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들려왔다.

우리는 일년에 한번 정도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고,
봐야겠단 생각이 들면 날짜를 박아 얼굴을 보고 밥 한끼에 서로의 근황을 전하고
그 한번마저 생각나지 않으면 그마저도 지나치고.
그래도 길가다 만나면 반갑고 유쾌하고 배를 잡고 웃고
그정도에서 꽤나 만족하고 지낸 사이다.
근데 그건 '만족;이 아닌, '별수 없는 체념의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서는 여러 감정이 읽혀졌다.
무슨일이냐 물었다. 쓸쓸하댄다.
여친과 헤어졌냐고 물었다. 그런 쓸쓸함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함께 어울리던 여럿의 이름이 많이 떠올랐는데,
누구는 결혼하고 누구는 어디가고 누구는 연락이 끊기고 목소리 들을 번호가 몇 안되더란다.
몇몇마디에 참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냥 함께 지냈던 이런저런 추억들을 떠올리면 꼭 중학교 시절이 아니더라도
감정이 복받치는 날이면 주먹을 꼭 말아 쥘만큼 그리운데.

그렇게 웃고 떠들고 함께하고 커가고
그런 모든 것들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고, 추억으로 남는 것이 고작이고,
언젠가는 그 조각들을 흐릿해지고 빛바랜 채로 꺼내어
더 이상 추가도 수정도 탈고도 할 수 없는 마침표를 찍었음을 통감할 수 밖에 없다.

옆집 옆집에 앞집에 24년간 살았던 우람이가 이사가고,
추석때마다 함께 십오년을 함께 소원을 빌었던 홍얼이가 결혼을 한다.
흡사 함수와 자판기 처럼, 달라진 상황을 누르고 나면, 달라진 관계가 출력된다.  
그래서 지난 보름달을 보며 함께 맥주를 마시고 들어오던 길.
아 이 자리는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겠구나를 되뇌일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정체할 수 없이 끝없이 변하는 존재라지만
가끔은 돌아봤을 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줄 지표가 고정된 상수가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어디쯤 왔는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압정으로 고정하듯 꼭꼭 박아둘 관계는 어디서 찾아야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