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만에 잡아본 외할머니의 손은 무척 차가웠다. 
힘이나 의지는 도무지 찾아 볼 수 없었고
그저 남은 세월만 간신히 헤아릴 수 있는 손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유해가 납골당에 모셔지고,
목사님은 마지막 기도를 올리라고 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고 발음은 무척 불분명했다. 
중얼 중얼 방언같기도 하고, 주문같기도 한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감사하옵나이다... 
다시 만날 날을 믿사오며...  
우리 죄를 사하신 것 처럼....
그곳에서 평안을 허락하시옵고...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고 그곳에서의 축복을 갈망하는 내용이었다

그날을 믿는다기 보다는
믿고 싶어하는 믿을 수 밖에 없는  이별의 순간. 
세상 모든 아픔을 위로해줄 수 있는 건  
믿음 밖에 없단 생각을 했다.

언젠가 '맹목'을 가진 '믿음'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한적이 있었다. 
평생 경계하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대신으로 전국 글짓기 대회에 날 데려가고,
외할아버지네 초등학교에서 손녀손자 다섯을 데리고 몇날 며칠을 돌봤던 할머니는
정말 어린아이처럼 작아져서 흐느끼고 있었는데,
인간이 주어진 모든 불행 앞에서 승리자일 수 없다면
차라리 맹목이나 맹신 같은 마취제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