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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06 보인다, 댄싱9. 4


어릴적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건 '시야'였다. 
그림이 좋았다. 
꼬마 때는 멋진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조금 지나서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더 좋아졌다. 
이야기가 덧대여지면 
더 많은 것이 보였고 자잘한 하나에도 공감을 넘어서 동감할 수 있었다.
오래도록 만화를 좋아했었다. 

엄마가 보낸 5학년때까지 억지로 보낸 피아노 학원에선 늘 턱을 괴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6학년에 올라가서야 보내준 미술학원에선 늘 즐거웠다.
(보는 재미가 하나 없는 아그리빠 뎃생을 시작하기 전까지) 

지금도 나는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현재는 글을 쓰는 것이 업이지만
따지고 보면 보이는 영상에 음성을 덧입히는 일을 하는 중이다. 

방송을 매번 느끼는 건 '화려하게 금칠을 한 내래이션'한마디 보다는 
'순간을 사로잡는 한 장면'의 강력함이다.
(방송은 시각이 80%이상을 차지하는 특수분야니까.) 
영상을 넘어서는 내래이션이란 대게 거짓말에 가까운 법이다.

친구 이쥐가 추천해서 댄싱9을 보기 시작했다.  
류진욱, 남진현으로 시작해서 나중엔 누구라 고를 수 없이 레드전체의 빠순이가 돼버렸다.


댄싱나인 첫생방을 보던 날. 
왠지 AC밀란을 응원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챔프에 연재되던 슬램덩크 산왕전을 가슴졸이며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재밌다면 재밌다는 얘긴인데 보는 내내 맘이 좋지 못했다. 

그저 보고 감탄하기에도 부족한데, 대체 왜 스포츠와 같은 경쟁을 집어 넣을까
왜 춤추기도 부족한 아이들에게 군대처럼 소속을 집어 넣고 연대책임을 물을까 
소통을 위한 몸짓에 성적처럼 숫자로 결과를 논하는 것은 말이 되는 일일까,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은 끝이 없지만,
뭐 따지고보면 그게 현재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방증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배길 수 세상에 살고 있단 소리겠지.

여튼!
춤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내가 무대를 보는 순간마다 가슴이 뛰었던 이유는
'보는 것'은, 그것을 만드는 '순간'은,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이다.

춤을 보면서 감탄할만한 '진실'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좋아졌다. 
육체의 움직임, 몸의 언어.
과장도 왜곡도 덜어냄도 더해짐도 존재할 수 없는 진실한 '팩트'를 만나는 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 팩트감상을 방해하던 발카메라... ㅠㅠ 흑흑...)


다양하고 자잘한 팩트들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결론을 향해 맹렬히 달려갈 때 
구성은 빛을 발한다.
개개인의 캐릭터를 부각하고, 그가 살아온 인생을 보여줬을 때
그 사람의 움직임은 더욱 많은 것을 말한다. 
단순한 이해를 넘어선 공감.
그것이야 말로 예술이 수많은 장르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댄싱9은 보이는 시각과 설명을 잘 융합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눈에 띄는 무용수들이 모인 레드윙즈가 좋았고,
캐릭터 부각이 늦었던 블루아이도 알면 알수록 다들 착하고 실력있는 사람들이라
18명 모두를 응원할 수 있었다.
(솔직하자면 블루에서 몇몇은 다른 애들을 넣었어야 한단 생각이 드는 애들이 있긴 했다ㅜ)

여튼 나는 레드팀의 광빠..;;;가 되어,
댄싱9에 빠진 이후로 여섯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다.

레드 중에 누가 가장 좋으냐고 물으면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너무 좋아 대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댄서'로서 MVP를 주고 싶은 이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하휘동을 꼽겠다.  

35살. 
그는 아직도 춤을 춘다.

춤을 추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자아를 실현해왔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왔고, 마침내 증명해냈다. 
 
결론과 과정이 딱 들어맞는 완결된 '구성'.
이토록 완벽한 구성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참 부족한 구성작가로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늙다리 골잡이가 되어서도 은퇴 경기까지지 골을 넣는
필리포 인자기를 응원한 과정이 언제나 내내 간절했던 것처럼
아흔셋의 나이까지 쓴 글대로 살아왔던 에릭 홉스봄을 알아가는 순간이
감동을 넘어선 그 이상이었던 것 처럼

댄싱9에서 '춤을 추는 35세 비보이의 삶'의 단면을 지켜본 지난 두달은
유려하게 구성된 짜릿한 다큐멘터리의 명료한 결말 하나를 본 것같은 시간이었다. 
아주 오래도록 잊지 못할 이야기다.  


+덧) 그나저나 오늘 하휘동 ㅠㅠb
필리포 인자기 이후로 빠순질을 해도 평생 부끄럽지 않을 이름 하나 추가다.
오늘 MVP가 된 하휘동을 헹가래 쳤을 때의 감동은
2006년 아주리가 월드컵 우승하고 칸나바로가 컵 들어올렸을 때만큼이나 짜릿한 순간이었쟈나....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