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나는 무척 게으른 아이였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게으르단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전 동창생 하나가 나의 관찰일지를 읊어줬었는데, 그 증거가 명확했다.

"넌 일단 귀찮으면 안해. 학급 일지 낼 때 보면 알 수 있었는데, 넌 늘 교무실 가는게 귀찮아서 담임이 종례하러 올 때 슬쩍 교탁이 올려 놨어."

갓 도리질 배운 애처럼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였다.

또래집단이 강조 되는 사춘기 그 시절.
교문을 나서는 5분을 함께하기 위해서라면 단짝친구의 청소시간 30분도 기다려주던 빛나는 우정을 거의 모든 전교생이 실천하던 그때. 나는 아침에 학교 같이 가자는 뎡이의 요청도 단칼에 자른 경력이 있는 인간이었다.

당시 뎡이는 우리반 지각여왕으로 등교할 때마다 '지각여왕 납신다 박수쳐라'란 소리까지 들었던 아이였다. 함께하는 등교길이 나쁠 것은 없으나 내가 귀찮았던 것은 그녀와 함께 등교하고 난 뒤 받게 되는 후폭풍, 즉 벌칙이었다. 지각비 500원은 매점에서 파는 통통배 하나 안사먹으면 될 돈이지만, 오리걸음을 한다던가 운동장 뛰기 등의 몸을 쓰는 일이 너무나 싫었다. 체벌이 없는 하교는 30분이고 1시간이고 늦춰져도 된다. 하지만 등교는 다르다. 나는 그녀와의 제안을 엣지있고 시크하게 거부했다.  

벌칙이 귀찮아서 마지못해 체제에 순응하는 습관은 귀찮음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왜?'라는 의문 대신, 순응하고 적응하는 버릇은 그냥 생긴게 아니었다.

요즘 나는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놓쳐버린 것들을 떠올린다.
학창시절 담배를 피운 적이 없으며, 음주도 하지 않았고, 당구장도 가지 않았다.
나이트는 지금까지도 가본적이 없다. 지각은 물론 결석 조차 없었다.
성적도 항상 어중간했다. 최선을 다하는 건 힘든 일이니까 부모와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을 정도 선에서 공부를 마무리 지었다. 그 결과 어중간한 내가 탄생했다.

그때만 할 수 있던, 그 때가 아니면 안되던 것들은 무엇이 있나?
수업시간 땡땡이. (물론, 임원이었으니까 수업시작 전 인사할 때 바로 들통났을 확률이 높다)
음주 흡연의 추억(?) 혹시 재수없게 걸리게 되면 겪게 될 체벌의 추억까지.
가장 예민하고 날이 섰을 때 부딪혀 봐야했을 '왜?'라는 의문들,
그리고 얻게 될 답들.

지금에 와서 아쉽다고 하면 너무 뒤늦은 것일까?

점심시간 여의도에서는 맥주를 마시는 아저씨들을 자주 보게 된다.
서른이 되기 전 낮부터 술퍼마시는 작태를 한번 시도해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