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화요일

 

오늘 쓴돈 :
프랑크푸르트 s반 4.55유로
택시 11유로 (46번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저녁 8시부터 나이트 버스라 거길 안간댄다 ㅠㅠ)
호스텔 27유로

 

 

 

<비행기에서의 술주정>

 

비행기가 출발한지 한시간 반. 독일 맥주 WASTEINER를 (간식으로) 마시고 있다.
한글 자막이 있는 영화가 몇 없길래 자막이 별로 필요 없는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
아일랜드 행 티켓을 끊은 이상 볼 수 밖에 없는 원스를 틀어놨다.

아까 공항버스 탈때는 좀 울컥했는데

작아지고 늙어버린 엄마 아빠와 작별하는 일만큼 슬픈 건 없다.
돈이 벌고 싶은건 사랑하는 이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해줬던 부모님, 작은엄마 아빠들을 떠올리면서 뭔가 보답하고 싶은데
우리 사회엔 돈만큼 편안하고 확실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튼 많이벌어서 나누고 싶다. 받았던 사랑과 보살핌은 모름지기, 보답하고 싶다.

 

오늘 공항에서는 후배에게 선물받은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쓰지 못했다.
120번이 넘는 게이트를 지나선 스타벅스 매장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짐이 너무 무거워서 물이고 나발이고 뭔가 마실상태가 아니었다.
비록 트렁크는 맡겼지만, 등짐 12kg+노트북가방 4.5kg+핸드백을 가장한 2.5kg의 짐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동하는건 큰 체력소모를 쓰게 된다.
면세점까지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명근이가 말했던 너 이러려고 크로스핏 했냐 라고 했는데 그것마저 하지 않았음 어쩔..

알딸딸하게 취기가 오른다 더는 못쓰겠다.

 

 

 

<실망이다, 원통하고 분하다!>

 

실망을 감추지 못하겠다. 몹시 의기 소침해져 있는 상태다.
왜? 대체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2012년부터 꾸준히 헬스를 시작했고 지난 3개월 크로스핏의 고난이도 운동을 강행했으면서.
과거 몸무게에서 10킬로그램 이상을 감량해왔으면서 자신있었다.
내가 다른건 몰라도 이 하나만큼은 괜찮겠지 싶었다.
무엇보다 속상한 것은 남들이 잘만하고 쉽게 하는걸 나는 하지 못한다는 거다.
이 난감함을 감출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술을 먹고 또 고산병이 온거다. (2012년 유럽여행 이후 두번째다)
대체 왜 이런일이 '나에게' 발생하는 것인가! 나의 무엇이 잘못된 걸까?

안타깝게도..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고산병이 발병했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는 하나다.
알콜 섭취의 유무.
흑흑

 

아마도 고치기는 힘들것 같은데 고칠 병도 아니고. 그냥 예방법이 술을 안마시는 거잖아?
절망감이 가득하다.
앞으로 남은 인생 비행기를 타고다녀야 하는 모든 순간 마다,
아무리 기쁘고 행복하고 축하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세상 천지 맛좋은 와인과 좋은 술이 비행기에 준비돼 있는 퍼스트 클래스를 탄다 하더라도..
나는 비행기에선 술을 마실 수 없다. 네버!

 

가능성이 열려 있는것과 하지 못한다는 금기는 얼마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 흑흑흑...
ㅠㅠㅠㅠㅠ 무와 유의 차이만큼 어마무시한 거다. 

 

실망이다. 슬프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아까 간식타임에 바이엔슈테판이란 아름다운 맥주를 탄생시킨 독일산 비행기이니만큼
여기서 맥주를 먹겠단 일념으로 호기롭게 '비어'를 외쳤는데,
기내식도 꼭꼭 씹어 챱챱챱 야무지게 먹었는데...,

아 그때까진 아름다운 여정의 시작이었지...


자다 말다를 반복하면서 두시간즘 지났을 때 두통이 오기시작했다. 배가 더부룩하고 토하고 싶고 내장이 빵빵해진 느낌. 이것은 고산병의 시작이 됐다. 참으려고 참아봤지만 또 너무 참으면 일을 키우는 법. 인내의 한계가 왔고 더 이상 놔둬서는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을 때
결국 승무원들 휴식장소로 휘청휘청 비틀대면서 걸어갔다.
(예전 유럽행 아시아나에서 -지금과 똑같이-고산병이 났을 때도 승무원에게 가니까 해결법을 알려줬던게 생각나서..)


비틀대면서 가서 브래지어 끈을 풀러놓고, 피가 통하도록 등산화를 벗고 기대어 쉬는데
아... 이 비행기는 루프트 한자였지? 독일인 언니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고산병을 외웠는데 뭐였지? 주절주절 영어로 설명하려고 하는데. 고산병이라 숨을 쉬기가 힘든거다. 눈앞이 캄캄하고 아득하고... 내 상태를 설명하는 영어도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이마운틴헤드에이크.. 중얼댔는데 다들 못알아 들어...
아이캔트브레쓰. 이 흔한 대화가 생각이 안나기 시작 ㅠㅠㅠㅠㅠㅠㅠ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이 니드 코리안 스튜어디스...

언니들은 부랴부랴 휴식에 들어간 승무원을 불러주었다. ㅠㅠ
고산병이라고 이야기하고 숨쉬기 어렵다 누워 있으면 금방 괜찮아 질거다.
예전에 남미 여행했을 때 고산병을 겪어 본적이 있다.
대화도중 독일인 언니의 날카로운 질문...
/너 술 마셨냐?/
이렇게 예리할 건 뭐람. 결국 예스라고 대답하고 나는 이제 앞으론 비행기에서
술은 '못'마시는 거라고 깨닫고 말았다.

여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고 한국승무원언니가 통역해주고 있는 와중에,

급하게 뛰어온 한 독일 승무원 손에 들린건 산소호흡기. 흑
저 누워만 있어도 금방 나아지거든요. 지금도 많이 나아졌어요... 라고 사정했지만
항공사 규정 때문에 안된단다... 아흙...

이게 무슨 망신인가. 결국 산소마스크를 쓰고 담요를 깔고
항공사 캐비지(?)에 드러누워있는 신세가...

 

+) 여담인데 구겨지듯 좁은 이코노미석 창가에 찌그러져 있다가 드러누워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싶었다. 담요가 깔려 있고 비행기 본체가 워낙 따뜻해서 등이 뜨듯하니 체온이 돌고
피가 안통할까봐 두 다리는 의자 위에 올리고 누워 있는데 맑고 상쾌한 산소를 들이 마시고 있으니까...

 

여튼 이 모든 사건사고를 일으킨 뒤에 나는 시치미를 떼고 자리에 앉아 있다.
일단 저녁으로 나온 기내식은 패스하고. 등짐 20킬로를 지고 다니려면 배고파서 힘이 없으면 안되니까 간식으로 나온 샌드위치를 저녁 대신 먹었다. 소화를 위해서 평소 마시지도 않는 콜라까지 달라고 해서 마셨음.

 

실망이다. 원통하다.

비행기에서 기분내면서 술한잔 할 수 없는 비루한 몸뚱이! 너무 슬프다. 아아아아!!!

 몰타에서 다시 160일 여행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 비행기에서 술한잔을 할 수 없다니?!?!?!!?!?

이 무슨 인생의 비극이란 말인가....

 

 

 


<여행객의 동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 남미에서 일기를 썼을 때
현지인의 동정으로 살아간다고 일기를 쓴적이 있다. 이번에 나는 한단계 더 발전해 있다.
여행객의 동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짐보관소를 찾지 못해 헤메기를 20여분...
결국 짐맡기는건 포기하고 그냥 유스호스텔이나 가야겠다 싶었는데

s반 타는 법을 도저히 모르겠는거다 흑흑...

정말 잘생기고 늘씬하고 친절하며 생글생글 웃어주는 독일인들의 도움을 받아 받아 동정을 주어주어  s반 타는 곳까진 갔는데
자판기에서 뽑는데 안뽑혀. 현지인인 베트남 사람이 아무리 자판기를 뽑아주고 자기 2유로짜리를 넣어주는데도 안먹혀. 카드도 안먹혀...

패닉이 돼버렸다. 결국엔 베트난 사람의 충고대로 다른 자판기를 찾아갔다. 베트남 친구강 ㅗ죽하면 6분 남앗다고 힘내라고 말해줌 흑흑.

그러다 자판기에서 티켓 뽑고 있는 중국인(프롬 텐진) 여행객 커플을 따라 졸졸 나가기 시작. 좀 따라가도 되겟니라고 물엇다. 그 와중에 오지랖을 참지 못하고
너 가방 쿠마몬이구나 중얼대주고 ㅋㅋㅋㅋㅋ 나 너를 따라갈거야. 니네 커플이 날 구했어 중얼대주며 셰셰를 연발해주고,
그렇게 프롬 텐진 여행객의 동정으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까진 무사히 도착.
개네들은 나를 무척이나 걱정해줘서 자기네는 역 근처 호텔이라며 같이 가지 않겟냐고까지 권해줬으나 가난한 몸뚱이.. 그럴 돈의 여유는 없었다.


현지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으며 비오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46번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길 20여분... 간신히 온 46번 버스가 밤에는 거길 안간다는 비극적인 말을 .. ㅠㅠㅠㅠㅠㅠ
거짓말! 거짓말!!! 이사람아 밤 9시가 이 무슨 비극이란 말인가.

뒤에서 그 이야기를 엿들은 늘씬하고 친절하고 잘쌩긴 독일인 젊은이가 구글로 후딱 검색을 해주더니 걸어가면 30여분이라고  같이 가줄 기세로 걸어나가는거다...
왜 하필 내 등에는 12킬로+4.5킬로+2,5킬로(+에짐 추가. 면세점에서 산 물품 부피는 작으나 포장이 대빵큰 물건들 흑흑흑)
거기까지 택시비는 얼마나 나오니? 라고 묻자 10유로 모어 라고 대답해주길래 그래 괜찮아 나 택시 탈게 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다행히 마음씨 좋고 인상좋은 흑인 택시아저씨가 택시 타겠냐고라고 물어서 11유로에 숙소까지 왔음

택시 타고 구경하는 프랑크푸르트 야경은 근사해서...
이곳을 낮에 못본다는 안타까움과 더불어 그래도 이렇게 안전하게 여행하는게 어떤가 싶다

짐을 이고 다니고 고산병까지 겪은 몸뚱아리.

샤워하고 싶었지만 세수만 간신히 하고 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