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20세기 소녀 2010. 8. 9. 11:35


10년전 그 애는 머리를 빡빡 밀었다.
400점 만점의 수학능력시험. 2학년 마지막 모의고사 때 그애는 모의고사 점수는 200을 넘지 못했다.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는 겨울 그애는 공부를 시작했다.
머리를 밀었다. 치열한 1년의 시작이었다. 다행히 굳센 의지만큼 결과는 놀라왔다.
그걸 지켜보는 나는 믿을 수 있었다.
노력한만큼의 댓가를, 치열함의 보상을.

작년 이맘 때 나는 그애를 만났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며 멋쩍게 웃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대학 4년, 사립대학에 높은 등록금은 넘기 어려운 산이었던듯 했다.
그애의 머리는 10년전 그대로 빡빡머리였다.
갑자기, 무너져 버리는 것들이 생겼다.
10년전 그애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지켜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애는 아직도 좀더 치열해져야만 했다.
나는 울고 싶어졌다.
누구든 붙잡고 말하고 싶었다.
그애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안타까울정도로 꾸준하고 묵묵했는지.
그 모든걸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 가난을 본적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작년 이맘 때 느꼈던 나의 참담함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내가 본, 내가 느낀 가난의 단면은 그것이었다.

십수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치열해야하는 것.
살기 위해 끝없이 싸워야 하는 것.
한발 뒤로 물러설 곳 없다는 것.

그 비정함이 몸서리 칠 만큼 지긋지긋하고 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