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4일 앞둔 12월 21일
사무실에 앉아 너에게 편지를 쓴다.
(이 문장 맨 앞에 ‘아직도’를 넣을지 ‘오늘도’를 넣을지 꽤 오랜시간 고민을 했어.ㅋㅋ)
금요일엔 비행기 티켓이 왔어. 부에노스아이레스 인, 하바나 아웃. 벤쿠버와 토론토를 두 번이나 경유해야하지만 예전부터 몸빵으로 모든 걸 때우던 저렴한 인생이니까, 난 괜찮아. 암 괜찮을꺼야.
요 며칠 돈이나 벌겠단 심정으로 홍보 회사일을 하나 도맡았어. 생각보다 애먹이더라고. 덕분에 지지난 주말부터 지난주말 토요일 밤까지는 수면시간이 한참 부족했어. 아직 서투르기도 하고, 난생 처음 해보는거라서. 그래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때 경험해보는거니까, 분명 나중에 다시 할 땐 좀 더 쉽게 할 수 있겠지.
요즘 남미관련 소설이나 역사책을 이것저것 읽고 있는데, 일요일엔 세풀베다의 단편집을 읽었어. 근데 너무 우중충한거야! 게다가 그 직전에 읽었던 책은 <불의 기억>이었다고;;;; 과연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밝고 명랑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피의 역사가 광폭무도하게 휘몰아치고 원주민의 한이 피맺힌 그 대륙에서?!?!?!?!
꾸중 꾸중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켠 게 뭐였는지 아니? 너마저 날 경멸하지마~ 브리짓존스의 일기였다;;; 미안.... 새상을 파스텔 색으로 채색시켜줄 색안경이 필요했어. 뻥인걸 알고 있지만 뻥을 쳐줄 뻥카가 필요했다고.
막상 여행을 떠나려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예상보다 큰 돈이 드는건 두말할 것 없고. 보통 다른 애들은 내나이가 되면, 자기 평생의 짝을 찾아 삼천만원가량의 혼수비를 들고 평생을 결정짓잖아. 하지만 나는 저먼땅 아메리카 허공에 천만원 가량을 쏟아 붓고 오는 구나. 결국, 인생의 두 달 다녀오고 나면 제자리일 뿐인데 말이지. 헛짓거리 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도 들고 평범하게 대학 나와서 취업하고 결혼을 선택하는 남들과 조금씩 달라진 길을 걷는다는 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만두야! 있잖아. 누구나 그렇겠지만, ‘누구나 그러하다’고 해서 위로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분명 나에게도 그 부분이 있거든. 조금은 부족한듯한 외모와 (그래 터놓고 말해보자.) 한참을 부족한 외모와 눈을 아무리 비벼봐도 찾아볼 수 없는 여성성. 자신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방치하고 숨겨두기만 했던 그 부분! 그건 분명히 내게 부족한 점이야. 아니, 없는 점이라는 표현이 더 절묘할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그건 ‘모두가 그런 점이 한두개씩 있다’고 해서 위로가 되지 않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남들 안 가보는데 가보면서, 쉽게 용기 내지 못하는데 용기내면서 내 부족한 점을 가리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 건 지운다고 지워지는 게 아닌데 말이지.
차라리 좀 더 예뻐지고, 나를 꾸미는데 돈을 투자하고, 최대한 안정적인 직장 윤택한 경제생활 가지고 있는 남자 만나서 무임승차하듯 인생 편하게 가는 방법도 있는데, 실은 그럴 자신이 없으니까 그건 가능성이 없는 일이니까 괜히 뻣대고 다른 길로 튀어서 괜찮은 척 하는 건 아닌지 싶은.
니가 옆에 있다면, 분명 아니라고 말해주겠지. 근데 일단 지금은 네가 없잖니. ‘네가 틀리지 않았어’라는 위로를 받고 싶은데, 그렇게 말해줄 몇 안되는 친구인 네가 없어서 오늘은 좀 우울하구나.
대만으로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은 마음에 들었니?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동봉한 녹색물질은 <마테차>야. 멕시코 산 녹차인데, 살 빠지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해서 유명하대. 마테 차에 근사한 전설이 있는데, 언젠가 그 구절을 읽으면서 너랑 마테차 한잔을 하고 싶구나. 지금은 같이 할 수 없는 대신, 각자 끓여먹도록 하자고!
조금은 우울 센치한 앙증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