증이란 아이디를 생각해내고. 그 시절 메일은 수신확인도 안되던 시절이었다. 다음 날 새로받은 편지함이 0통이면 아직 읽지 못해서 그럴꺼야. 위안했지만 그만한 좌절이 없었다. 행여나 2통이 와 있는 날엔 세상을 다 가진거 같았고.

답장을 받는 건 편지 쓰는 것보다 더 신났다.
비록 말을 중간에 끊고 참견은 할 수 없지만 내가 건넨 이야기의 보답을 받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비밀스럽게 털어 놔주는 것 같아서 봉투를 뜯을 때면 언제나 설레였는지. 세장 네장 두껍게 온 편지는 더더욱 기뻤다.
덧붙이면, 차별은 아니지만, 국제우편이 훨씬 더 신난다. 외국의 우표가 붙어서 알파벳으로 표기되어 있는 '서울'이란 글씨는 얼마나 낯설고 생소한지. 저 먼 곳에서 니가 나를 생각해주고 내가 있는 이곳을 생각해주고. 생각에 생각이 덧대는것 같아서 더 값나가고 귀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편지를 써본것도 답장을 받아본지도 참 오래 됐구나.
마음도 바쁘고 몸도 분주하다. 그래도 조금 더 여유 있는 날에는 편지 쓸 사람을 생각해 보겠다. 예쁜 편지지는 아니더라도 가득 찬 마음을 전하겠다. 잘 접고 포개서 우체통에 넣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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