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늘 그게 의문이었다.
나보다 서너살 나이 많은 사람들의 미니홈피를 들어가면 어김 없이 보이는 아기 사진. 자기 애도 아니고 대체 주변 지인들의 아기 사진은 왜 퍼오는 건가? 분명 자기 아는 사람의 애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애를 매게로 만난 것도 아니고, 당사자(애)와 대화를 나눌 것도 아니고, 정서적 공감을 전할 것도 아니고.
 
나는 그것이 참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오늘 미니홈피에 친구내 애사진을 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래서 욕은 함부로 하면 안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마가 되고 나면, 자신의 폴더를 닫은 채(웨딩 사진+결혼 전 사진이 들어 있는 폴더;;;) 새 폴더를 연다. 아기 폴더다. 그리고 새로운 미니홈피가 탄생한다. 미니 홈피 주인의 모든 과거를 지운 채 오직 새로운 탄생물의 존재만을 알려주는 아기용 미니홈피.

아래 글은 내가 몇년 전 엄마가 된 내 친구의 모습을 안타까워 하며 끄적댔던 한 글귀다.
부성의 부재에 대해서 분노하고, 모성만을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불만은 아직 여전하다.
하지만 내게도 모성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의 여지만큼은 남겨두겠다.
꼬마 니꼴라에 나오는 애들이 깨물어주고 싶었다는 이유 하나를 덧붙여서.
 


친구가 엄마가 됐다.

엄마가 된 그네는 참 많은 변화의 직면한다. 그네를 만나는 나 역시참 많은 변화에 직면한다. 갓난 아이 때야 별 문제 없었다. '오, 젖주는 구나!', '오, 우유타는 구나!', '오, 목욕하는구나!' '오오오! 드디어 잠들었구나!'
변화는 작았다. 한쪽 눈을 찡그리며 엄지와 검지로 눈가를 가리킬 정도의 아주 작고 미세한 정도의 변화.

문제는 아이가 두 다리로 서기 시작하면부터였다. 위험과 비위험을 구분하지 못하는 몸뚱이가 제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얼마나 수 많은 위험이 그애를 기다리고 있던가. 두 살이 된 내 친구의 아이는 빙글빙글 돌면서 가게 테이블 모서리에 지 몸을 갖다 박고 울음을 터뜨리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와 주변 사람들은 아기가 이뻐 죽는다. 그런데 어쩌지? 난 내 친구의 애기가 하나도 이쁘지 않다. 친구의 애는 나와 내 친구를 갈라 놓는 방해물이며, 내 친구와의 만남에서 제대로 된 대화 한마디를 건네지 못하게 하는 강철같은 벽이었다. 우리 둘의 만남을 십수년간 이어져온 우정을 아무 의미 없게 만드는 지우개였다.

정말 내가 내 속에 있는 말을 톡 까놓고 한치의 거짓 없이 티끌의 터럭 없이 '솔직히' 말하건데, 친구 애가 입에 문 과자를 침으로 으깨고 여기저기 뱉고 다닐때 구역질 났다. 그 식욕 좋은 내가 입맛이 뚝 떨어졌다.

며칠 후, 주변 사람들에게 친구의 애가 밉다는 이야길 했다. 아무도 호응하지 않는다. 졸지에 정이 없고 비인간적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아무도 나의 감정에 동의해주지 않는다. 주위 반응에 조금 당황한 나는 그래도 친구의 애니까 조금은 이뻤다고 덧붙여본다.
그렇게 맘에도 없는 모성을 억지로 덧입혀본다.

자괴감이 든다. 나는 모성이 결핍되어 있는 인간인가? 모성은 갖추어야만 하는 필수 덕목일까? 모성이 원초적인 본능일 수는 있는데, 세상 모든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다 똑같은 양의 모성이 있는 건 아닌가, 그리고 그게 왜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건데?

나는 내게선 찾아 볼 수 없는 '모성'과 비교할 만한 개념을 떠올렸다.
그럼 부성은? 부성은?
나는 단 한번도 남자들이 '난 애기가 싫어'라고 말해서 비난 받는 사람을 보진 못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차이인가?

모성의 결핍은 크나큰 결함인데, 부성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나처럼 귀찮게 여기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존재할 수 있는 현상이다. 모성은 필수, 부성은 선택. 모성 없는 여자는 비정상이고, 부성없는 남자는 정상일 가능성이 높고.

 "책에서 봤는데, 두 살부터 네 살 까지는 아기에서 어린이가 되어가는 과정이래. 그래서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고 감정의 조절이 잘 안된대."

'아악 아악 꿰엑 꿰엑'하고 친구의 애가 괴성을 지른다. 그 우렁찬 괴성에 깜짝 놀라하는 나를 보며 친구가 말했었다.

엄마가 된 내 친구는 왜 이리 초라하고 작아보이는지.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하다는데 그건 그 아기한테나 해당되는 얘기인거 같다. 나도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하다. 하지만 내 친구는 다르다. 어머니가 된 친구는 한 없이 작고 초라하다.

특히나 이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지. 그래서 그렇다. 친구네 애기 잘못도 아닌데, 역시나 나는 내 친구의 작은 어깨에 덧대여 디비 잠이나 퍼자는 그 아이가 무척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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