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프로그램 들어갈 땐 조급증이 도져서,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해주는 멜랑콜리아 일정을 확인했다. 그리고 친구랑 연락하고, 약속 잡고... 근데 정작 그날 (둘다) 낮잠자다가 볼 기회를 놓쳤네. 결국 금요일 상상마당에서 멜랑콜리아를 보았다.
<어둠속의 댄서>를 보고 난 뒤에 한 결심이라면 나 이 인간 영화는 두번 다시 안보겠다.
이런 폭력을 돈주고 경험하지 않으리는 결심 정도?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세월이 결심을 무색하게 만드는 걸 반복경험 하고 말았지. 딱 두편 봤으니까 왈가왈부 하긴 그렇지만 <어둠속의 댄서>보다는 훨씬 덜 폭력적이었고 덜 힘들었어.
영화 내내 바그너가 끝없이 흘러 나왔는데, 안그래도 감독이 나치발언 했던게 이 영화 상영 앞두고 아니었나?
거기 덧붙여 그들(히틀러 일당들)의 죽음은 바그너 적이리라 라고 말했던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도 생각나고. 근데 정작 히틀러는 졸렬하게 죽었잖아?
여튼 내내 외로운 영화였다. 보는 내내 손이 너무 시려워서 자꾸 손을 주물러야 했다. 우박 내리는 장면에서는 정말 외로워서 왈칵 눈물을 쏟을 뻔 했고,
세상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눈물이고 슬픔이고 외로움이라지만, 사람들이 우글대는 시내 한 켠 좁은 골목길 허름한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맞이하는 종말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장면은 대게 지구 종말을 다룬 블록버스터에서 1초의 여유도 주지 않은 채 풍경처럼 지나가니까-
지금 만약 종말을 맞이한다면 내 인생은 31년간의 상영시간이 존재하는데, 블록버스터 급에선 1초도 채 보지 않으려 하겠지. 나는 요즘들어 유달리 그런 영화들을 즐겨보지만, 뭐 1초도 안다뤄 준다해도 좋다.
블록버스터급에 1초도 출연 못하는 인생이지만
소소하고 단란하길, 무료하지만 분에 넘치는 행운도 떨어질 나락도 존재하지 않길,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오래도록 계속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